▲17일 밤 서울광장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전 거리응원에서 한국팀이 1대 4로 뒤진 가운데 경기가 끝나자 응원을 마친 시민들이 쓰레기를 한곳에 모으며 귀가 준비를 하고 있다.
권우성
경기는 졌다. 하지만 붉은 악마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경기 후반 막바지 아르헨티나의 4번째 쐐기골이 들어가자 서울광장의 일부 시민들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음악과 춤이 매웠다.
경기가 끝난 후 서울광장 한 편에서는 흥겨운 타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은 15인조 브라질 타악기 밴드 '라퍼커션'. 이들이 작은 드럼과 흡사하게 생긴 바투카다 등의 브라질 타악기를 두드리자 흥겨운 리듬이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밴드 주변으로 모여든 시민 500여 명은 타악기 소리에 맞춰 방방 뛰며 춤을 추었다. 서울광장 한복판에서 흥겨운 '댄스파티'가 열린 것이다. 시민들은 <오 필승 코리아> 등 응원가를 부르며 30분 가량 리듬에 맞춰 흥겹게 몸을 흔들었다. 라퍼커션의 멤버 산(27)은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서울광장 한편에서는 "경기는 졌지만, 응원은 지지 말자"는 메가폰 소리가 울렸고, 주변의 시민들은 일제히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음악을 틀어놓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유행했던 꼭짓점 댄스를 추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광장의 흥겨운 음악과 시민들의 구호는 1시간 이상 지속됐다.
홍경순(30)씨는 "경기는 졌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응원하는 모습이 좋았다"며 "축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고, 김대봉(40)씨는 "경기는 대패했지만 젊은 사람들의 흥겨운 모습이 맘에 든다"며 "이 열정으로 나이지리아 전을 이기고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실망한 표정으로 경기 도중 서울광장을 나와 일찍 귀가한 붉은 악마들도 기자에게 "16강에는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후반 35분께 자리에서 일어선 대학생 정병정(21)씨는 "경기가 답답해 술을 좀 마셨고 아르헨티나에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 일찍 일어섰다"면서도 "우리나라가 못했다기보다 아르헨티니가 잘했다, 23일 새벽 나이지리아전에도 거리 응원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직장인 구본아(25)씨는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때 강팀에 잘 싸웠는데, 오늘 아르헨티나에 대패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며 "하지만 우리 실력이 나빴다기보다는 오늘 박주영 선수의 자책골 등 운이 따르지 않았다, 자신감만 재충전하면 나이지리아를 쉽게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대패에도 실망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쓰레기 치우기에 나섰다. 경기 직후 주최측 관계자들이 '내가 만드는 깨끗한 대한민국' 등의 피켓을 들자, 시민들은 주변의 쓰레기를 모아 봉투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