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보건복지부는 6월 초 정신보건법 ‘전면개정법률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다.
이은희
보건복지부도 6월 초 정신보건법 '전면개정법률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다. '기능저하 정신질환자' 개념을 도입해 정신질환자의 면허·자격취득을 통한 재활 및 사회복귀 기회를 확대하고, 입원 등을 할 때 정신질환자와 보호의무자에게 정신보건법에 의한 권리를 알릴 것과 정신보건시설 내에 서류를 비치할 것,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상담·재활 서비스 강화를 위한 알코올상담센터 설치 등의 내용을 개정법률 안에 담았다. 그러나 제24조는 현재의 법률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필요악이다. 병식이 없는 환자들이 병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 24조는 필요하다"며 "법이 악용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관련 이해 당사자(대한정신병원협의회,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등)와의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 등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시범적으로는 운영해 봐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에 동의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가야 할 것이라고 보지만 당장에는 어렵다고 본다. 관련 단체를 설득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을 반대하는 정신보건시설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윤상원 비서관(임동규 의원)은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해 적법한 절차를 밟게 해서 강제입원의 불합리함을 없애야 한다"며 "없는 위원회를 새롭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현존하는 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면 된다. 또 개정안에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가 심의할 사항을 추가해서 넣었기 때문에 운영하면서 상설화문제나 비용 등 제기되는 사항은 수정, 보완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이하 정피모) 정백향 대표는 "우리나라가 해외보다 비자의 입원율이 높은 것은 법과 정책의 미비로 굳이 정신보건시설에 격리되지 않아도 될 만한 정도의 환자들까지 마구잡이로 강제 입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신보건 관련단체들을 설득하고 합의해 정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보건복지부가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전 국민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보다 낳은 정신보건환경과 정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더 큰 대의는 없다. 단체 간 힘겨루기에 밀리지 말고 정부가 적극 나서서 정책변화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며 "보건복지부는 국제적 기준에 걸 맞는 정책과 소신 있는 장·단기 계획을 세우고 힘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24조를 폐지하고 입·퇴원을 심사할 기관을 운영해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한국의 정신보건 실태를 조속히 개선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의 정신보건법 제24조의 문제와 대안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지난 해 11월에 발행한 '정신장애인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보고서'(이하 국가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1991년 UN이 채택한 '정신장애인 보호와 정신보건의료 향상을 위한 원칙'(Principles for the Protection of Persons with Mental Illness and the Improvement of Mental Health Care, 이하 'MI 원칙')이 발표된 이후, 격리와 시설보호 위주의 정신보건 정책에서 탈피하여 이용자와 가족중심의 치료, 예방과 재활, 회복과 사회복귀 중심의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정신보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자국의 '정신보건법'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개선했다.
서방 선진국의 경우 정신질환자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보호의무자의 동의만으로 즉시 입원시킬 수는 없도록 법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미국 뉴욕 주의 경우 가족 및 동거인 등이 정신질환자의 입원치료를 신청하면 사법부가 입원 심사 등 기타 조치 등을 명령, 결정하고 있다. 의사는 비자의 입원을 뒷받침할 의료적 진단의 근거를 진술해야 하며, 법원은 입원신청서를 받은 날로부터 3일 이내에 심사를 한다. 일리노이 주, 아이오와 주도 법원의 심사를 거쳐 입원치료를 명령하고 있다. 이미 1960년대 지역사회정신보건법을 제정해 정신질환자의 탈원화 정책을 펼친 결과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정신병원의 병상수가 50~70% 감소되는 성과도 이뤄냈다.
영국의 경우 비자의 입원의 종류를 '평가를 위한 입원, 치료를 위한 입원, 긴급입원'으로 나눠 정신건강심판위원회가 입원을 결정한다. 가족 및 친척이 '평가를 위한 입원'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병원에 속한 의사 2명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입원 기간은 28일로 연장될 수 없으며, 담당의사가 퇴원을 막기 위해서는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정신건강심판위원회는 독립적인 사법기관으로서 법률전문가와 의료전문가, 일반 시민위원으로 구성해 타의로 입원한 환자를 심사하는데 심사의 전 과정 동안 환자가 참석한다.
한국의 현행 정신보건법 24조는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가 있고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신질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원시킬 수 있다. 진단기준도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지침이 없어 사실상 정신과 전문의의 재량에 입원결정이 고스란히 맡겨져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보호자 및 정신과 전문의의 입원결정이 타당한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검증단계가 없다. 수월한 입원절차로 인해 한국은 해외에 비해 비자의 입원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