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씨가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다.
김태희
드디어 홍석천씨가 무대에 올랐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기도 했다. 무대에 오른 홍석천씨는 커밍아웃한 후 좋아진 점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두 가지가 있다며 이렇게 코믹하게 대답했다.
"맘에 드는 남자에게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첫 번째 좋아진 점이고요, 이젠 게이바를 편하게 맘대로 갈 수 있다는 점이 두 번째 좋아진 점이에요."두 번째 질문은 조금 진지했고, 그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두 번째 질문은 아직도 벽장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꼭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안 해도 돼요. 하지만, 커밍아웃을 하건 안 하건 동성애자인 본인을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돼요. 여러분은 다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본인이 본인을 사랑해야 남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어요."자신의 경험이 묻어나오는 말이라 가슴이 찡했고, 사람들에게도 큰 환호를 받았다. 홍석천씨도 이 퀴어문화축제를 소중하게 여기는 듯 했다. 한 번도 준비해 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준비했다며 윗옷까지 벗어던지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의 여성스런 캐릭터만 기억하는 내게 그는 힘이 넘치게 춤을 추었다.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어 배가 나왔다고 말했지만, 그의 근육질 몸매는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홍석천씨에게 쓰는 편지를 낭독한 열 여덟살 남성 이반 '찌나'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자기는 여덟 살이었다고 말했다. 커가면서 성정체성에 고민을 느끼게 되었을 때 나도 형과 같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 세상의 많은 남성 이반들이 형을 떠올리며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커밍아웃 이후 홍석천씨는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벽장 속에서 웅크리고만 있었던 많은 이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던져주었다. 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기에 이런 퀴어문화축제가 가능했고, 많은 이반들이 떳떳하게 태양 아래에서 얼굴을 내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무대 행사가 끝난 후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우비를 입고 퍼레이드 차량을 따라갔다. 오늘 사회를 보고 퍼레이드 차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조광수씨는 이렇게 선창했다.
"우리는 게이다! 나는 게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잠시지만 서울 하늘 아래 청계천 변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반인 듯한 이들이 정말 많이 모여서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있었다. 변태라고, 정신병자라고, AIDS의 주범이라고, 신의 창조질서를 거스른다고 냉대를 받던 이반들이 주류가 되고 나처럼 프레스 표지를 목에 걸고 취재나 하는 일반들이 소수가 된 듯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게이인 내가 자랑스럽다고 외치는 이들의 모습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부디 오늘 이 순간처럼 이반들이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에서 당당하게 활보하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