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의 겉그림.
바오
작년 말에 시작된 한명숙 전 총리의 검찰조사부터 4대강 사업과 천안함 사건까지…. 뉴스 대부분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그나마 어떻게 소식을 전하나 하고 열심히 보았던 TV뉴스도 천안함 사건 보도 이후로는 시청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서서히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때때로 감정실린 비평을 쏟아내는 내 모습이, 남편 눈에는 중도를 넘어 또 다른 한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법도 했다.
마침 그때 나는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라는 책의 칼뱅과 카스텔리오의 이야기에 빠져 있던 중이었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가로만 알고 있던 칼뱅이 실상은 엄청난 독재체제를 구축했었고, 그에 맞서 이성의 이름으로 도전한 것이 카스텔리오라는 신학자였다는 것. 그리고 그 독재체제가 구축되었던 곳이 스위스의 제네바였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의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의 뿌리가 칼뱅과 죽음으로 맞섰던 카스텔리오에 기원하고 있다는 것들이 현재의 우리사회와 비교되며 무척 흥미로웠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보며 나의 일상적인 모습이 칼뱅의 일방주의와 겹치는 부분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내 논리가 확실하다 해서 상대적으로 약한 아이들에게 내 의견을 강권한 경우는 없었는가? 내 취향과 다르다는 이유로 오락, 개그 프로그램을 폄하하지 않았는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볼륨을 줄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날 저녁 때처럼 관심 가는 사회적 이슈에 남편이 같은 의견이 아니라 할 때 얼마나 그것을 객관적으로 인정했던가? 다르게 생각하는 타당한 이유에 귀를 기울이려 했던가? 아니면 성급하게 그냥 배척했던가?
자기 주장이 적극적일수록, 더구나 글이나 언변이 뛰어난 능력자 일수록 칼뱅과 같은 위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칼뱅 역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독재적 권위를 꿈꾸진 않았다. 그는 종교개혁가로 역사에 우뚝 설 만큼 논리적 구성 능력이 탁월했다. 다만 그 뛰어남을 뒤돌아볼 겸손과 배려가 타고난 그의 성정에 없었던 점, 그리고 절대로 타협이 없었던 점, 그리고 스스로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하는 충고를 해 줄 가까운 이가 곁에 없었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내가 남편의 일갈을 새삼 고마워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태와 의견이 내 잣대와 다르다고 가까운 가족에게 나도 모르게 짜증과 비판을 일삼던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책을 읽으며 '다른 의견'에 대한 심층적 인식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좋은 저녁시간을 남편과의 언쟁으로 보낼 뻔 했다. 물론 정당한 비판과 지적은 필요하다. 그러나 혹시 나와 비슷한 주변지인의 반응을 경험 한 분들이라면, 좀 더 성숙한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혹시나 감정적으로 달리진 않았는지 또는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칼뱅의 모습은 없는지 다들 한 번씩 생각해 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다른의견을 가질권리>는 오마이북에서 펴낸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의 2번째 인물인 유시민씨가 지금 우리사회에 횡행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관련하여 추천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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