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명품부럽지 않게 애용하는 내 가방들
김유리
내가 사 본 가방 중(다른 사람이 사준 것 말고)에 가장 비싼 것이 아마 5만 원짜리였을 것이다. 백화점에서 세일할 때 지하1층 매장에서 냅다 질러버린 그 가방을 아직도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면세점에서 본 오십만 원짜리와 디자인이나 가죽 면에서 10배 더 질이 좋거나 10배 더 이쁘다거나 하는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무엇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속 해서 솟아오르는 의구심들을 누르며 나는 그냥 가방 구경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디자인과 모양만 열심히 봤다. 가격이 대수냐. 이런 것도 있는가 보다 하고 열심히 들추어 보는 것이지.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모든 매장을 다 둘러보았는데 엄마는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다고 하셨다. 디자인이 쏙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는 말씀이신지, 아니면 맘에 드는 '가격' 이 없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결국 우리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빈 손'으로 면세점을 나서고 말았다.
21세기의 베블런 효과얼마 전 친한 내 친구는 100만 원 가량의 명품가방을 하나 샀다. 명품가방의 트레이드 마크도 잘 못 알아보는 나는 깜짝 놀라 '이거 루이비통 아니냐'라고 물었다. 친구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원래 명품 이런 거 안 좋아하는데, 명품이 오래 쓸 수 있고 나중에 팔아도 돈을 받을 수 있어서 훨씬 이득이야"라고. 들어보면 맞는 말이다. 명품은 구제품이어도 '명품' 대접을 받으니 친구 말대로 디자인에 싫증나면 몇 년 후에 팔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구매한 듯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우리가 그 비싼 명품을 사는 진짜 이유일까?
흔히 명품과 관련해 '베블런 효과'라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이는 부유층이 과시욕으로 인해 사치품 및 고가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소스타인 번드 베블런(1857~1929)이 쓴 <유한계급론>에서 유래했다.
그는 상층계급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하기 때문에 베블런 효과가 생긴다고 보았다. 그런데 베블런이 내 친구나 요즘 한국의 상황을 보면 당황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백화점에서는 고가의 가방뿐 아니라 20대를 겨냥한 '의류'도 어중간한 브랜드는 가격이 저렴하면 잘 안 팔리는 반면 값비싼 브랜드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고 한다. 상층 계급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필요도 없는 여대생뿐 아니라 남고생들에게 까지고 명품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사실 브랜드의 인지도나 명성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 시대, 어떤 계급에 속하든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베블런이 살았던 1900년대 초반과 지금의 시대적 상황이 다르니 모든 계층에게 이러한 경향이 퍼져있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찰나의 시간에 '이미지'로 사람을 인식하고 소통하는 요즘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에 있다. 시대는 변했는데 남들과 같은 '명품' 가방을 메고 '명품' 옷을 입어야 내 가치가 높아진다는 발상은 왜 베블런이 살았던 1900년대와 똑같이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획일화된 디자인의 가방을 '명품'이라는 이유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 이냥저냥 해 보일 뿐인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