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짓 도자기인채 폼을 잡고 있는 요강.
김혜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린 시절 나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척 겁이 많은 아이였다. 아마도 그것은 어린 조카를 놀리기 좋아했던 장난꾸러기 고모들의 탓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빨강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내 다리 내놔~"고모들이 들려준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 이야기의 영향으로 나는 우리집 변소에 '달걀귀신', '처녀귀신', '몽달귀신' 등등 수도 없는 귀신이 살고 있다고 믿게 됐다. 그리고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무서운 변소에서 한동안 일을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요강이라는 기특한 물건이 없었다면 나는 매일 키를 뒤집어 쓰고 소금을 얻으러 다녀야 했을지도 모른다.
요강에 밥 해먹기...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사셨다불과 30여 년 전인 80년대 초반까지도 실내에 화장실이 있는 집이 많지 않았기에 요강은 요긴하게 쓰였다. 때문에 요강을 비우고 닦는 일은 밥하는 일만큼이나 그 집안 며느리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이었다.
놋요강을 사용하던 시절. 할머니는 며느리나 딸들에게 항상 이런 잔소리를 하셨다.
"급하면 밥을 지어 먹어도 될 정도로 정갈하게 간수하는 것이 요강이야. 가마솥은 무거워서 들고 피난을 갈 수 없으니까 가벼운 요강을 들고 가서 솥으로 쓰기도 한다는겨.""우웩! 드러워라. 할머니. 말도 안 돼. 누가 드럽게 요강에 밥을 해먹어?""이누무 지지배가. 할미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지. 너도 이담에 시집 가면 놋요강에 밥 담아 먹게끔 깨끗하게 살란 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