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교육과학기술부 후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천대하는 교과부 장관 각성하라"며 "비정규직 착취 제도의 원형인 대학시간강사제도를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비정규교수노동조합에서 대학과 단체협상을 하면, 대학 측은 늘 목소리를 높인다.
"당신들의 강의노동만 샀다. 정규직 교수들은 연구도 하니까 당신들과는 차별적 존재이다. 강의노동의 대가로는 현재 시간당 임금만으로 충분하다. 오히려 시간당 임금으로 보면, 임금이 많다." 대학 측은 비정규교수들에게 철저히 연구와 교육을 분리해서 대응한다. 강의노동만 샀다는 논리는 억지이다. '분리하라 그리고 통치하라'는 식민지배자들의 사회지배논리이기도 하지만, 지배자들이 가장 쉽게 써먹는 논리이다.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는 한 몸이다. 학교마다 강의를 할 수 있는 사람들 절대 다수가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거나 학위소지자들인데, 이들의 정체성은 연구자이다. 왜 석박사과정을 밟고 학위논문을 쓰는가. 바로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그 연구자들에게 대학들은 교육을 맡긴다. 교육과 연구가 아무리 한 몸이어도, 대학들은 한 몸을 어떻게라도 쪼개서 반값만 지불하겠다고 억지를 부린다.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가 한 몸이라는 증거는 곳곳에 있다. 강의노동만 사겠다는 대학에서조차 강의배정 원칙으로 최근 'O년간 논문 O편'이라는 내부규정을 내세우는 학과들이 여럿 있다. 강의전담교수를 선발할 때도 '논문 O편 이상'이라는 규정을 둔 학교들이 많다. 대학 스스로가 연구능력이 없으면 강의를 안 주겠다고 공표하면서도, 강의노동에만 임금을 지불하겠다는 것은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도둑 심보일 뿐이다.
그러면 어느 대학교수는 이렇게도 말한다.
"물론 연구를 열심히 하는 선생들도 있겠지만, 안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사실 정규직 교수들이 더 잘 안다. 취업을 위해서라도 비정규 교수들이 누구보다 더 연구에 매달리고 그 성과물도 많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연구하지 않는 몇몇 사례들을 적시하여 비정규 교수들을 반쪽짜리 인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정규직 교수 중에도 논문 한 편 없이 몇 년 동안 수업만 근근이 하고 임금을 받는 선생들이 있듯이, 비정규 교수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규직 교수들의 연구를 통째로 부정할 수 없듯이, 비정규 교수들의 연구노동 전체를 깡그리 부정할 수 없다. 연구하지 않는 이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문제일 뿐이다.
대학엔 지원금 남아도는데 비정규 교수는 여전히 헐값 2010년 대학교육역량사업을 위해 교육과학기술부는 85개 대학에 2600억을 쏟아 부었다. 수십억의 뭉칫돈을 받아든 대학들은 '교육역량의 질적 제고'를 하면서 비정규 교수들의 교육역량은 모르쇠 한다. 각 대학에서 강의담당비율이 30~60%에 이르는데도, 비정규교수들의 교육역량 제고는 외면한 채, 남아도는 돈을 어떻게 반납하지 않고 다 쓰나 고민에 빠져있다.
2009년 교육역량사업으로 50여 억 원을 지원받은 한 대학은 단대별로 강의 잘 하는 교수 한 명에게 지원금을 주던 것을 돈이 남아돌자, 다음 학기에는 각 과에 한 명씩 돈을 돌렸다. 물론 비정규직은 강의를 아무리 잘 해도 그 대상이 될 수 없다. 지원금을 받느냐 아니냐 문제가 아니다.
대학이 조금만 생각이 있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을게다. 오히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강의자 모두에게 훌륭한 강의를 장려한다면 대학교육의 질이 더 높아지게 된다. 그런데도 혹시나 그 돈이 자기 주머니를 떠날까봐 전전긍긍한다. 대학발전에 대한 고민도, 학습권을 가진 학생에 대한 고민도 없다.
또한 교수와 교직원들이 교재개발비 명목으로 한 달에 수십 만원을 받아 챙기면서도, 정작 비정규 교수들에게는 수업자료 복사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업시간에 필요한 영상을 보려면 노트북을 들고 오라는 대학까지 있다. 그러면 자료복사 안 해주고,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비정규교수가 영상을 보여주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도 비정규 교수들은 오늘도 자료복사하고 노트북을 끼고 차에 오른다.
절반의 강의를 담당하는 비정규 교수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면서 과연 교육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가. 비정규교수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이다. 비정규 교수가 한 가정을 꾸리자면, 대개 20시간 내외의 강의는 맡아야 한다. 20시간 강의를 하자면, 한 학교에서 그만큼의 시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 중에는 노동조합이 있어 시간당 임금이 나은 학교도 있지만 2~3만원 하는 학교도 섞여있기 마련이고, 가까운 거리의 학교도 있지만 몇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가야 하는 학교도 섞여있다. 그렇게 20시간 정도를 강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강의의 질을 보장하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시간강사의 유서처럼, 힘낼 날이 올까그런데도 놀랍게 몇 년 전 한 대학의 강의평가 결과를 보니 정규직 교수의 강의와 비정규직 교수의 강의결과는 별 차이가 없었고, 더 나은 결과들도 있었다. 죽을 힘을 다해 비정규교수들이 오늘을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몇 년, 십 몇 년을 그렇게 버티지는 못한다.
자살 소식을 듣고 내 미래를 떠올려보는 이 착잡함. 비정규 교수 문제는 교원에게 교원지위를 주지 않는 정부의 반교육적 문제이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 소문 없이 잘라버리는 봉권적 권력구조의 문제이며, '강의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임금을 후려쳐서 생존권을 파괴하는 인권말살의 문제이다.
강의 10여 년, 한 '시간강사'의 자살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과연 그의 말처럼 힘을 낼 수 있을지, 그날이 올지 의문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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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누가 대놓고 표절? 제자 논문에 이름만 슬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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