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말씀 좀 해달라는 요청에 먼 산을 바라보는 할머니. 한참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다."우리는 암시랑토 안 했어라. 한 사람도 안 죽었어. 친척도 안 죽었어. 죽은 사람이 없는디 뭔 말을 혀. 긍게 쩌그 아랫집에나 가보시던가 어쩌던가, 알아서 하시요"
김수복
그러나 그 시간은 짧았다. 정권이 바뀌면서 보이지 않는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론에 인터뷰한 사람 집에 괴전화가 걸려왔다. 이 집에도, 저 집에도, 말은 한 마디도 없이 숨소리만 거칠게 씩씩거리다가 끊는 전화가 자주 걸려왔다. 그 씩씩거리는 숨소리는 그 어떤 협박의 목소리보다도, 그 어떤 최후통첩보다도 간담을 오그라들게 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급기야는 전쟁을 암시하는 대통령의 담화가 백주대낮에 발표되었다. 아, 세상이 다시 60년 전으로 돌아가 버렸는가. 지금 월림, 죽림 두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60년 전에 있었던 학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니 스스로 묻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자건 누구건 낯선 손님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은 암시랑토 안 했어라. 하나도 안 죽었어. 친척? 친척이 뭐 죽을 일 있었간디. 야튼간에 나는 몰라여. 쩌그 아랫집에나 가서 물어볼라면 물어보시던가, 하여튼 나는 모른게."아랫집에 가서 물어보면 윗집으로 가라 하고, 윗집으로 가면 다시 아랫집으로 가라 한다. 할머니에게 여쭤보면 젊은 사람들 기억이 좋으니까 젊은 사람에게 물어보라 하고, 젊은 사람에게 물어보면 젊은 사람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찾으라고 한다. 여기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순간적으로 눈에 흰자위가 몰리면서 진저리를 치다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대며 외면을 하는 것이다.
아, 이것이었던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그토록 애통해 했던 그 잃어버린 것의 정체가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 바로 그것이었던가.
그러고 보면 잃어버린 십 년이라는 한탄 속에 우리의 현대사가 역설적으로 농축되어 있다. 48년 정부 수립 이후 단 10년을 제외하고 자그만치 60년을 신분적으로 상위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해 왔다. 그 동력이 바로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 거기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눈치 보기와 복종 그리고 비굴이었던 것이다.
참고자료- 1994년 전북도 의회 <6,25양민학살 진상실태조사 보고서>및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고창 월림 사건> 결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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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간 갈등이 이념대립과 결합해 상호 보복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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