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적인 불심검문으로 주민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없다.
평택범대위
2006년 봄이었다. 평택에 있는 미군 기지를 넓히겠다고 대추리 주민들을 막 못 살게 굴 때, 대추리 주민들이 서울 용산 미군 기지에 앞에 있는 국방부 앞에 모여서 집회를 한 적이 있다. 평택까지는 자주 못 내려가더라도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는 참석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그리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하철 역 출구를 나와 보니 꺼먼 옷을 입은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인도 양 옆에 늘어서 있었다. 그 가운데 지휘관처럼 보이는 좀 나이든 경찰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눈으로 한 사람 한 사람 훑고 있었다.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그 앞으로 지나가는 순간, 그 나이든 경찰이 나한테 잠깐 멈추라고 하더니 신분증을 보자는 거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옆에 늘어서 있던 전경 대여섯이 방패를 들고 와 내 앞을 막아섰다. 헉.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불심 검문은 거부할 수 있다고 법에 돼 있다는 걸 어디서 주워들은 덕에 침착하게 불심 검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경찰이 또 보여 달라고 그러기에 나도 열이 올라서, 불심 검문 거부할 수 있는 거 모르냐고, 경찰이 법도 모르고 경찰 해 먹느냐고 따졌다.
서로 똑같은 얘기를 몇 번 주고받는 동안 나는 빨리 길이나 열라고, 당신 고발할 테니 관등 성명 대라고 협박(?)도 했다. 지금 같으면 이런 거 저런 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진작 연행해 갔겠지만, 그래도 그때는 고발할 거라고 이름 대라고 하면 경찰들이 좀 쫄기도 하고 그랬다. 한참 그러다 나이든 경찰이 한 발 물러섰다. 신분증은 안 보여 줘도 좋으니 그 깃대는 주고 지나가라고. 아~놔. 깃대 때문이었냐?
집회 때 깃대로 쓰는 낚싯대를 내가 들고 가고 있었는데 결국 그것 때문에 나를 막아섰던 거다. 쇠파이프도 아니고 각목도 아니고 집회 때마다 다들 들고 나오는 플라스틱 낚싯대 때문에. 덩치 큰 놈이 어쩌다 잘못 깔고 앉기만 해도 부러져 버려서 생돈을 들이게 만드는 낚싯대가 '위험한 물건'이라니. 신분증도 못 보여 주겠다는데 깃대(낚싯대)를 주고 지나가라는 말을 들을 턱이 없다. 나는 더 열이 올라서 막 대들었고 그 사이에 몰려든 사람들이 우르르 밀어붙인 덕에 그냥 전경들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법이 있어도 그쯤은 우습게 여기는 경찰인데, 이제 아예 법을 바꿔서 경찰들이 더 '지맘대로' 할 수 있도록 근거를 장려해 주겠다는 거다. 흉기나 무기뿐만 아니라 '그밖의 위험한 물건 등'까지 다 조사할 수 있도록. 그래서 조사한 위험한 물건이 그때 내가 들고 있던 플라스틱 낚싯대였나? 그럼 허리띠를 하고 있으면 채찍으로 쓸 수 있다고 우길 거고, 넥타이를 하고 있으면 경찰의 목을 조를 거라고 우길 건가? 하긴, 플라스틱 낚싯대를 '컬러 쇠파이프'라고 우겨서 사람을 구속시키기까지 했던 경찰이니 안 그러리라는 법이 없다.
2002년이었다. 집회를 하다가 경찰에 잡혀 버렸다. 그때도 나는 깃대를 들고 있었는데, 연행이 되면서 두드려 맞는 통에 깃대고 안경이고 다 잃어버렸다. 그런데 48시간 조사를 거의 마쳐 갈 때쯤 형사가 내 앞에 사진 한 장을 내밀며 "너 쇠파이프 들고 있는 사진 나왔어. 너는 이제 내가 책임지고 구속시켜 준다" 하고 통쾌하게 웃었다. 뭔 소린가 싶어 들여다보니 쇠파이프는 무슨, 그냥 내가 깃대를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경찰 시험에는 국영수 말고 '어거지' 과목이 있는 건가 싶어 피식 웃으며 이게 낚싯대지 무슨 쇠파이프냐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기가 막혔다. "낚싯대 같은 소리하네. 이거 컬러 쇠파이프잖아, 새끼야." 사진에는 낚싯대를 만든 브랜드 로고까지 선명하게 보였지만, 형사가 낚시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딴 건 몰랐던 걸까? 그런데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인간 어뢰설'보다 더 말도 안 되는 그 '컬러 쇠파이프설'을 판사가 인정하면서, 나는 덜컥 구속이 되고 말았다.
이러다 낚시꾼들 모두 잠재적 범죄자 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