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백조들의 군무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장면, 프티파의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는 가녀린 여성 백조들이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보이는데 반해 매튜 본의 남성 백조들은 힘차고 강인한 남성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LG아트센터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를 처음 보면서 공연 내내 머릿속엔 두개의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하나는 매튜 본이 댄스 뮤지컬<백조의 호수>를 초연하기 딱 2년 전인 1993년에 첫 선을 보인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 <차이코프스키:삶과 죽음의 미스터리>이고 또 하나는 연출 안무가 수잔 스트로만과 극작가 존 와이드만이 1999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시작한 댄스 뮤지컬 <컨택트>였다.
두 작품 모두 올해 초에 각각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과 LG아트센터에서 상연되었는데 어느 작품이 더하다 덜하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어쩌면 매튜 본이 이 작품을 만들기 전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에서 힌트를 얻었을 수 있고, 마찬가지로 수잔 스트로만이 매튜 본에 영향을 받아 <컨택트>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발레 <차이코프스키:삶과 죽음의 미스터리>에서는 실제 동성애자였던 것으로 알려진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비관, 고독감 속에 우울한 죽음 속으로 빠져드는 내용인데, 매튜 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왕자와 남성 백조간의 동성애 장면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어 스쳐갔다.
또한 뮤지컬 <컨택트>의 경우 세개의 에피소드 중 특히 세번째인 Contact 에서 어느 정도 성공할 만큼 성공한 남자임에도 불구, 현대인의 질병 중 하나인 고독감으로 인해 무기력해진채 결국 자살을 시도하다 노란 드레스 여인의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는 내용인데, 역시 매튜본의 작품 속에서 왕자가 고독 속에 백조의 환상으로 빠져드는 장면과 닮아 있다.
매튜 본은 고전발레로 너무나 유명한 <백조의 호수>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진실된 사랑'을 '인정 받지 못한 자의 고독'으로 완벽하게 바꾸어 놓았고, 원작의 가녀린 여성 백조들을 근육질 남성 백조 떼로 대체하는 파격을 행사 하였지만 결코 원작 자체의 비극적 서사 구조를 거의 깨트리지 않은채 완벽하게 다른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 해냈다.
1895년 초연되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차이코프스키 곡, 프티파 안무의 <백조의 호수>는 순수하고도 진실된 사랑, 그리고 사랑을 시험하는 강력한 악의 힘이라는 너무나 기본적이고도 오페라적 감성에 충실한 탓에 언제나 클래식하게만 다가오는 반면, 매튜본이 재해석한 이 작품에서는 특히 왕자의 고독에 주목,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느끼는 현대인들의 고독감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굉장히 현대적으로 느껴졌다.
이 작품 속에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품속에서 궁궐 속 마마보이로 자라 가녀린 심성을 가진 왕자가 겪게 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성장통, 동성애, 고독감과 좌절 등이 골고루 버무러져 등장한다. 프티파의 원작 속에 나오는 왕자 역시 여리고 약해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리 세밀하게 묘사되지 못하는 반면 연극적 요소가 한층 강화된 이 작품에서 왕자는 더욱 심층적으로 그려져 극의 밀도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