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공장 노동자 잇따른 자살... 왜?

[해외리포트] 폭스콘의 억압적 기업문화 논란

등록 2010.05.25 12:32수정 2010.05.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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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한 농촌에서 올라온 젊은 여성들이 폭스콘에 들어가기 위해 입사 시험을 보고 있다. 폭스콘은 중국 내 외자기업 중에서도 노동자의 이직률이 가장 높다.
빈곤한 농촌에서 올라온 젊은 여성들이 폭스콘에 들어가기 위해 입사 시험을 보고 있다. 폭스콘은 중국 내 외자기업 중에서도 노동자의 이직률이 가장 높다.<난팡주말>

지난 21일 아침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 외곽의 룽화(龍華) 과기원구 내에서 한 노동자가 건물 밖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현지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는 폭스콘(Foxconn, 富士康)에서 일하는 21살의 남자 노동자로 밝혀졌다.

폭스콘은 대만 IT기업 훙하이(鴻海)의 영문 브랜드다. 룽화는 폭스콘이 중국에 진출하여 처음 세운 생산기지로, 애플의 아이폰·아이팟·아이패드 등의 위탁 생산을 전담하고 있다. 룽화에 근무하는 폭스콘 직원은 27만 명. 24시간 3교대로 각종 전자제품을 쉴 새 없이 생산하고 있다.

거대한 기지 안에는 생산 공장과 직원 숙소뿐만 아니라 식당, 병원, 잡화점, 은행, 소방서 등 70여 동의 건물이 모여있다. 5만 명이 동시 식사할 수 있는 20여 곳의 대형 식당에서는 매일 15만 명분의 식사가 준비되는데 소비되는 쌀 양만 40톤이 넘는다.

요즘 폭스콘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월부터 룽화에서 7번, 다른 생산기지에서 3번의 투신자살사건이 발생해 벌써 8명이 죽고 2명이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특히 이 달 들어 6일 이후 보름만에 벌써 4명이 자살했다. 이밖에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자살시도만도 20건에 달한다.

사망자들은 중국 각지에서 온 18살부터 24살까지의 젊은 노동자들로, 한창 청춘의 꿈과 희망에 사로잡혀 있을 나이다. 낙후된 고향보다 더 많은 보수와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긍지를 뒤로 하고 그들은 꽃다운 청춘을 제 손으로 접었다.

한동안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고용효과와 수출 공헌도 때문에 중국 내에서는 폭스콘에서 벌어지는 연쇄투신사건에 침묵해 왔었다. 하지만 젊은 노동자의 죽음이 끊이지 않자 중국 언론도 폭스콘에게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폭스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노동자들을 잇달아 자살의 구렁텅이로 내몰리는 것일까.


 폭스콘의 연도별 매출액과 증가율 추이
폭스콘의 연도별 매출액과 증가율 추이폭스콘

아이폰 생산기지에서 꼬리 잇는 노동자들의 자살행렬

폭스콘은 1974년 대만에서 직원 15명의 흑백TV 부품 생산업체로 설립됐다. IT산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폭스콘은 오늘날 세계 최대 3C(Computer, Communication, Consumer Electronic)기업으로 성장했다.


완제품은 컴퓨터, 휴대폰, 게임기, MP3플레이어, 모니터, LCD, 디지털카메라 등 IT제품 전 분야에 고루 걸쳐있다. 부품도 컴퓨터 본체, 메모리 확장기, 그래픽카드, 컴퓨터 냉각팬 등 CPU와 메모리를 제외한 컴퓨터 제품 대부분을 생산한다.

이에 폭스콘은 "전 세계의 컴퓨터 5대 가운데 1대는 폭스콘이 만든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강력한 시장 영향력에 비해 폭스콘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전자제품 전문생산기업(EMS: 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이기 때문이다.

폭스콘은 자사 상품 없이 오직 연구와 생산에만 집중한다. 폭스콘의 고객은 일반 소비자가 아닌 글로벌 전자통신기업인 것이다.

컴퓨터에서는 델·HP·레노버·소니 등이고, 이동통신은 애플·노키아·모토로라·LG 등이며, 소비 전자제품은 소니·닌텐도·MS·애플 등이 폭스콘의 주 고객이다. 2009년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순위 중 109위로, 세계 IT산업의 막후 강자 중 하나다.

모태는 대만이었으나, 오늘날 폭스콘의 매출 대부분은 중국에 진출한 투자기업에서 나온다. 미국, 유럽, 아시아 곳곳에 60만 명의 직원이 있지만, 그 중 90%가 중국 공장에서 일한다. 2009년 매출액 640억 달러(한화 약 75조8400억 원)와 당기순이익 5억6000만 달러(약 6636억 원) 대부분도 중국 공장에서 달성했다.

 폭스콘의 인적자원 관리구조
폭스콘의 인적자원 관리구조삼성경제연구소

'회사를 군대처럼' 독재적 리더십 아래 초고속 성장

지난 30여 년간 거침없이 성장해온 폭스콘을 이끈 주역은 궈타이밍(郭台銘·60) 회장이다. 궈 회장은 샐러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오늘날 13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EMS 왕국을 키워냈다. 개인재산만 33억 달러(약 3조9105억 원)에 달해 대만에서 넘버3 갑부다.

궈 회장의 경영철학은 고객 제일주의로 유명하다. '인재는 4류, 관리는 3류, 설비는 2류, 고객은 1류'라는 기업 모토처럼 잠재고객을 발굴하고 협력관계를 구축하는데 열성을 다한다. 창업 초기 궈 회장은 1류 고객과 손을 잡기 위해 싸구려 모텔에 투숙하며 미국 35개 주를 직접 자동차를 몰고 다녔다.

1995년 델의 창업주 마이클 델을 선전으로 직접 초청하여 위탁 생산 계약을 따냈다. 이때만 해도 델은 세계 PC업계의 5위권에도 진입하지 못했었다. 그 후 양사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 도약의 날개를 달았다.

궈타이밍 회장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폭스콘을 성장시킨 공로를 부인할 수 없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이 만만치 않다.

귀 회장의 경영이념은 '기업을 위한 독재(獨裁爲公)'로 규정된다. 귀 회장은 토론이나 의사수렴 과정을 비효율적인 에너지와 시간의 낭비로 인식한다. 기업은 오직 리더의 결단과 용기만으로 운영되고, 직원에게는 이유를 설명한 뒤 이끌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궈 회장은 군대식 관리체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폭스콘 직원들은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거쳐야 입사가 확정된다. 실적이 우수한 직원은 칭찬과 인센티브로 장려하지만,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 직원은 엄격히 처벌한다. 노동자가 나태하거나 태업을 일으키면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한다.

사내 보안은 더욱 철저해, 기밀이 누설될 경우 해당 직원뿐만 아니라 같은 부서 내 모든 팀원까지 처벌을 받는다. 직원과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감시는 일상생활에까지 이뤄지고 있다.

 한 노동자가 찍어 블로그에 공개한 폭스콘 베이징공장의 식당 내부. 짧은 식사시간에다 쉬는 시간도 거의 없어 식사 후 바로 작업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한 노동자가 찍어 블로그에 공개한 폭스콘 베이징공장의 식당 내부. 짧은 식사시간에다 쉬는 시간도 거의 없어 식사 후 바로 작업장으로 달려가야 한다.리밍

노예계약, 살인적 노동시간·강도, 낮은 임금... "노동자는 소모품"

군사조직과 같은 폭스콘 내에서 노동자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되지 않는다.

2003년 사스(SARS)의 공포가 중국 대륙을 뒤덮을 때도 궈타이밍 회장은 수주량의 완수를 내세우며 24시간 생산방침을 고수했다. 여름철 룽화기지 내 생산라인 실내온도는 37~38도에 달하지만, 컴퓨터 생산기술상 고온의 환경이 필요하다며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노예계약과 다름없는 근로계약,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강도, 낮은 임금 등은 노동자들의 큰 불만을 사고 있다. 지난 12일 중국 <난팡(南方)주말>은 젊은 기자 류즈이가 28일간 폭스콘에 위장 잠입해서 쓴 르포 기사를 보도했다.

류는 "극히 불평등한 근로계약 아래 식사와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일만 해야 한다"며 "하루 종일 서서 기계처럼 단순 노동만 되풀이 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임금 900위안(약 15만6600원)과 생활 보조금 210위안(약 3만6540원)을 받을 뿐"이라며 류는 "산업재해를 당해도 그에 따른 보상은 거의 없다"고 폭로했다.

이처럼 엄격한 규율과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폭스콘은 중국 내 외자기업 중에서 이직률이 가장 높다. 생산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중간 관리직도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아주 낮다.

좋은 근무조건에 높은 인센티브를 받는 고위관리자조차 궈타이밍 회장의 독재적 리더십을 견디지 못해 사직한다. 요우샹푸(游象富) 커넥터사업부 사장, 천이페이(陳一飛) 수석 엔지니어 등 창업 공신들도 회사를 떠났거나 재입사를 반복했다.

노동자에 대한 억압은 이미 작년 7월에도 한 직원을 자살토록 했다. 4G 아이폰 견본을 애플사로 보냈던 쑨단융(25)은 한 대를 실수로 분실하자, 보안 책임자로부터 감금당하며 구타까지 당했다. 회사 측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쑨은 목숨을 끊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노동문제 전문가인 류카이밍(劉開明) 당대사회관찰연구소장은 "폭스콘 노동자는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반복되는 단순 업무를 하면서 옆에 일하는 동료의 이름조차 모른다"고 지적했다.

류 소장은 "폭스콘이 잇따른 자살을 막기 위해 상담센터를 운영한다고 하지만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여기는 기업문화나 폭압적인 관리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자살공장'이라는 오명을 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콘의 연쇄자살사건은 미국 IT블로그사이트인 <기즈모도>에도 보도되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폭스콘의 연쇄자살사건은 미국 IT블로그사이트인 <기즈모도>에도 보도되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기즈모도>

#폭스콘 #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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