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난 둘째 낳는 걸 포기했다

[주장] 육아는 국가가 책임지세요

등록 2010.05.25 13:04수정 2010.05.2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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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이 키우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예전 우리네 부모님은 가정형편이 여유롭지 않아도 적게는 셋에서 많게는 여섯 일곱을 낳아 잘도 키웠는데, 자칭 선진국(?)에 사는, GDP 2만 달러인 우리 세대는 왜 한 명의 아이도 낳아 키우기 버거워 하는 것일까?

나는 직장 때문에 일본에서 살면서 딸아이를 출산했다. 아이를 갖은 뒤 입덧도 많이 했다. 또 산부인과가 멀어 예정일이 지난 만삭의 몸으로 30분 동안 차를 몰아 병원에 가면 2시간은 족히 기다려 검진을 받아야 했다.

아이 낳을 때도 자연분만을 최고의 신념으로 여기는 의사덕분에 3일 동안 진통 겪어야 했다. 결국 난산에 아이는 일주일 넘게 황달치료를 받아야했다.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오신 친정엄마가 삼칠일이 지난 뒤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한국으로 떠날 때는 '악천우로 비행기가 못 떠서 다시 내곁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여행가방 끌고 집을 나가시는 엄마 뒷모습에 부질없는 주문을 걸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온돌이 없는 일본집 특성상 한 번도 따뜻한 방에 누워본 적이 없으며 허리 한 번 지져보지 못했다.

또 눕히면 울고 안아주면 그치는 아이 때문에 수없이 많은 날들을 아이와 함께 울었다. 며칠이라도 도와달라 전화로 사정했지만, 매정하게 거절하신 시어머니 때문에 또 한 번 울었다. 아이 황달 치료 때문에 모유수유 시기를 놓쳐 생긴 젖몸살로 출산 때보다 더 큰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내가 딸아이를 가져 낳고 키우는 일은 정말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고통의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딸아이를 낳은 일이라 생각한다. 아니 주장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이런 모든 고통을 다시 한 번 해도 좋을만큼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한테 받는 행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남자들은 이런 고통들을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도 쉬운말로 '여자들은 애 낳고나면 다신 안 낳는다 하면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또 낳더라'고 빈정거린다. 이런말 들을 때 '왜 조물주는 남자도 아이를 낳게 하지 않았을까' 원망스러울 정도로 남자들이 야속하다. 당해보지 않으면 알수 없다는 말처럼 여자들이 아이를 가져 낳고 기르는 일은 죽었다깨나도 해볼 수 없는, 남자들은 상상도 못할 큰 고통이다. 어쩌면 조물주가 여자에게만 아이를 낳을수 있도록 한 건 여자들만이 그 고통을 다 참고 견딜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너무나도 큰 고통이기 때문에 아이를 못낳겠다는 것이 아니다. 정말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어렵게 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건 그토록 고생해서 낳아 기른 아이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고,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그 고통을 겪더라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얘길 하는 것이다.


그럼 아이를 낳으면 될 게 아닌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답은 그리 쉽지가 않다. 내가 아이를 가져 낳고 산후조리를 하면서 받은 고통은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겪는 정말 물리적인 신체적인 고통이었다. 내가 엄청난 부자였어도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즉,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부자여도 입덧을 없앨 수는 없을 것이고, 분만을 안 하고는 아이를 낳을 수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다르다. 난 아이가 4살이 될 때까지 일본에서 키웠다. 아이를 낳고 바로 일을 시작했지만 그리 불편함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살던 곳은 맞벌이인 경우에 국가가 운영하는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부모의 소득이 많고 적음을 떠나 맞벌이 아이를 가장 먼저 받아준다. 물론 보육료는 부모의 소득에 비례한다.


또 직장 때문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라 아이를 맡기고 데려가는 시간은 부모의 사정에 따라 아주 탄력적이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정도까지는 미리 알려만 주면 아무 걱정없이 맡길 수 있었다. 선생님은 정규반 1명, 아침반 1명, 저녁반 1명으로 전문가들이 맡아주었고 딸아이가 처음 적응할 때 빼곤 한 번도 보육원에 안 가겠다고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선생님들을 좋아했다. 어떨 땐 주말에 울면서 선생님이 보고싶다고 할 정도였다.

난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아일 맡길 때 차별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외국인이기 때문에 더 많은 배려를 받았다고 말하는 게 맞을 정도로 그들에게 받은게 더 많았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어도, TV를 너무 많이 봐도,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해도 선생님께 의논을 하면 적절한 답을 주곤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성심껏 귀기울여줬기 때문에 선생님을 100% 신뢰하고 또 선생님이나 보육원에서 추구하는 교육 혹은 보육관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의심하거나 걱정할 필요없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전적으로 선생님한테 의지하면서 편하게 아이를 키우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난 한국에 돌아와서도 일을 하고싶었다. 돈을 버는 것도 좋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마침 예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다시 나와주길 바랐고 난 일본에서처럼 아이를 아무 문제없이 맡길 수 있다고 착각하고 바로 수락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아이를 맡기는 건 아이를 낳을 때 겪는 물리적인 고통에 준하는 고통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물리적인 고통은 나 하나 참으면 되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만, 사회적인 고통은 나 하나 참아서 해결되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지 1년정도 되었는데 1년 동안 겪은 고통은 아이를 가져 낳고 산후조리할 때 겪었던 고통보다 더 크다. 그래서 난 둘째 낳는걸 포기했다.

찢어지게 못살던 우리네 부모세대엔 국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아이를 많이 낳았다. 가난한 사람에겐 자식만이 유일한 재산이었을지 모른다. 자기 먹을 건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면서 순풍순풍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21세기인 지금은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낳을 때 받은 고통을 다 잊게 만들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받는 고통은 아이들이 주는 웃음만으론 극복이 안 된다. 왜냐하면 그토록 소중한 아이가 사회가 주는 고통 때문에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우리 딸아이는 종일반 유치원을 다닌다. 그러나 예전처럼 유치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종일반이라고 해도 늘 혼자서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그 쓸쓸함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일하는 엄마들이 많다고 해서 그 유치원을 선택했고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반까지 맡아줄 수 있다고 해서 한시름 놨는데 결과는 너무 달랐다. 일하는 엄마들은 6시쯤 모두 할머니들을 동원해 아이들을 데려가버렸고, 유치원 선생님은 딸아이가 혼자남아 있는 게 안쓰럽다며 아이를 일찍 데려가라고 친절하게 강요했다.

딸아이도 두명의 할머니가 있지만 두분 다 하시는 일이 있어 딸아이를 봐주실 수가 없다. 그리고 무턱대고 부모님만의 희생을 강요할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일본에서는 할머니가 아이를 봐주는 집은 거의 없다. 70, 80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엄연히 자기 삶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글 공부 모임에 참석했을 때도 대부분의 참석자가 할머니들이었다. 이제 배워 어디다 써먹을까 싶은 나이인데도 너무나 열심히 했고 어떤 분은 자격시험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손주를 돌봐주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님이 선택할 일이지 강요할 일은 아니고, 설령 누군가의 희생으로 잠시 문제를 해결했다 치더라도 금세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기때문에 나는 이 모든 책임을 사회가 맡아주길 바란다.

어느어느 '신의 직장'엔 보육원 시설이 이래 잘되있다, 라는 기사가 나오면 나는 한숨이 나온다. 보육원 시설이 잘된 신의 직장을 탓하지 말고 우리 모두의 직장을 신의 직장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월급은 많이 못 주더라도 보육시설만은 신의 직장으로 만들 수는 없는지.

몇가지 제안을 하고싶다. 내 생각엔 이렇게만 된다면 출산율을 지금의 2배로 늘리는데 결코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것이다.

임산부를 여왕으로 섬기자

임신하고 나면 물론 남편이나 가족들의 보살핌이 중요하다. 하지만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임산부에가 모든 권리를 0순위로 부여했으면 한다. 사실 배가 나와 임산부인 줄 알게 됐을 때도 힘들지만 임신후 2~4개월쯤도 너무 힘들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임산부 배지를 더욱 많이 홍보해, 누구나 임산부의 짐을 들어주거나 자리를 양보하는 등 도와줄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약 이것을 어겼을 땐 법적인 조치를 취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도덕적인 법이 아니라 실제로 강제성을 가진 법으로말이다.

간혹 아이를 안고 버스를 타면 눈 질끈 감고 자리를 안 비켜주는 청소년들이 많다. 오히려 자기몸도 잘 못 가누는 할머니들이 자리를 비켜준다. 이건 분명 아이를 키워본 사람과 키워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일 게다. 때문에 강제성이 있어야한다. 또 버스 벨도 한 가지 더 만들어야한다. 지금의 벨 밑에 임산부나 장애인 혹은 아이를 데리고 타는 사람 혹은 노약자들이 누르는 벨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해당자들이 그 벨을 누르면 버스 기사는 무조건 정차시간을 길게 해줘야한다.

즉 아이를 데리고 내리는 사람이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내릴 준비를 하는 등 위험한 곡예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또 승객들은 가만히 있지말고 도와줘야 한다. 이것도 강제성이 있어야한다. 정차를 길게하지 않을 경우 버스회사에 불이익을 줄 수 있어야한다. 이런 내용은 지하철이나 기차 등 다른 대중교통수단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짐을 갖고 택시를 탈 때면 승차거부를 하거나 가만히 앉아서 도와주지 않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승차거부를 하면 법적인 불이익이 있는걸로 알고 있지만, 아이가 있는 승객의 짐을(핸드백 같은 작은 거 말고) 실어주지 않는다면 이것도 법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해야한다. 사실 이건 아이를 데리고 타는 승객이 아니어도 짐을 실어주는건 택시기사가 서비스정신으로 당연히 해야할 문제다. 지하철의 경우도 아이를 안고 있거나 유모차를 끌고 승차하는 승객을, 주변 승객들이 양보해 맨 먼저 태워줘야한다. 설령 그 시간이 붐비는 출퇴근시간일지라도 말이다.

일하는 엄마의 아이는 국가가 운영하는 보육원에 1순위 자격을 주자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일하는 엄마의 아이는 공립 보육원에 1순위 자격을 줘야한다. 또한 아이를 맡기는 시간도 탄력적이여야한다. 대신 보육료는 소득의 비례해서 내게 하면 된다. 난 한국에 와서 금전적으로 국가에서 지원을 한가지도 못받고 있지만 그게 속상한 게 아니다. 난 보육비를 많이 내더라도 내 딸아이가 혼자 남아 쓸쓸하게 엄마를 기다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실 일본에서는 육아수당까지 받으며 아이를 키웠지만 이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매일매일 딸아이가 나를 기다리며 얼마나 쓸쓸할까, 그 생각만 하면 가슴에서 차가운 강물이 흐른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우리나라의 공립 보육원이다.

'니들이 돈을 많이 버니 돈 많이 내고 능력껏 아이를 맡겨라' 이런 생각으로 정책을 세우는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맞벌이 하는 사람들의 아이들은 당연히 늦게까지 보육원에 남아있게 되는데 그 아이들을 모아서 함께 맡아줘야만 아이들이 겪을 쓸쓸함을 조금이나마 줄일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와서 1년동안 어린이집 2군데 유치원 1군데에 아이를 맡겼는데 첫 번째 어린이집은 처음 약속과는 다르게 저녁시간엔 아이를 봐주질 않았다. 또한 늦게까지 남아있는 아이가 없어서 딸아이는 거의 병적인 발작까지 일으키며 어린이집을 거부했다. 그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미안함이 아이의 잘못을 야단치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나서 나 스스로를 오그라들게 만든다(일하면서 얻는 보람이 한순간에 싸그리 날라가던 순간들이었다).

두 번째 어린이집은 처음부터 늦게까지 맡기는 걸 조건으로 찾았다. 다행히 원장선생님이 오후 8시까지도 흔쾌히 아이를 맡아주셨고 아이도 첫 번째 어린이집처럼 어린이집을 싫어하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 다니는 유치원이다. 일하는 엄마에게 보육시설은 가까운 곳에 있어야한다. 출근하면서 아이를 맡기는데 보육시설이 회사랑 반대방향이면 출근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조건에 맞춰 선택한 유치원이었는데 불행히도 처음 약속과는 다르게 맡아주는 시간은 그리 탄력적이지 못하고, 일하는 엄마도 많지 않아 딸아이 혼자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또 선생님 한 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맡아 보는 경우가 많아 그것 또한 탄력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보육비를 더 내라고 하면 더 낼수도 있는데 그런건 고려하지 않고 선생님 한명만 엄청 부려먹는다. 그러면서 누가 요즘 오후 8시까지 야근을 하려고 하냐고 한다. 사실 지금 유치원의 근본적인 문제는 주변에 일하는 엄마가 별로 없다는 거다. 때문에 선생님을 더 충원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한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국가도 시스템을 안 만들고 있는데 사립 유치원이 무슨 용가리 통빼라고 그런 시스템을 만들수 있겠는가. 그냥 쉬운 길(부모나 조부모의 희생을 강요)을 선택하는 사립 유치원을 탓할 수 없음이 여기에 있다.

부모들은 내자식만 잘나게 키우자 란 생각을 버려야한다

한국에는 그 어떤 휼륭한 교육정책이 세워진다해도 모두 실패할 거란 말이 있다. 즉 현재의 교육정책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 자식만 잘나게 키우려는 부모들의 생각이 틀려먹은 것이다. 누구나 다를 수 있다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다름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그름'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일본 동요 중에 '민나 치갓데 민나 이이'란 동요가 있다. 해석하자면 '모두 다르지만 모두 좋다(옳다)란 뜻이다. 내자식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식을 모두 옳고 바르게 키우자 란 생각을 가지면 안 될까? 난 아이를 낳아 키우기 전보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아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면서 놀랄정도로 딸아이만한 아이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참견하고 싶어지고 그런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도 건강하게 최소한의 혜택을 누릴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지만 다른 아이는 모두 내 아이의 경쟁상대이니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아니라 내 아이가 이쁜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모 혹은 미혼모 혹은 버림받은 부모 혹은 태어나면서부터 아픈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우리가 보듬어 안아야하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은 아이가 선택하는 게 아니질 않는가... 사실 이런 걸 선택할 수 있다면 한국을 선택해서 태어날 아이는 별로 없지 싶다. 그래서 이런게 선택이 아니라 주어지는 거라는 걸 한국은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위에 제시한 2가지 제안은 정부나 지자체가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문제지만 지금 언급하는 3번째는 우리 모두의 생각이 바뀌어야하는 거라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어느 나라로 우리 아이를 보낼까 고민하지 내 주위에 어려운 아이가 어디에 있을까를 찾아보진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보모의 복사판이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아내를 존중해주는 집안은 자식들도 똑같이 될 것이며 부모를 공경하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도 부모를 공경하고 어른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지닐 것이기 때문이다. 즉 아이가 올바로 자라길 원한다면 아이에게 비싼 물건이나 해외 교육을 시킬 게 아니라 지금 보모인 자신들이 올바르게 살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모두 생각이 바뀌면 지금 난리인 사교육도 필요없게 되지 않을까?

이제 우리도 이만하면 잘 살지 않는가? 그럼 없이 살아서 그게 한이 되어서 어떻게든 더 잘살아 보려고 앞만 보던 그때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이제부턴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고 그래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입양도 떳떳하게 하고 자식은 독립할 때까지만 후원해주고 독립하면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가게 자유롭게 놔줘야 하지 않을까? (난 언젠가부터 부모는 자식의 후원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입양을 깊이있게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어진 세상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 어디 있을까?
#육아정책 #보육정책 #임산부 #출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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