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카센터, 대놓고 홍보 좀 하겠습니다

쌍용차 해고자가 만든 '노동공동체' 카센터에 가보니...

등록 2010.05.25 11:36수정 2010.05.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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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 선전전 모습
출근 선전전 모습최규화

월간 <작은책>에 실리는 '일터 이야기'가 너무 어둡고 무겁다는 지적이 있다. 노동자들이 힘들게 일하면서 잘리고 깨지고 터지고 당하는 이야기들을 알리고 나누는 것이 <작은책>의 사명인 것은 알지만, 그래도 가끔은 밝고 가벼운 이야기도 있어야 읽을 맛이 더 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현실은 여전히 눈물겨운데 내 기분 좋겠다고 억지로 손뼉을 치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 거라면 당장 <작은책> 간판을 내려야겠지만, 희망을 전하고 나누는 것도 <작은책>의 사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던 가운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카센터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선했다. 지난여름 지옥 같은 절망을 겪은 노동자들이 다시 뭔가 일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밝고 가벼운' 소식임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신명나는 풍물 출근 선전전, 하지만

서울 구로구 구로본동에 있는 쌍용자동차 서울서비스센터를 찾아간 것은 5월 3일 아침 8시. 구로역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신명나는 풍물 소리가 들렸다. 아, 저기구나. 서울정비사업소 앞에서 한바탕 풍물판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비지회 노동자들. 아침마다 여기서 출근 선전전을 한다고 해서 펼침막 들고 죽 늘어서서 구호만 외치는 걸로 생각했는데, 풍물을 치며 즐겁게 웃으면서 하는 출근 선전전은 처음 봤다. 확실히 이번에는 '밝고 가벼운' 소식이 될 거라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쌍용차 투쟁은 다 잊혀졌어! 우리만의 투쟁이 됐어!"

출근 선전전이 끝나고 가까운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는 자리. '밝고 가벼운' 소식에 대한 내 기대는 한 방에 깨졌다. 출근 선전전에 풍물을 친 것은 그네들도 오늘이 처음이라고 들떠 있던 것도 잠시, 총파업 돌입 1주년을 맞아 전국 순회 투쟁을 한다는 노조의 계획과 함께 '그때'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떤 사람은 딱히 누구한테 하는 건지 모를 욕설로 목소리를 높였고, 어떤 사람은 말없이 담배를 피우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화제를 돌리면서 분위기는 이내 다시 밝아졌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쉽게 밝아지지 않았다.

 김정우 지회장
김정우 지회장최규화
식당에서 나와 각자 일정에 따라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김정우 지회장과 둘이 지회 사무실에 앉았다. 아침 식사 자리의 분위기 때문에 한껏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어떻게들 지내고 계시냐고.


"힘들어. 취업이 안 돼. '쌍용자동차'라고 써서 이력서를 넣으면 다 빠꾸 맞는다고. 해고자가 아니라 희망 퇴직자라도 다 똑같아."

그렇다고 이력서에 쌍용차에서 일한 사실을 안 쓸 수도 없었다. 그러면 쌍용차에서 일한 10년, 20년 동안 놀고먹었다는 소리밖에 더 되나. 그리고 이력서에 그걸 안 쓴 사람들도 취업에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고용 보험 납입 실적을 조회해서 '쌍용자동차'라는 이름이 나오면 여지없이 탈락시켰다.


지난 여름 77일 동안의 싸움이 끝나고, 회사와 노조는 애초의 정리해고 대상자들 가운데 '반은 살리고 반은 죽이는' 안에 합의를 했다. 그런데 회사가 살려 준 사람들, 자르지는 않고 무급 휴직으로 쉬게 한 사람들도 사실상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들은 어쨌거나 쌍용차에 적을 두고 있고, 회사에서 4대 보험을 내 주고 있기 때문에 휴직 기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몇 번이나 김정우 지회장의 전화벨이 울렸다. 법원에서 벌금형을 때렸다는 조합원의 전화였다. 기본이 200만 원, 전과가 없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봐 줘서 150만 원씩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 그날은 쌍용차지부 한상균 지부장을 포함한 조합원 22명의 항소심 재판이 있던 날이었다. 사실 이제 텔레비전에서, 신문에서 쌍용차 이야기가 안 나오니까 우리는 그냥 또 잊고 살았다. 하지만 이미 지난여름에 최루액으로, 단전 단수로, 경찰특공대로, 자신은 노동자의 편이 아님을 증명한 이 나라의 공권력은 아직도 잊지 않고 노동자들을 계속 공격하고 있었다.

77일의 전쟁... 돌아간 일터는 지옥이었다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은 쌍용차 사측도 마찬가지였다. 회사는 징계를 통해 노동자들을 또 해고했다. 이른바 '산 자'들한테도 77일 동안의 싸움이 끝나고 다시 돌아간 일터는 지옥과 같았다.

"노예로 살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돼. 숨조차 쉬기 힘들어. 아침에 우리가 선전전을 하고 있으면 출근하는 사람들이 우리랑 눈조차 마주칠 수가 없어. 아파도 아프다는 얘기를 못해. 정비사업소 안에 옛날에 우리가 만들어 놓은 물리치료실이 있어. 그런데 요즘은 아파도 치료를 못 받으니까 물리치료사가 할 일이 없어서 다른 업무를 보고 돌아다닌다니까."

정비지회는 특히 더 아팠다. 4500명이 일하는 평택공장의 징계 해고자가 15명인데, 380명이 일하는 정비지회에도 15명이었다. 비율을 따져 보면 비교조차 안 되게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사측은 정비 사업소를 외주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서울은 빼고 부산, 대전, 광주의 세 군데 정비 사업소를 외주화해 버렸다.

쌍용차 정비지회에는 기구한 역사가 있다. 쌍용차 정비 부문이 1990년대 말 대우자동차로 통째로 넘어간 것이다. 그랬다가 2001년 대우차가 정리해고 사태를 겪고 경영이 어려워지자 다시 쌍용차로 돌아오게 됐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두 번이나 대규모 정리 해고 싸움을 겪었으니, 그것 또한 정비지회의 상처가 특히 더 아픈 까닭이었다.

"자본의 위기를 우리가 넘겨받은 거잖아. 빚을 갚아야 할 책임이 있는 상하이차가 배 째라고 채권단에 떠넘긴 걸 결국 우리가 다 넘겨받은 거야.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권은 또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노동자들을 죽인 거고. 그러니 이 정권하고 한판 붙을 판을 벌여야지. 3년에서 5년은 갈 거라고 봐. 그 정도 갈 거 생각 안 했으면 카센터 같은 거 할 생각도 안 했어."

쌍용차서 잘리고도 자동차판을 못 떠난 이유

 구로역 가까이에 있는 한성카센터
구로역 가까이에 있는 한성카센터 최규화

이들이 카센터를 차린 까닭은 '돈을 버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돈으로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우기 위해서'가 진짜 까닭인 것이다. 아직까지는 금속노조에서 생계 지원비가 나오고 있지만 올해 말이면 지원이 끝난다.

카센터를 차린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싸움을 해 나가다 도중에 지쳐서 쓰려지지 않도록 '노동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자신들을 묶어세웠다는 뜻이다. 열 명이 돈을 모아서 카센터를 인수했고, 네 명이 상근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성카센터의 수익금은 모두 투쟁 기금으로만 쓰인다. 그것도 올해에는 한 푼도 쓰지 말고, 금속노조 생계 지원비가 끊기는 내년부터 쓰기로 했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의 '밝고 가벼운' 소식에 대한 기대가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 좀 가벼운 질문을 했다. 카센터를 인수한 것이 3월 말이니, 한 달 동안 얼마나 벌었냐고 물어본 것이다. 김정우 지회장의 대답을 듣고 나니 내 질문이 확실히 가볍다 못해 좀 천박했다 싶었다.

 노동 공동체 '한성카센터'에서 일하는 모습
노동 공동체 '한성카센터'에서 일하는 모습최규화
"돈이 되고 안 되고는 다음 문제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서 바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으로 행복한 거지. 지난해 77일 동안 싸우고 나서 다들 심리 치유 같은 걸 받았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같은 병이 다 생겨 버린 거야. 잠도 못 자고 이명 같은 것도 들리고. 그런데 심리 치유를 받아도 그게 완치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하면 없어지는지 알아? 일하니까 없어져. 다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싹 없어졌어."

아무래도 오늘 '밝고 가벼운' 것은 포기해야겠다. 사실 취재를 하러 가기 전에 <작은책> 차를 몰고 가서 검진(?)도 받고 엔진오일도 한번 갈까 생각을 했다. 그러다 '아, 우리 차는 쌍용차가 아니지' 하는 생각에 그냥 두고 갔는데, 쌍용차 말고 다른 회사 차도 다 손볼 수 있단다.

누구라고 특별히 할인을 해 주지는 않지만 노동자의 양심을 걸고 절대 바가지는 씌우지 않는다는데, 하긴 운전하는 사람들은 다 알 거다. 아무리 멀더라도 카센터는 꼭 '아는 집'만 가는 까닭이 바가지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글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뭘까?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이왕 손봐야 할 차라면 이 카센터에, 쌍용차 노동자들의 희망의 노동 공동체에 맡겨 보시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비록 이 글에서는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진짜로 '밝고 가벼운' 쌍용차 노동자들의 소식을 전할 수 있을 텐데. '밝고 가벼운' 소식을 소개하라고 했더니 도리어 독자들한테 떠넘기는 괘씸한 기자를 용서하시길.

덧붙이는 글 | 월간 <작은책> 6월호에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월간 <작은책> 6월호에 실었습니다.
#작은책 #일터탐방 #쌍용자동차 #쌍용차수리 #쌍용차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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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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