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당신>겉그림
우리교육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녀가 나타날 법한 곳으로 눈이 자꾸 가는 그런 나의 하루, 누가 보면 나와 그녀는 연애를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와 그녀는 손님과 떡볶이장수로 팔아주고 파는 사람의 관계일 뿐이다. 덧붙이자면, 그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일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처럼 그녀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안부를 궁금해 하는 것은,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계속 서성대는 이유는 그녀가 한때 징그럽게도 외롭고 힘들어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을 다독여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떡볶이 아줌마 그녀는 나에게만 그런 존재가 아니었나 보다. 이 부분 뒤에는 그녀가 2주 만에 나타난 것을 어느새 알아차린 수많은 이웃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서로 질세라 새치기까지 하며 그녀의 안부를 묻는 장면이 왁자지껄하게 이어진다.
그리하여 나 이명랑은 결국 하루 종일 베란다를 서성이며 그녀와 만날 수 있는 자신의 순서를 기다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리기 시작할 무렵 그녀를 향해 달려간다.
"이 순대라는 게 그렇다네. 옛날엔 먹을 게 귀했잖아. 음식이 귀한 시절에는 버려지는 돼지창자도 아까웠던 거야. 그래서 버려지는 돼지 창자를 어떻게 먹을 수 없을까 해서 맍들어진 음식이 이 순대라잖아."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녀야말로 순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버려진 돼지 창자처럼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녀의 삶. 그러나 그녀는 그 보잘것없는 돼지창자 속에 기쁨과 희망의 온기를 집어넣어 그녀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책속에서매주 토요일마다 아파트 단지 한 모퉁이에 작은 화물차를 부려놓고 떡볶이와 오뎅을 파는 그녀 곁에는 언제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커다란 덩치의 다운증후군 아이가 놀고 있다. 작가 이명랑은 아이가 돌 무렵 남편을 잃은 그녀가 아이와 함께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인 그녀의 사연과 일상을 잔잔하게 소개한다.
책을 통해 만나는 그녀는 마음 따뜻하고 아름답다. 세상 그 누구보다 마음이 깊고 넓어 보인다. 그래서 아무리 힘든 일도 하소연 한 마디 하고 나면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책을 읽으며 내게도 이명랑씨의 이웃 '떡볶이 아줌마' 같은 이웃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니 이미 이런 이웃과 함께 살고 있는데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괭이부리말 아이들> <종이꽃>을 쓴, 우리사회 소외된 지역에서 오랫동안 공부방을 이끌고 있는 '공부방 이모' 김중미의 '만석동 천연기념물, 프레스공 고경순씨'편도 인상 깊게 읽었다. 살아가는 동안 자주 떠오를 것 같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모두 그렇지만.
고경순씨는 동네의 한 작은 공장에서 와셔를 만드는 노동자이다. 와셔는 볼트나 너트와 같은 기계부품 중 하나로 보통 나사가 풀리는 것을 방지하고 볼트나 너트가 받는 하중을 덜기위해 쓰인다. 사각형, 톱니바퀴 모양, 스프링 모양 등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그녀는 작은 와셔를 만드는 일을 주로 하지만 그래도 철을 다루는 일이라 여자 몸으로 힘들다.
그녀가 프레스공으로 이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올해 고3인 둘째가 혼자 밥을 차려먹을 수 있을 무렵부터. 겨우 사람이 다닐 정도만 빼고 위험한 기계들과 와셔의 원료인 철로 빼곡한 작은 공장에서 여자 몸으로 하루 종일 단순노동을 하는지라 힘들지만 자신이 번 돈을 살림에 보탤 수 있어 좋았단다.
또한 남편과 함께 일을 하고 둘이 오붓하게 먹는 점심이 행복했단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반 년 전, 간암으로 죽고 말았다. 두 아이와 함께 세상에 남겨진 그녀는 허전함을 달래고자 퇴근 후에는 혼자 사는 이웃 할머니를 찾아가 할머니의 밥벌이인 마늘 까는 일을 도와주고 휴일이면 영종도 등에 가서 바지락을 캐다가 이웃들과 나누기도 한다.
선아 엄마는 일을 안 하고 노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젊은 사람들이 더러운 일, 험한 일 가려 하는 걸 못마땅해 하고, 공장 일보다 서비스업을 선호하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 화가 난다. 그렇다고 돈벌이가 된다면 아무 일이나 막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선아 엄마는 사람이 하는 일을 정직한 일과 그렇지 못한 일로 나눈다. 그래서 정직하지 못한 일을 해서 돈을 버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만석동 천연기념물, 프레스공 고경순 씨' 중에서책속에는 고경순 씨의 남을 위한 배려의 큰 손과 자신을 위한 근검절약하는 손, 삶의 철학과 노동에 대한 가치관, 아이들 교육에 대한 자세 등, 그녀의 강단진 삶이 잔잔하게 소개된다. 닮고 싶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일이 힘들고 고단해 짜증이 날 때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내게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와 남을 향한 더 넓은 배려를 거듭 다짐하게 하리라.
"왜 나만 불행해?, 그럼 이 책 읽어 보시길!"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집배원, 농부, 숯 굽는 사람, 노동자, 복덕방 할머니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다. 외에도 돈을 벌기 위한 농사가 아닌 진짜 농사를 짓는 농부, 연봉 250만 원의 영화 연출부 막내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오늘도 행복하다는 청년, 찾는 손님은 그리 없으나 아흔 나이에 동네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며 동네 사랑방 주인을 자청하는 복덕방 할머니 등을 만날 수 있다.
<참 아름다운 당신>은 제목 그대로 참 아름다운 사람들의 참으로 가치있는 삶의 현장, 그 자체였다. 자신이 가진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을 통해 이웃과 행복을 나누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은 무엇인지를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 열세명의 주인공들이 뿜어내는 희망의 메시지와 아름다운 향기에 가슴 뭉클했다.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를, 삶에 지친 어른들에게는 다시 한 번 일어서서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걸핏하면 "운도 지지리도 따라주지 않네. 왜 나는 하는 일마다 꼬여?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지 몰라."라고 투덜대는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