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쥐가 나에게 가르쳐준 쥐잡기 방식으로 잡은 쥐
김수복
저는 다양한 것을 좋아합니다. 관심사도 다양하고 먹는 것도 다양합니다. 만나는 사람도 그 직업이나 개성, 성별, 인종은 물론이고 나이를 따져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 집에는 사람이면 모두가 무섭다고 혹은 징그럽다고 피하는 지네와 두꺼비가 참 많이 있습니다. 원래 대나무가 있는 집에는 지네가 많다고 합니다. 커다란 날개로 웅웅 소리를 내서 공포를 느끼게 하는 말벌도 참 많이 찾아옵니다. 거미도 있고 개미도 있고 지렁이와 뱀들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생명들과 공존 공생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들을 해코지 한 적이 없고 그들 또한 저를 해코지 한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저와 그들은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쥐는-오 조상님 용서하소서-이들은 그냥 쥐라고만 해서는 말이 잘 안 됩니다. 개가 새끼를 낳았을 때의 그 새끼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새끼라는 명사 하나를 더 붙여야만 말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반드시 쥐를 쥐라고 말하지 않고 새끼를 붙여서 말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쥐의 삶을 간섭한 바 없고 무슨 시비를 한 적도 없는데 저를 너무나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쥐XX는 그 모습만 떠올려도 이가 갈립니다.
두꺼비는 몸이 울퉁불퉁 이상하게 생겼으면서도 제가 만지면 오랜 친구인 양 가만히 있어줍니다. 반면에 쥐는 제법 날렵하고 붙임성도 있게 생겼으면서도 저와는 눈 한 번 마주쳐준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고생해서 확보한 식량은 잘도 먹어 치웁니다. 먹어 치우기만 하나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갉고 찢고 흘려서 아주 못쓰게 만들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 웬수놈의 쥐XX들을 어찌하나. 제가 그동안 머리를 참 많이도 굴렸습니다. 연식이 오래되어 잘 돌지도 않는 머리를 굴리다 보니 흰머리만 자꾸 늘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포기할까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쥐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찢고 뚫으면 또 얼마나 한다고 야박하게 살해를 도모할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하는 반성으로 몇 달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쥐는 농수축산 그 어떤 분야에서도 재배 및 양식 가공의 기술이 없습니다. 그러한 기술을 배우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식량위기에 노출됩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어찌하나. 하지만 저는 결국 사냥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왜냐하면 생산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남의 것을 훔쳐다가 창고에 쌓아놓는 기술은 대단히 탁월한, 존재 자체가 착취의 성분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해서 허술한 집만 공격하는 쥐들, 얄밉다 정말고백을 하자면 제가 참 많이 가난합니다. 가난은 지켜야 할 것이 없으니 홀가분하고 그래서 행복에 가깝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대를 살아가자면 최소한의 돈은 필요합니다. 동굴이나 무인도로 피난을 하지 않는 이상 전기료에 가스비에 전화료 등등은 필요하고, 쌀값이라든가 기본적인 부자재들, 이를테면 소금이라든가 콩기름, 그리고 세제라든가 운동화 같은 것들을 구입할 돈이 있어야 합니다.
주요 부식들은 마당에 지천으로 깔린 온갖 풀들이며 꽃들을 따다가 생으로 먹거나 데쳐서 먹기에 돈 들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어머니와 둘이서 월 45만원 정도면 생활이 가능한데 이 안에는 물론 가끔 들러야 하는 어머니의 병원비와 유류대도 포함이 됩니다.
가난뱅이 주제에 무슨 자동차까지 운영하느냐는 반문이 혹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골에서는 가난할수록 자동차가 필요합니다. 버스는 잘 있지도 않거니와 오후 8시면 막차가 떠나 버립니다. 택시는 왕복요금을 계산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동차가 없는 편보다는 있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답이 나오게 됩니다.
무엇보다 저는 어머니와 둘이서만 사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친구랄 수 있는 개도 데리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고자 아들이 집을 나선 뒤에 어머니는 개를 보시면서 "개가 쌀 같네, 하얗기도 하네"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시간을 보내십니다. 그런데 이 개가 어느 날 새끼를 여섯 마리나 생산해 버렸습니다. 여기서 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제가 이들을 다 먹여살릴 능력이 있는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 여섯 마리의 강아지 중 세 마리를 후배가 어디어디에 분양하겠다고 해서 내주었습니다. 그 뒤에 남은 세 마리 플러스 어미 이렇게 해서 지금 네 마리의 개가 저희 집 식구로 동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와 제가 먹는 쌀값보다 개 사료값이 더 많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개가 먹으면 얼마나 먹으랴, 했는데 계산을 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한 포에 수만 원씩 하는 고급 사료는 감히 꿈도 못 꾸고 가장 싼 것을 구입하는데도 그렇더라고요. 문제는 값이 아니라 사료를 어디에 보관하느냐였습니다. 개 사료를 부엌 싱크대 안의 쌀자루와 함께 둔다는 것이 글쎄, 딱히 이유는 없지만 뭔가 구성이 잘 안 맞는다 싶어 바깥의 창고에 두기로 했습니다. 이것을 저와는 하나도 친하지 않고 인사 한 번 나눈 적이 없는 쥐들이 떼로 몰려와서 먹어 치우고 일부는 아예 못쓰게 만들어놓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