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동이>에서 인현왕후 역을 맡은 배우 박하선.
MBC
인현왕후가 '장옥정 구명운동'을 재개한 것은 명성대비가 죽은 숙종 9년 12월 5일 즉 서기 1684년 1월 21일 이후였다. 위의 <숙종실록>에 따르면, 명성대비가 죽은 뒤에 인현왕후는 숙종에게 장옥정을 다시 불러들이자고 제안했다. 여기에다가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숙종의 증조모)까지 장옥정 구명운동을 거듦에 따라 장옥정은 다시 궁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숙종과 장옥정을 붙여주고 싶어 하는 인현왕후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위의 <숙종실록>에 따르면, 하루는 장옥정이 숙종의 '희롱'을 받아주지 않고 중궁전 앞에까지 도망을 오자 "너는 마땅히 전교(왕명)를 받들어야 하거늘,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하느냐?"며 장옥정을 정중히 꾸짖었다고 한다. 참으로 바다처럼 넓고 넓은 '대범함'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실록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궐에서 내쫓긴 장옥정을 위해 끊임없이 구명운동을 전개하여 그가 다시 숙종의 사랑을 받고 후궁의 자리에까지 다가갈 수 있도록 기여한 '일등공신' 중 하나는 '뜻밖에도' 인현왕후 민씨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인현왕후의 태도는 그리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가부장적인 분위기일지라도, 다른 여자가 자기 남편과 잘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여자는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기 남편이 너무 너무 싫어서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인현왕후의 태도는 인간의 상식을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인현왕후의 태도에 진정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은 그 후의 사실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자기 덕분에 궐에 돌아온 장옥정이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자 그의 종아리를 때리도록 한 사실이나, 장옥정을 통제하기 힘들다고 판단되자 다른 여인을 불러들여 그를 견제하기 위해 숙종에게 후궁 선발을 권유한 사실 등을 보면, 인현왕후가 처음부터 장옥정을 진심으로 포용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장옥정을 '힘껏' 도와줬다, '힘껏' 얻어맞은 인현왕후원수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댈 수 있을 정도의 넓디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원수가 자기 말을 잘 듣지 않고 얄밉게 군다 하여 원수의 종아리를 때리도록 하거나 원수를 견제할 대항마를 불러들이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점들을 생각할 때, 자신에게 백해무익할 뿐인 장옥정의 복귀를 위한 인현왕후의 구명운동은 장옥정에 대한 경쟁심을 숨기고 자신의 아량을 과시하기 위한 '쇼'에 불과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역관과 여종 사이에서 출생한 장옥정이 숙종의 사랑을 얻고 후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결정적 기여를 한 요인 중 하나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아이러니하게도 인현왕후의 불필요한 '호기'였다.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출세를 '힘껏' 도와주었다가 나중에는 장희빈으로부터 '힘껏' 얻어맞은 사실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 <동이>에서는 최 숙빈을 후원한 장옥정이 결국 최 숙빈에 의해 파멸될 것이라는 암시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옥정을 후원한 인현왕후가 결국 장옥정으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는 수모를 당했던 것이다.
인현왕후가 장옥정 구명운동을 벌인 때로부터 장옥정에 밀려 폐서인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에 최 숙빈은 아직 일개 궁녀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보다 지위가 훨씬 높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두 여인의 관계를 흥미진진하게 관찰하고 있었을 궁녀 최씨는 마음속으로 혹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중전마마, 사랑 앞에서 솔직해지세요!'
'질투의 감정을 부끄러워마세요!!'
'용기 있는 여인이 왕을 얻는 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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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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