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평화박물관에서 열린 UN 자유권규약위원회의 병역거부 구제조치 권고에 따른 기자회견에서 조정의민씨가 울먹이며 말을 잇고 있다.
전쟁없는 세상
또한 국방부는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이야기하며 병역거부가 인정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국제인권의 권위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위원회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이유로 일정한 권리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제한은 바로 그 권리의 정수(the very essence of the right)를 손상시켜서는 안"되며, 병역거부권은 그 본질에 속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어쩔 수 없이 병역거부권이라는 인권을 '유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인권이란 그러한 조건에서도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인권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병역거부는 분단 정도가 아니라 실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 가운데에서 인정되어왔다. 1차 세계대전 중에 병역거부를 인정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병무청장이었던 허시 장군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소수자의 권리들을 보존하기에 충분한지 알아내기 위한" 척도라고까지 표현했다.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안 된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위원회는 한국정부에게 앞으로 이와 같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며, 보상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구제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결정 이후에도 현재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한국 병역거부관련 진정은 500여 건이 추가로 논의되고 있다. G20 유치니 '국격'이니 이야기하지만, 이 정도의 사안이 국제사회에서 논의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이명박 정부는 모르는 듯하다.
한국 정부는 180일 이내에 관련된 조치를 취하고 이를 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 어떤 위상을 가질 수 있을지가 확인되는 시간일 것이다.
성역화된 병역과 군대에 대한 비판적 언어 부재우리나라 병력 규모는 세계 6위이다. 지난 60년간 거대한 징병제가 유지되어 온 덕택이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징병제가 제대로 된 비판 한번 없이 유지되어온 사회는 없다. 성역화된 병역과 군대는 수많은 인권유린과 사회적 차별의 온상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 언어는 부재했다.
군가산점이나 병역거부 관련한 사안이 이를 증명한다. 헌법재판소에서 군가산점과 관련하여 "국가가 아무런 재정적 뒷받침 없이 제대군인을 지원하려 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여성과 장애인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초래한다는 것을 확인"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도 "억울하면 군대 가라"와 같은 감정적 대응 속에서 압도당하는 상황이다.
병역거부 역시 마찬가지다.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말이나 되냐는 야유에 대해서 독일을 비롯한 포르투갈(제41조 5항), 스페인(제30조 2항), 러시아(제28조) 등의 수많은 나라 헌법에 병역거부가 명문화되어 있다고 답변하는 것도, OECD국가 중에서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우리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 어떤 사실도 "나는 가는데 왜 너는 안 가냐"라는 분노 속에서 배척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역거부자들을 계속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이 분노가 해결될 수는 없다. 여성 대 군필자로, 병역거부자 대 군필자로 만들어지는 거짓 대립에 숨어있는 이들이 바로 이 분노를 해결해야 할 책임을 가진 주체이다. 수많은 이들의 정신적, 신체적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어야 할 의무는 분명 그들을 무자비하게 동원했던 국가의 몫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 분노에 찬 대립을 통해서 자신의 책임을 피하면서도 '동원'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장려하는지도 모르겠다.
천안함 희생자들을 영웅으로 호명하고 태극기에 쌓인 성금을 유가족들에게 안기며 덮으려 하지만 결국 본질은 국가의 동원에 의한 민중들의 억울한 희생이다. 유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진실'은 여전히 가려져 있다.
병역거부자들 역시 군사정권 시절 군대 내부에서 숱한 구타와 고문으로 죽어갔다. 지금까지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은 1만 5000여 명이 넘는다. 더 이상의 감옥행은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 부디 이제는 고통과 희생이 멈추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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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 감옥행, '국격'에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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