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열품 하나하나에 관심을 표하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해설사 설명을 듣는 송미리씨 일행
조종안
"다시는 가슴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한 산 교육의 장소로 그 가치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역사에 대한 애착을 두고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이종예(61) 해설사의 설명이다.
그는 "건물 관리는 군산세관에서 하고 있으며, 유지 및 보수는 군산시 문화 관광과에서 하고 있다"며 "산교육의 장소이다 보니,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계층의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루 평균 1백여 명, 시티투어가 있는 주말에는 수백 명씩 다녀가기도 하는데, 초등학생은 물론, 부모를 모시고 오는 젊은이들과 주한미군, 가족단위로 오는 일본인과 외국인들도 상당수 있다고 설명했다.
밖에서는 텅 비어 있을 것으로 알았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까 구경할 게 많아 매력을 느꼈다는 젊은 여성도 있고, 평화봉사단으로 와서 시내 관광지도를 만들어 기증한 외국인도 있고, 선조들의 잔학상을 듣고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일본 방문객들도 간혹 만난다고 했다.
서울에서 직장 동료와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시간을 내서 들렀다는 송미리(29)씨 일행은 옛날 흑백사진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면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송미리씨는 "외국인들도 와 본다는데 지금까지 몰랐다니 창피하네요. 돌아가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려서 다시 와야겠네요!"라며 수줍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상업의 중심지일제의 조선 식민지화 정책으로 이루어진 군산의 개항(1899년)은 왜놈들의 쌀 수탈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나 다름없었다. 일제가 호남평야의 기름진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창구 구실을 했던 항구였기 때문이다.
인천항 개항(1883년), 목포항 개항(1897년)에 이어 군산항이 1899년에 개항했다. 개항 당시 군산은 150가구에 주민 511명이 사는 한적한 어촌이었고, 겨우 보부상들이 이용하는 작은 포구였으나 식민 수탈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