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에
영화, 가고파
김소월 시인의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 알아보랴'라는 시구처럼, 부모님에 대한 은혜와 사랑을 살아 계실 때 깨닫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해마다 돌아오는 '어버이날'. 이젠 찾아뵙고 인사드릴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것이 너무 쓸쓸하다. 왜 진작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나는 효도를 하지 못했을까.
누군가 부모한테 하는 효도는, 그 부모가 하는 효도를 그대로 본받아 배운다 했으나, 나의 부모님은 지극한 효성심을 가진 분들이셨는데, 난 돌아가신 부모님의 효성심의 십분의 일도 가지고 있지 못하니, 이런 말도 사람 나름인가 보다.
이렇게 눈이 부시게 환한 5월이 되면, 어머니께서 맛있게 끓인 된장찌개가 올려진 둘레상에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식사를 했던, 그 어린시절이 정말 그립다.
가끔 어린 시절 그 구수한 된장찌개의 맛을 잊지 못해 여러가지 재료를 넣고 어머니의 솜씨 흉내내지만 내가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어머니의 된장찌개 맛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그것은 내가 끓이는 된장찌개는 항상 '슈퍼마켓용 된장'이 들어가서일 터.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이렇듯 따뜻하고 구수한 것만 있진 않다. 어머니가 주로 드시던 깡보리밥에 얽힌 아픈 추억도 있다. 어머니는 구수한 된장찌개도 잘 끓이셨지만, 삼층밥(위에는 쌀을 앉히고 중간에는 보리쌀과 쌀을 약간 섞고 맨 밑에는 순 보리쌀)도 잘 지으셨다.
어머니가 짓는 삼층밥은 어떻게 보리쌀과 흰쌀이 하나도 뒤섞이지 않았을까 지금도 신통하다. 맨 위에 앉힌 쌀밥은 항상 이가 성치 않는 할머니께 드렸고, 그 다음엔 아버지, 그 다음엔 쌀과 보리를 반반 섞어 우리 형제들에게 주셨다. 그리고나면, 가마솥의 맨 밑에 깔리 깡보리 누룽지밥은 항상 어머니 차지셨던 것이다.
내 어릴 적(60년대 초반)에는 쌀이 아주 귀했다. 귀한 쌀밥을 할머니, 아버지와 우리 형제들에게 밥 다 퍼주고,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 하셨던 것이다.
"
난 속이 불편해서 못 먹겠다. 너희들 많이 먹어..."어머니는 속이 거북하다고 보리밥숭늉만 드셨다. 그런데 나는 철이 어느 정도 들 때까지도 내 어머니는 속(위장)이 불편해서 식사를 못하신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요즘은 일부러 건강을 생각해서 먹는 보리밥. 된장찌개에는 쌀밥보다 사실 깡보리밥이 좋다. 어머니께서는 날마다 보리쌀을 삶아 '보리밥 바구니(보리쌀은 딱딱해서 한번 삶아서 밥을 해야 한다)를 시원한 뒷마당의 처마 밑에 매달아 두셨다.
이 보리밥 바구니가 텅 빈 것은 집에 먹을 쌀이 없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마치 냉장고가 텅 빈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