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자극의 혁명가 두로프서커스 공연에서 고양이와 함께 있는 두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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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두로프의 돼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연극이론의 역사는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희생제의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극에서 최근의 상황극까지 극의 원류와 서사의 방식을 묻자면, 깊이와 넓이가 방대해진다. 198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제목에 끌려 한 권의 책을 샀다.
<어릿광대의 정치학-두로프의 돼지>란 책이었다. 저자 조엘 쉐흐터는 예일대학교 연극원 교수로서 당대의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연극'의 역사를 연구했다. 책에는 근대에 들어, 독재자에 저항하는 어릿광대, 두로프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의 마지막 전제군주 빌헬름 2세가 황제로서 위세를 떨치던 1907년 블라디미르 레오니도비치 두로프라는 러시아인 광대가 독일에서 반역죄를 선고받고 추방되었다는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는 돼지를 길들여 연극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영어 이야기를 잠깐 하면 영어에도 시어 중에 'helm'이란 단어가 있다. 황금투구를 뜻하는 단어인데, 어의 변용을 통해 지금은 배를 운전하는 조타장치란 뜻이 있고, 나아가 지배권, 지배적 권리란 뜻이 있다. 러시아 출신의 광대 두로프는 서커스 링 위에 독일 장교의 모자-그가 헬름이라고 부르던-를 올려놓았고, 훈련받은 돼지는 그것을 가지러 달려갔다.
두로프는 복화술을 이용하여 마치 돼지가 'Ich will helm' 즉 '나는 군모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Ich Wilhelm' 즉 '나는 빌헬름 2세이다'라고도 해설될 수 있었다. 돼지가 당시의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된 것이었다. 두로프. 그는 연극사에서 매우 혁명적인 인물이다. 그는 '나는 어릿광대의 왕이다, 결코 왕의 어릿광대가 아니다'란 말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왕은 노발대발했다. 왕의 즐거움을 위해 유희와 공연을 벌어야 할 서커스단의 광대가, 투쟁의 목소리를 낸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