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과 영은문 주초. 독립문이나 영은문 주초 모두 도로정비로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옮겨왔다.
박금옥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나와 무악재를 넘는 길로 접어들었다. 홍제동 방면이다. 우리나라 처자들이 중국의 공녀가 되어 걸어가던 길이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원, 명,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여자들을 바쳤다. 힘이 없는 나라에서 가장 만만한 것이 여자들이다. 동네북처럼 이곳저곳에서 집적이고 두들긴다. 해설사가 시를 한 부씩 나누어 주었다.
구중궁궐 깊은 속에 미녀이더냐1만리 먼 곳으로 끌려가는 아가씨야잡초가 어찌하여 향기풀 되어 가지고 물고기 산을 넘어 점점 멀어만지네부모 슬하 떠나자니 말문 막히고눈물을 참자하니 슬픔 더 할 뿐근심 걱정 낙망 속에 어려운 이별저기 저 산들만이 꿈속에 푸르고나. 고려말 조선초의 학자 권근의 <부(賦)>다. <부>는 조세나 부역에 징발된 사람을 일컫는 한자다. 어쩌지 못하는 답답함을 시로 남겼다. 공녀들과 가족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었을까. 부박(浮薄)한 범인(凡人)인 내게는 시가 마음에 담기지 않았다.
조공으로 보내기 위한 처녀선발에 임금이 손수 관여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뽑힌 공녀들에게 임금과 왕비는 위로연을 열어주었고, 모화관까지 나와 전송을 했다. 공녀들은 영은문에서 가족들과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무악재를 넘고 홍제, 불광, 구파발, 파주, 문산, 개성, 평양, 신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갔다. 홍제동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의주로다. 육로와 해로를 통해 중국까지 2달여가 걸렸다. 걸어서 가는 도중에 환관들에게 희롱도 당하고, 아파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