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23주년, 진실은 여전히 '쉬쉬'

체르노빌 주변지역 사람들 지속적으로 방사능 노출돼도 국제적 인정 못받아

등록 2010.05.03 12:06수정 2010.05.03 12:11
0
원고료로 응원
4월 파리의 초저녁은 눈부시다. 지난 4월 23일 금요일 저녁, 룩상부르 공원을 산책하다 재앙에 대한 논문을 쓰는 친구가 다음날 오후 3시에 생퇴스타슈 성당 광장에서 체르노빌 사고 23주년 추모집회가 있다고 귀띔했다.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 쓰고 모이라고 했어."

4월 말, 이 아름다운 시기에 방사능 참사가 있었군…. 난 23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추모 집회를 하는 이유가 궁금해 집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토요일 점심 무렵, 몽수리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려 레알에 도착했다. 거리를 서성거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 생퇴스타슈 성당 앞 광장에 추모를 위해 모인 사람들은 30명 남짓.

"체르노빌 사고, 쉬쉬하면서 숨기고 있는 문제 많아"

 4월 24일, 파리 생퇴스타슈 성당 광장에서 열린 체르노빌 사고 23주년 추모집회
4월 24일, 파리 생퇴스타슈 성당 광장에서 열린 체르노빌 사고 23주년 추모집회 서미원

잠시 숨을 돌리려고 앉은 자리 맞은편에는 한 여성 활동가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체르노빌, 프랑스도 불안전지대에 있다'라는 글귀, 피해지역 지도, 몇몇 희생자의 몽타주와 이름을 적은 피켓 등을 들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 중년 남성에게 다가가 나도 참여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는 "물론이지" 하면서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체르노빌 사고는 세계 보건기구랑 국제 원자력 기구가 나서서 쉬쉬하면서 숨기고 있는 문제들이 많아…."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핵 발전기 한 대가 폭발했다. 이 사건으로 핵 방사능의 위해성에 대해 논란이 시작됐지만 핵 방사능이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무엇이 위험한지 국제적으로 '인정'된 자료는 거의 없다.

국제 원자력 기구(IAEA)의 2005년 9월 5일 발표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50명, 갑상선 암에 걸린 아동이 4000명이다('방사선영향에 관한 유엔 과학위원회'(UNSCEAR)에서도 같은 자료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의 신빙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1959년 '핵 산업에 지장을 줄 만한 정보는 일반인에게 숨기자'라는 협정이 맺어졌는가 하면, 1996년 체르노빌 10주년 비엔나 회의에서 주최 측인 국제 원자력 발전기구가 국제적 논쟁을 불식시키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또한 2001년 12월 8일에는 '영유아의 염색체 이상 수치와 땅의 방사선 오염 정도는 관계가 없다', '사고 이후 선천성 기형아·사산아·조산아의 증가가 없다', '방사선에 노출된 것과 관련된 암의 증가가 없다', '사고 10년 뒤, 백혈병 발생 증가의 증가가 없다'라는 결과를 담은 보고서가 채택되기도 했다.

또한 지금까지 '방사선 영향에 관한 유엔 과학위원회'(UNSCEAR) 안에 핵 관련 산업으로부터 일체의 지원을 받지 않는 연구자는 단 두 명에 불과한 것, 또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연구자들이 주도한 연구와 '2001년 보고서 채택'에 대한 사절단의 비판이 무시된 것 역시 통계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지금도 체르노빌 주변지역 사람들 몸에는 방사능이

고멜의학연구소를 세워 9년간 체르노빌 사고로 분출된 세슘 방사성이 인체 기관에 미친 영향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던 벨라루스 출신의 유리 반다 예프스키 교수는 '강제 연구'라는 죄목으로 연구를 중지 당했다.

안트로포감마메트리(anthropogammametres)
프랑스 국립과학 연구센터(CNRS)는 이온화된 방사선에 노출된 근로자들이 매년 특수 의료 감독을 받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연간 이온화된 방사선에 노출 되는 양에 따라 근로자의 카테고리를 A (6-20 mSv/년)와 B (1-6 mSv/년)로 나누고 있다.

안트로포감마메트리는 A, B 카테고리의 근로자들의 이온화된 방사선을 의료 모니터링하는데 추가적으로 사용되는 검사 기기 중 하나. 체내에 방사능 뉴클레이드가 유지되는 것을 돕거나 방사능 뉴클레이드의 투입을 쉽게 만드는 병리를 탐지하는 '내부 노출'을 검사하기 위해 사용되며, 신체 기관 내에 몇십 킬로볼트 정도의 감마선을 방출하면서 방사능 뉴클레이드를 탐색한다.
그의 뒤를 이어 벨라드 연구소 창설자인 바실리 네스테렌코 교수가 '세슘 137(핵분열 과정에서 형성되는 방사능 동위원소)'과 그 위해성을 다루는 병리학적 설명을 시도했다. 특히 연구소는 12년 동안 28만 4000명의 아이들이 방사능 측정했고 의사, 간호사, 교육자들에게 방사선 보호와 관련된 교육을 제공했다. 네스테렌코 교수의 연구는 1994년부터 서유럽 비정부기구들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이 연구는 이동 가능한 안트로포감마메트리 (*anthropogammametrie) 의자를 지원 받아 인체 내의 방사능 정도, 특히 '세슘 137'의 축적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벨라루스의 발라브스크는 체르노빌로부터 80km 떨어져 있는데, 170명의 아동을 포함한 성인들이 핵 사고 이후 계속 살고 있다. 그들의 신체에는 방사능이 계속 쌓이고 있다. 반다예프스키 교수가 보여준 바에 따르면, 15% 이하의 아동만이 정상 카디오그램(심박) 수치를 보이고, 그들의 몸무게 1kg당 70베크렐(방사능 측정단위) 이상의 세슘 137이 축적되어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1kg당 600 베크렐 이상의 축적치를 보이기도 했다.

벨라루스 의사들은 1985년과 1999년 질병 발병 수치를 공개하며 체르노빌 사고 이후 80% 이상의 벨라루스 아이들이 건강이 비정상적으로 나빠졌다고 주장한다. 높은 백혈병·신장암·방광암·폐암·심장혈관계통 질병· 면역체계교란 질병 등의 발병율을 갖고 있음 물론 백내장·지체장애· 알레르기성 질병·천식·자가면역질환·신종당뇨병·내분비선 관련 질병·생식샘 교란 문제가 흔히 일어나고 있다.

심장근육병증(심장병의 일종)을 줄이거나 막기 위해서는, 이미 방사능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사과 펙틴(반복적으로 제공하면 체내의 중금속과 세슘 137의 최소 30%에서 70%을 제거하는 치료 효과가 있다. 1년에 3-4회 공급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15베크렐 이상 축적치를 보이는 개인에게 공급한다)을 섭취하는 것이 현대 과학이 발견한 세슘 제거를 위한 유일한 방법일 뿐이다.

프랑스인들, 핵에너지보다는 재생에너지 개발 원해

체르노빌 23주년을 기억하는 프랑스 핵 반대 단체와 환경단체들의 활동 영역은 건강뿐만 아니라 환경문제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방사능에 대한 연구와 독립적 정보를 위한 위원회'(CRIIRAD)는 발라스크에 있는 170명의 아동에게 펙틴을 공급하는 벨라드를 지원한다. '체르노빌의 아이들' 벨라루스 지역본부가 체르노빌 사건과 지역아동지원을 직접하고 있는 벨라루스 연구자들과 물자 지원 및 연구 교류를 하면서 얻는 생생한 지식은 프랑스에서, 또 전 세계 핵 발전을 사용하는 어디에서든 공유해야 할 중요한 정보임에 틀림없다.

'핵에너지로부터 탈출하기'(핵에너지에 반대하는 단체 및 개인의 네트워크)와 '그린피스' 는 프랑스 내의 핵에너지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위의 단체들과 함께 연대 캠페인을 하고 있었다. 특히 '핵에너지로부터 탈출하기'는 프랑스에 있는 121개의 핵 발전 시설 중 가동이 중지된 14개 시설 해체와 폐기물 처리에 대한 조치가 없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편 새로운 핵 발전 시설 설치를 하지 않겠다던 사르코지 대통령은 약속과 달리, 프랑스 동쪽 지역에 핵 시설 해체 후 폐기물을 매립할 새로운 장소를 찾고 있어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빗발치고 있다. 그린피스는 망슈 지역 플라망빌의 프랑스 전력공사 부지에 EPR(유럽형 가압경수로) 원자로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국제 핵 위험 전문가인 존 라지에게 요청한 EPR에 대한 자문에 따르면 EPR의 플라토늄의 사용과 동력은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이라고 할 만하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의 EPR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2007년 2월 16일 일간타블로이드 <20분>에 따르면 78%의 프랑스 사람들이 재생 에너지를 우선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프랑스 환경에너지 관리청(ADEME) 은 EPR이 향후 5년간 재생에너지 일자리 창출(45만개 예상)이나 경제활동에 장애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생태적이고 지속적인 사용이 가능한 재생에너지 개발은 프랑스 기술자들의 일자리 안정과도 연관되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의 몸이 또 다른 사각지대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

다른 자원 활동가들과 함께 마스크를 쓰고 레알부터 퐁피두 센터까지 함께 행진하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표정을 살폈다. 피해자의 이름과 양력을 관심을 갖고 읽는 사람도 있었고, 체르노빌 사고를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캠페인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적었다.

체르노빌 사고 23주년. 체르노빌과 그 근교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방사능에 노출되어 피해를 받고 있어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전체적인 피해가 얼마나 클지는 알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국내에 이미 지어진 원자로의 폐기계획, 원자력발전 관련 노동자, 주변지역 주민의 건강과 안전관리 그리고 사고예방에 대한 계획 및 대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사회적 보건적 비용에 대해 정부의 예측은 어떠한지 질문해 봄직하다.

핵에너지 발전은 시설준비과정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 동안 끊임없이 존재하는 방사능 누출 및 안전사고의 위험도 고려해야 하는, 엄청난 사회적 대가가 드는 작업이다. 1월 21일자 <한겨레>에 따르면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의 골자가 국내 원전의 설비 비중을 현재 26%에서 2030년까지 41%로 확대하고, 발전용량 비중도 59%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란다. 게다가 전력산업 발전을 위해 전기 요금 일부를 떼어 쌓고 있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원자력에만 홍보 예산을 책정해, 한해 70억 원 넘게 쓰고 있는 것도 국가 에너지 발전 계획을 원자력으로 굳히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당연히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지만 우리의 몸이 또 다른 사각지대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원자력 #체르노빌 #국제 원자력 발전기구 #프랑스 #사르코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