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회초리

등록 2010.05.01 18:20수정 2010.05.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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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아는 분(아들)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의 심정이 되어 글을 썼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어버이가 있고, 이 글 속의 아버지는 그런 한 분이기도 하셨지만, 또한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 어버이였던 것 같습니다. - 기자 주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러시아 리얼리즘 화가로 유명한 일리야 레핀의 그림. 어느 혁명가의 귀환을 그렸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러시아 리얼리즘 화가로 유명한 일리야 레핀의 그림. 어느 혁명가의 귀환을 그렸다.일리야 레핀

아들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멀쩡한 사람들도, 아니 멧돼지도 때려잡을 항우장사들도 한번 들어가면 죽음이 되어 나온다던 대공분실. 서울대학을 나온 그 잘난 아들이 공장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미 예고된 일인지도 모른다.

아들을 만나야 한다. 빨리 만나야 한다. 내 새끼도 죽게 놔둘 수야 없잖은가.

일본놈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겨우 소학교를 마쳤지만 한학을 했고, 우리 집안 누구도 경찰서에 잡혀갈 일은 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 놈처럼 살지는 않았다. 이놈을, 내 이놈을.

그래도 빨리 만나야한다. 컴컴한 조사실에서 내 새끼가 두들겨 맞고 있는 건 아닌지. 일곱 자식의 막내, 다정하게 곁을 내준 적은 없어도 마음 속으로 공부 잘하고 심지 굳은 녀석이 늘 대견했는데, 막내가 지금 없다.

합천에서 서울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직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새끼를 찾기 위해 학교부터 가니, 그 놈도 그런 놈인지 다정한 서울놈이라 그런지 남영동까지 어떤 학생이 안내해준다.


어떻게 하지. 이 음험한 기운이 감도는 곳, 어떻게 내 새끼를 만나지. 소리를 지른다고 내 귀한 새끼를 내놓을 것 같지도 않고, 하릴없이 문 앞을 지키고 서서 울 수도 없고. 어떡하지. 저 철문 속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내 새끼를 어떡하지.

돗자리를 폈다. 태양이 뜨겁다.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태양. 그러나 저 태양만큼이나 내 마음도 탄다. 갈증이 난다. 입술이 마른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가슴에 품었던 회초리와 상장을 옆에 내려놓았다. 빛나는 상장도 며칠째 내리쬐는 햇살 아래 무색하다. 바람을 가르는 회초리도 시들하다.


철문너머 드디어 사람이 나왔다. 며칠 대공분실 앞에서 내 새끼 면회시켜 달라고 돗자리 펴고 꼿꼿이 앉아 있었다. 내 무릎도 기력을 다해 자꾸 흐트러지던 어느 날, 새끼 잡던 그 놈들이 차마 아비인 나까지 잡을 수 없었는지 철문을 열고 나왔다.

지금은 기다리고 있다. 책상너머 빈 의자를 사이에 두고 삼십촉 백열등이 어른거리는 이 곳에서 며칠을 태양 아래 기다릴 때보다 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무사할까, 무사해야 할텐데.

멀리 자박자박 복도를 걷는 소리가 난다. 그래 내 새끼다. 저 놈 발자국 소리는 원래 크지 않았어. 생물을 조심조심 비켜 다니던 놈이었지. 그런데 발자국 소리에 기운이 없다. 혹시 너무 맞아서 그런 걸까. 아닐 거야. 면회를 허용하지 않았는가.

문이 열린다. 순간 왜 일리야 레핀이 생각났을까. 녀석이 대학에 들어가고 녀석 방에 걸려있는 그 그림. 아무도 반기지 않는 혁명가 아들의 방문, 퀭한 눈, 깡마른 몸, 잿빛 코트. 그림 속에서 아들을 돌아본 어머니도, 아내도, 아이들도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혁명가 아들이었는데. 이 좁은 면회실에 심장이 타들어갈 듯 앉아 있으면서도 내 새끼가 올 것 같지 않았는데. 레핀의 그림처럼 문을 열고 들어선 아들은 어둠 속에서도 파리하다. 걸어 들어오는 아들을, 혁명가가 돼버린 내 새끼를 올려다본다.

생각해 보면 면회실 문에서 두세 걸음이었을 건데, 그 땐 왜 그리 아득한 곳에서 내 아들이 오는 것 같았는지. 그저 멍하니 올려보다 내 앞에 멈춰선, 고운 입술이 툭툭 갈라지고 작은 얼굴에 뺨은 움푹 꺼지고 광대뼈만 불룩 솟은 몰골을 보니, 아차, 내 새끼가 왔구나 정신이 번뜩 든다.

"아버지", 새끼가 나를 부른다. 살아서 부른다. 입술엔 다 괜찮다는 듯 엷은 미소를 띈다. 그래, 내 새끼야, 몸은 성하냐 물을 새도 없이 마음은 급하다. 몸이 성하냐, 몸이 성하냐 속내로 골백번 혼자 물으며, 나도 모르게 녀석이 까마득히 어린 시절에 그랬듯이 새끼 엉덩이부터 까뒤집어 본다. 그 새 많이 자랐구나. 어린 때 토실토실했던 살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뼛가죽만 남았구나. 너도 이 세상을 살아내느라 힘들었구나.

경찰, 네 이놈들, 내 새끼를 건드리진 않았겠지. 그랬다면 내 너희를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천천히 새끼의 엉덩이를 본다. 그래, 괜찮다. 그래, 괜찮구나. 다행이다. 아들아, 아들아. 갑작스레 아비의 손에 바지가 벗겨진 아들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바지를 추어올린다.

다시 의자에 앉았다. 초라한 몰골의 녀석. 내 저 놈에게 남을 짓밟고 남을 이겨라, 남보다 더 잘 살아라, 너만 잘 살아라 가르친 적은 없다. 초등학교 들기 전, 천자문을 가르치고 소학을 함께 읽으면서 내 너의 총명함을 알아보았지만, 니가 국가에 반대하는 노동자가 될 줄은 몰랐다. 아무리 험한 국가라 해도, 니가 빨갱이 좌익이 될 줄은 몰랐다. 똑똑한 좌익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묻혀버렸는지 넌 모르느냐. 세상 애비들은 똑똑한 빨갱이 아들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단다, 아들아.

가슴에 품고 있던 상장을 꺼냈다. 그리고 녀석에게 말한다. 우리 집안에는 국가로부터 상은 받을지언정 너처럼 국가를 해하는 이는 없었다. "바짓단을 올리거라."

어리둥절해 하는 녀석의 눈을 봤다. 주변을 지키고 선 경찰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그럴수록 나는 더 강한 눈빛으로 주변을 제압했다. 웅성거림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회초리를 꺼내들었다. 그래 이 회초리는 너를 잘못 가르친 아비의 절규다. 녀석의 쓰러질 듯 깡마른 두 다리에 회초리를 친다. 내 새끼야, 너를 키우는 동안에도 내내 다락에 두고 쓸 일 없었던 회초리를 경찰에 붙잡혀 갔다는 네 소식을 듣고 꺼내 챙길 때, 내가 어땠는지 너는 아느냐. 스물이 넘어버린 네게 회초리를 쳐야겠다 마음먹을 때 내 심정을 너는 알겠느냐. 서울 따라 올라오겠다며 우는 네 어미를 떼놓고 대신 회초리를 품고 기차를 탈 때, 내내 모든 게 잘못 되었구나, 내가 너를 너무 고이 길렀구나, 막내라 어디에도 내놓지 않고 내 품에 두고 싶었는데, 넌 내 품을 떠나자 너무 멀리 길을 떠나버렸구나 깨달았다.

작은 면회실에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는 날선 소리만 들리는구나. 내 아들아, 내 새끼야. 왜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느냐, 네가 고스란히 매를 맞으면 내 마음이 더 아프다는 걸 넌 모르느냐. 집이라면, 지렁이처럼 붉은 자국이 올라붙은 네 장딴지에 된장이라도 발라주겠지만, 난 네게 회초리만 치고 이 방을 나가야 한다. 이 어두컴컴하고 을씨년스러운 곳에 너를 남겨두고 나는 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난 회초리를 멈출 수 없구나. 저 놈들이 네게 다시는 손대지 못하겠다 생각할 때까지.

네, 이놈들. 내 자식을 끌고 온 이놈들. 봤지. 내 새끼가 잘못하면 내가 때릴 것이야, 너희놈들이 끼어들 일이 아니야. 내 아들 털끝 하나 손대지 마라. 이놈들. 내 귀한 새끼다.

회초리를 멈추었다. 두 다리에 올라붙은 상처를 본다. "바짓단 내리거라."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바짓단을 내린다. 그래도 아들아, 이 시커먼 골방에 저 우글거리는 놈들에게 너를 던져놓고 갈 수밖에 없지만, 아들아, 난 너를 믿는다. 너의 살아온 날들을 믿고 살아갈 날들을 믿는다. 아무리 멀리 떠났어도 아무리 세게 뛰쳐나갔어도 네가 돌아오리라 믿는다. 아들아, 난 이제 이 문을 나선다. 너를 두고. 몸 성하거라. 부디 몸 성하거라. 니 에미가 며칠째 밥 한 숟가락 뜨지 못하고 너만 기다리고 있다. 잘 알고 있으리라. 넌 니 에미를 유독 잘 따랐으니. 하고픈 모든 말을 가슴에 묻고, 네 차가운 체온에 가슴이 시릴까봐 내 새끼 얼굴 한 번 쓰다듬지 못하고 나는 돌아서간다. 잘 있거라. 몸 성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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