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설업체 대표가 수십명의 검사들에게 금품, 향응을 접대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한 시민이 검찰 로고를 보며 지나가고 있다.
유성호
취재 : 최지용·장지혜·김동환·홍현진 수습기자 정리 : 최경준 기자부산·경남지역의 한 건설업자가 폭로한 이른바 '스폰서 검사' 명단에 오른 대부분의 전·현직 검사들은 향응·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일부 전·현직 검사들의 증언을 통해 '스폰서 검사' 의혹을 폭로한 정아무개씨로부터 부적절한 술자리를 제공받은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검사의 향응·성접대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대검찰청 차원의 진상조사가 시작된 22일, '스폰서 검사' 명단에 오른 전·현직 검사 50여 명을 대상으로 긴급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 앞서 <오마이뉴스>는 전·현직 검사 40여 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는 정씨의 휴대폰 전화번호 저장 내역을 입수했다.
'스폰서 검사'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검사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정씨와 안면은 있지만 접대는 받지 않았다며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또 일부는 아예 정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며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울산지검에 근무했던 한 검사는 취재진에게 "보도가 잘못돼서 나중에 책임이 뒤따르는 일은 하지 말고 잘하시라"며 은근한 압박을 가해오기도 했다.
"술 마시러 간 적 있지만... 불쾌하다"부산고등검찰청 등에 근무했다가 현재는 퇴직한 ㅇ변호사는 "88년 정 사장을 처음 알게 되었다"며 "90년 이후 현재까지 만난 적이 있는지…(기억나지 않지만), 내 이름이 (명단에) 들어가서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20년 전의 분위기라면 지도위원(정씨를 지칭)이라는 사람과 술을 마셨을 수도 있다"며 "(정씨가) 제법 그럴듯한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서 행사를 할 때 술자리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경남지역 한 지방검찰청의 갱생보호위원과 검찰 소년선도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검사들과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어 "분명히 (정씨와) 식사는 몇 번 했다"면서도 "그러나 일대일이 아니라, (나는) 말석검사니까, 선배 부장검사들과 같이 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ㅇ변호사는 정씨가 검사들에게 상납했다는 '쥐포'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정씨는 부산·경남지역 검찰에 근무하다가 서울로 발령이 난 검사들에게까지 스폰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에 올라오면 일 주일씩 호텔에 머물면서 매일 검사들을 접대했다"며 "사천 특산물인 쥐포 몇 수십 박스를 트렁크에 싣고 왔는데, (그 박스 안에) 신권으로 30만 원을 넣어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ㅇ변호사는 돈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ㅇ변호사의 말이다.
"집사람도 <PD수첩>을 같이 봤는데, 전 검사들한테 30만 원씩 줬다는 게 기억이 안 나서 물어봤다. 쥐포에 넣어줬다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어서 집사람에게 물었다. 쥐포를 먹은 적은 있지만, 누가 준 건지도 기억이 안 난다."ㅇ변호사는 "앞으로 (대검 측으로부터) 조사를 받더라도 지금한 말과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지검에서 근무했던 ㅂ검사도 "부산지검 때 부장검사를 따라서 술 마시러 간 적은 있지만, 정 회장(정씨를 지칭)이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특별히 문제 될 만한 일은 없었다"며 "감찰은 받아야겠지만 별 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시 부산지검에 근무했다가 지금은 퇴직한 ㄱ변호사는 정씨와 "얼굴만 아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씨가 폭로한 '스폰서 검사'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씨로부터 향응이나 촌지를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정씨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인사 중 <PD수첩>을 통해 실명이 공개된 박기준 부산지검장은 "저는 개인적으로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