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에 발표한 고 이주일의 서울 참새 시골참새
김현자
전시를 보기 전까지 그때 그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이후 이미자를 TV 등을 통해 수도 없이 봤지만 그때 그 첫 만남은 절대 잊혀지지 않아 결혼 전의 이미자는 그런 촌스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터였다. 때문에 놀라움이 컸다. 아마도 이 재킷은 오래 기억되리라.
록과 포크, 고고, 디스코가 유행했고 음악다방이 전성기를 이룬 1970년대 전시코너에서 눈길을 끈 것은 혜은이와 조용필의 '뽀샤시'한 LP음반 재킷사진이다. 어린 우리들 사이에서도 워낙 인기 있던 가수들이고 낯익은 모습이라 더욱 반가웠나 보다.
1970년대 설명에 '청량리가 새로운 지역으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명동이 주류였으며 명동 YMCA의 '청개구리 홀', 여성회관의 '해바라기'가 청소년들 사이에 유명했다'고 되어 있는데 시골태생인 내겐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하지만 유행가가 뭔지도 모르던 그때, 친구들과 라디오 주변을 둘러싸고 유행가를 따라 부르던 그리운 한때가 모락모락 떠올랐다.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민주항쟁의 열기가 서울을 뒤흔든 1980년대에는 어떤 가수들이 어떤 서울을 어떻게 노래했을까? 그리고 1990년대 서울을 노래한 곡들은?
1982년에 발표한 이주일의 <서울참새 시골참새>는 새로운 즐거움이다. 재미있는 제목으로 기억되고 있던 음반이기 때문이다. <신사동 그 사람>, <밤 깊은 서초동> 등과 같은 강남과 관련된 음반들, <59년 왕십리>, <내 고향 삼선교>처럼 강북과 관련된 음반들 등, 1980년과 1990년대 전시물 중에는 낯익은 음반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