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인씨, '빵셔틀 탈출' 이건 아니잖아요

[TV 리뷰] 온게임넷 <셔틀 탈출기 내가 용자라니>에 대한 우려

등록 2010.04.19 15:13수정 2010.04.1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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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게임넷, <셔틀탈출기 내가 용자라니>
온게임넷, <셔틀탈출기 내가 용자라니>온게임넷
온게임넷, <셔틀탈출기 내가 용자라니> ⓒ 온게임넷

왕따, 이지메가 사회 문제가 된 것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약한 사람을 게임 용어로 희화화하고 죄의식 없이 괴롭히는 우리 사회의 기류는 참 무섭고 잔인하게까지 느껴진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빵셔틀'이라는 표현도 바로 그런 것 중 하나다.

 
'셔틀'이란,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프로토스 종족의 수송선 이름이다, 게임에서 병력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셔틀이 현실에서는 잔심부름을 당하는 피해자들을 일컫는 은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니, 씁쓸한 일이다. 빵 심부름을 한다고 해서 '빵셔틀', 담배나 물심부름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담배셔틀', '물셔틀'. 거기다 돈을 상납해서 붙여진 '동전셔틀'까지….
 
멸시의 의미가 가득 담긴 이런 표현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사회에는 마치 게임처럼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남은 듯보인다. 힘 좀 세면 대우받고, 힘이 약하면 심부름꾼으로 전락하는 사회는 레벨이 높으면 고수가 되고, 레벨이 낮으면 하수가 되는 게임 같다. 셔틀이라는 언어적 희롱과 함께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의 심정은 얼마나 아프고 씁쓸할까. 지금도 청소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빵셔틀'을 소재로 만든 프로그램, 괜찮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한 케이블 방송이 용기 있게(?) 혹은 무모하게 '빵셔틀'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케이블 방송 온게임넷의 <셔틀 탈출기 내가 용자라니>(3월26일 첫방송, 매주 월요일 오후 9시, 이하 <내가 용자라니>)가 그것. 이 프로그램은 '빵셔틀 탈출'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빵셔틀' 문제를 소재로 활용한 이 프로그램은 특히 학교 폭력에 민감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드라미틱한 내용 때문이다.
 
<내가 용자라니>의 구성은 지극히 간단하다. 먼저 '빵셔틀'로 불리는 사람의 사연 중 하나를 뽑는다. 빵셔틀은 '멘토'인 배우 이계인과 개그맨 허준, 여성 격투기 선수 임수정 그리고 전문 격투기 트레이너 임세일의 혹독한 훈련을 받고 '용자'(용기 있는 사람을 일컫는 은어)로 거듭난다. '용자'가 된 '빵셔틀'은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와 링 위에서 격투기 대결을 하게 된다. 맞장을 뜨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빵셔틀' 피해자들은 트레이너와의 거친 훈련도 마다하지 않는다. 발에서 피가 나고,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힘들지만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이겨 낸다. "가해자의 얼굴을 한 대라도 때리면 소원이 없겠다"고 곱씹는 한 피해자의 말을 들으면 그간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친구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해 눈도 못 마주친다는 한 피해자, 동네 선배에게 여자 친구도 빼앗기고 수시로 맞는다는 또 다른 피해자. '빵셔틀' 가해자에게 당한 피해자의 사례는 시청자의 주먹마저 불끈 쥐게 만든다.
 
그런 그들이 가해자를 만나 도전장을 내밀 때, 보는 시청자들은 마음속이 후련할 것이다. 카메라를 들이밀 때 당황하는 가해자의 모습을 보며 '인과응보'라고 생각한 시청자도 있을 것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청소년들은 대리만족의 기분도 느꼈을지 모른다. 마치 자신을 괴롭히던 악인을 무찌르는 기분이었을 테니까.
 
가해자가 피해자로 전락하는 기분, 어떡하면 좋지?
 
 온게임넷 TV, <셔틀탈출기 내가 용자라니>
온게임넷 TV, <셔틀탈출기 내가 용자라니>온게임넷
온게임넷 TV, <셔틀탈출기 내가 용자라니> ⓒ 온게임넷

 

그런데 왜일까. 나는 방송에 등장한 가해자들의 그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을 잊지 못하겠다. 전 국민 앞에 얼굴이 알려져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가해자들을 보면서 어쩌면 <셔틀 탈출기 내가 용자라니>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이 또 다른 '낙인 셔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었다.

 
"얼마 안 있으면 면접을 봐야 하는데, 취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라고 고민하는 한 가해자를 보고 있자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걱정 많은 청년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것으로 상대방 마음이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 도전을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방송 촬영을 승낙하는 부분에서는 '완전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안타깝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것을 알고 결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도전을 받는 순간부터, 가해자의 얼굴은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방송된다. 그리고 가해자와 '빵셔틀' 피해자의 위치는 180도 변하게 된다. 피해자는 시청자들의 응원과 전문 격투기 트레이너의 도움·뜨거운 응원을 받지만 가해자는 묵묵히 링 위에 올라야 한다. 링 위에서의 경기는 정정당당해야 하는데 결코 그렇지 못한 외부요건이 형성되는 것이다.
 
'투우' 경기 생각나게 만든 '셔틀 탈출기'
 
그 모습을 보며 스페인의 '투우' 경기가 생각난 것은 왜일까? 소가 이기는 것은 아무도 바라지 않고 그저 소가 언제 쓰러지는가를 지켜보는 것. 그것이 가해자에게 쏠린 방송 제작진과 시청자의 눈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빵셔틀' 피해자와 가해자는 대부분 청소년과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성인이 되지 않는 이들에게 선과 악의 대립 구도는 정서적으로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좀 더 가해자의 상황과 입장을 배려해주는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그동안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듯, 방송에 나온 가해자 역시 인격의 대상이 아니다. 이 방송에서 가해자들은 그저 피해자가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 혹은 게임의 최종 보스처럼 꺾어야 할 '적'으로만 생각된다. 프로그램 구성이 안타까운 대목이다.
 
얼마 전 MBC <무한도전>의 '최현미 vs. 쯔바사' 여자 권투 특집처럼, 양 선수 모두의 이야기를 아울러서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피해자에게 운동을 통한 자신감 회복이 필요하다면, 분명 가해자에게도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멘토의 한마디가 필요하다.
 
단지 훈련을 통해 치고받는 격투기 경기를 넘어,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지속적으로 관심과 조언이 이뤄진다면 '빵셔틀' 문제를 푸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부디 <내가 용자라니>가 '빵셔틀' 피해자 뿐 만이 아니라, '낙인 셔틀' 가해자도 용자로 만들어 주는 좋은 프로그램이 되기를 바란다.
2010.04.19 15:13ⓒ 2010 OhmyNews
#셔틀 탈출기 내가 용자라니 #빵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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