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속 희망을 노래하는 '이지상'

그가 쓴〈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를 읽고

등록 2010.04.16 17:47수정 2010.04.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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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책겉그림〈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삼인
▲ 책겉그림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 삼인

정태춘은 국보급 싱어송라이터다. 나는 군 시절에 내 동기 녀석 김응호를 통해 정태춘을 처음으로 접했다. 사회에서 돼지 수정사로 일하다 군에 온 녀석은 내게 정태춘 음악을 들려줬다. 그때 나는 녀석을 통해 <떠나가는 배> <탁발승의 노래> <시인의 마을>을 주로 들었다. 어찌나 내 가슴에 와 닿던지, 그때 이후 종종 녀석을 꼬드겨 그 음악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재대한 이후엔 그런 풍으로 읊조리고 노래하는 포크송 가수들을 즐겨했다. 김광석, 안치환, 백창우가 그들이다. 물론 그들은 내 한계 안에 있는 가수들이다. 그 밖에도 여러 싱어송라이터들이 있겠지만, 그들이 좋은 이유는 그들 노래에 음지 속 희망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도 마찬가지였다. 이지상은 20년 동안 싱어송라이터로 살아왔다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만큼 그는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 낮은 곳들을 찾아 노래로 위로하며, 그들에게 소망을 불어넣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이 세상 모진 역사 속에서 할퀴고 찢긴 사람들에게 참된 벗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는 한때 백골단이 곤봉세례를 퍼붓던 그 시절에 저항세력으로 맞섰으며, 신림동 난곡 지구 재개발 사업장에서 절규하던 세입자들에게 <해빙기>로 위로하였으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광주 나눔의집을 찾아가 <사이판에 가면>을 들려 주었고, 전농동 588번지에 사는 연약한 누님들을 향해 <방황>이란 노래로 소망과 위로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는 정태춘, 안치환, 백창우가 그렇듯이, 작고 여린 사람들을 노래 주제로 삼고 있다.  화려하고 힘센 사람들만 조명을 받는 이 세상에서 그는 마이너리티들이 지닌 삶에 파고 들어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그만큼 그 삶을 통해 흘러나오는 슬픔과 고통을 노래로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며, 그 작고 여린 사람들이 지닌 상처투성이를 작은 노래로 위로하고 치유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끄는 손수레엔 새벽이 가득 실려 있고,

그 안엔 빈 병과 폐지와 먹다 나은 피자도 있고

당신은 우는 듯 어두운 골목길 서성이다,

당신은 웃는 듯 새벽을 향해 걸어가다

간밤에 세상이 토한 추한 흔적들을 밟고 서서,

후척한 그 어깨 위로 세상의 아침을 주워담고

세상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노인처럼,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또 폐지를 찾아 걸어가다

그랬어, 당신은 나의 고단한 새벽을 깨우는

그랬어, 당신은 나의 지친 일상을 뒤흔드는 사람

                                                           -〈폐지 줍는 노인〉, 이지상 작사·작곡(29쪽)

 

그는 현재 성공회대학에서 강의 하나를 맡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가 그것이다. 그는 그 강의에 임하는 학생들에게 그런 과제를 내 준다고 한다. 이른바 '노래 듣고 울어보기'.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현대판 학생들이 단순히 노래를 듣기 위해 듣는 것보다는 온 몸으로 그 삶에 다가서도록 촉구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그 때에만 그 노래를 통해 그 삶을 이해하고, 참된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일 것이다.  

 

또한 그는 시노래 운동인 '나팔꽃 동인'으로 몸담고 있다고 한다. 시인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 유종화 정일근 나희덕 정희성과 함께, 음악인 백창우 김원중 배경희 김현성 홍순관 류형선 이수진, 그리고 그가 함께 모여 만든 시노래 모임이 그것이다. 오늘도 그들은 치열한 시정신과 진지하고 열정적인 노래 정신을 깊이 있는 울림으로 전하기 위해 전국에 있는 작고 여린 자들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낯선 비둘기 한 마리 먹이를 쫓다 비행기 날으는 곳으로 떠나고

굳게 잠긴 철문 안의 작은 방에선 또 어떤 아이들이 성냥불 장난할까

돌계단 틈으로 바람이 불어오면 어느새 묵었던 잔설이 녹고

무너진 예배당 십자가 위엔 또 다른 햇살이 비칠 테지

이렇듯 날은 저물고 어둠이 내리고 피곤에 지친 사람들 돌아오고

가장 높은 곳에 사는 가장 낮은 이들 그 가난한 마음에도 봄꽃은 피어날까

                                                                     -〈해빙기〉, 이지상 작사·작곡(47쪽)

2010.04.16 17:47ⓒ 2010 OhmyNews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이지상 지음,
삼인, 2010


#이지상 #작고 여린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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