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후원금을 받다

등록 2010.04.14 20:13수정 2010.04.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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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자원봉사 관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알게 된 이상한 얘기를 하나 전할까 합니다.

 

어느 학생이 경기도의 어느 노인요양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겠다고 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기관이었기에, 인터넷에서 홈페이지를 찾았습니다. 몇 달 전, 서울의 한 노인요양원이 개인이 설립한 시설이라는 이유로 자원봉사자를 받지 않는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요양원의 설립 주체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공익 성격의 기관이라도 설립과 운영의 주체를 알지 못하면 자원봉사 대상 기관으로서 타당한지 여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보통 우리가 자원봉사를 가는 기관들은 영리단체가 아닙니다. 또한 개인이 설립하여 운영하는 시설도 공익시설로 보지 않습니다. 비영리법인이 설립하여 운영하는 기관들만이 공익적 성격을 인정받을 수 있고, 그중에서도 자원봉사나 후원금은 정부기관을 제외한 사회복지기관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공익행사, 정치/종교적 색채를 배제한 시민사회단체에 주로 국한되어 왔습니다.

 

아무튼, 그 학생이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노인요양원의 홈페이지에는 자원봉사와 후원 안내 웹페이지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냥 봉사활동 계획을 승인하려다가 혹시나 싶어 전화를 걸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원봉사 담당자의 답변은 놀랍게도 그 노인요양원이 주식회사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관할 시청의 자문을 받아 자원봉사와 후원금 접수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보건복지부의 노인요양보험운영과에 문의하였습니다. 담당자의 답변 역시 같았습니다. 영리법인으로 설립된 시설이라도 사회복지시설로 인정이 되어 자원봉사자와 후원금을 받을 수 있고, 후원금에 대해서는 법정 기부금 영수증 발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자원봉사는 모르고 한다고 쳐도, 주식회사가 후원금을 받는다고요?

 

이번에는 제가 직접 그 근거를 반박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노인요양원이 전부 사회복지시설로 정의되는지, 사회복지시설의 설립 주체가 영리법인이어도 되는지 찾는 것이 초점이었습니다. 우선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르면, '사회복지시설'이란 법에 규정한 각종 사회복지사업들을 수행할 목적으로 설치된 시설을 말하는데, 사회복지사업의 내용에는 노인복지법에 의한 사업이 포함됩니다.

 

노인복지법 제34조에는 '치매·중풍 등 노인성질환 등으로 심신에 상당한 장애가 발생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을 입소시켜 급식·요양과 그 밖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함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인 노인요양시설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31조의2에 따르면 노인복지시설 신고는 곧 사회복지시설 신고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되어 있습니다. 노인의료복지시설을 설치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하면 됩니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제20조에도 같은 내용일 뿐, 비영리법인이어야 한다거나 영리법인은 제외한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노인장기요양의 제공과 수급에 관한 직접 관련 법인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도 시설 기준은 노인복지법을 따른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노인요양원의 설립 자격은 비영리 여부에 의존하지 않으며, 노인복지법에 의한 노인복지시설이므로 곧 사회복지시설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복지시설은 전통적으로 자원봉사와 후원의 대상이 됨은 말할 것도 없지요.

 

결국 반박은 실패했습니다. 본격적인 영리시설 설립은 최근이지만, 법적으로는 이미 1993년에 비영리 규정이 없어졌다는군요. 저는 사회복지정책 전문가가 아니어서, 무슨 이유로 이렇게 개방적인 사회복지시설 기준을 국가가 마련하였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저 저는 최일선 자원봉사 관리자일 뿐이어서, 자원봉사의 근본 개념을 뒤흔드는 이 문제가 영 마뜩지 않을 따름입니다.

 

모름지기 자원봉사란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공공부조나 자선행위로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이요, 사회복지 관점에서 보면 서비스 전달체계에 대한 지원체계로서 공익을 위해 필요한 곳에 인적자원을 투입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원체계를 넘어서 그 자체로서 활동체계로 성립되어 가는 발전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급속히 발전한 우리나라의 자원봉사의 영역이 변화하고 자정되어 가는 것을 직접 관찰해 왔는데, 이에 역행하는 사안을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자원봉사의 영역 그 어디에서도 감히 비영리의 경계 침탈이 성공한 적은 없었습니다. 자원봉사 영역의 자정 작용은, 시민사회의 자원봉사 개념이 올바로 자리잡히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주식회사는 주주의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자원봉사가 과연 누구에게 궁극적인 도움을 주는가 질문을 던졌을 때, 공공기관이라면 다수의 공공 대중들이겠지만, 영리기관이라면 그 행위가 영리를 창출하기 위한 행위가 됩니다. 그 이윤은 소비자(기관 이용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유주(주주)에게 돌아갑니다.

 

<봉사자는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에게 학점 이수용 자원봉사 확인서를 받는다? 기부자가 기업에 댓가 없이 돈을 주고 연말정산용 후원금 영수증을 받는다?>

 

뒤집어 볼까요. <우리 회사 매장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의 편의를 제공한 사람에게는 자원봉사 확인서를 써준다? 우리 회사 매장 제품을 구매하지도 않고도 돈을 낸 사람에게는 후원금 영수증을 써준다?>

 

경쟁을 유발하여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할 목적이었다면, 공정한 경쟁을 시켜야 합니다. 의료시설 영리화의 첫걸음과 만난 건 지독한 우연이겠지만, 자원봉사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피곤합니다.

 

+이정기 http://cyworld.com/bongsaja

 

2010.04.14 20:13ⓒ 2010 OhmyNews
#자원봉사 #영리화 #노인요양원 #노인복지시설 #후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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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치시대를 넘어서는 멀티 저널리스트, 평범하게 살아가는 퍼시아저씨의 자유실존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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