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지역의 한 건설업자가 부산지검에 제출한 진정서. 그는 "그동안의 뇌물, 촌지, 향응, 성접대 등을 엄격히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마이뉴스 구영식
지난 2월 초 부산지검(검사장 박기준)에 '진정서'가 접수됐다. 진정인은 20여 년간 부산·경남(PK)지역에서 건설업을 해온 50대의 J씨였다. 그는 "진정한 검찰개혁을 위해 진정서를 제출한다"며 이렇게 요청했다.
"그동안의 뇌물·촌지·향응·성접대 등에 대하여 공직자윤리법, 성매매특별법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근래의 것은 형사적 책임(을), 시효가 지난 것은 도덕적 책임을 물어 엄격히 조사하시어 처벌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J씨가 적시한 '피진정인'은 "00지방검찰청 현직검사님 10여분외 전국 각 검찰청에 재직 중이신 90여 분"이다. 그는 진정서에서 검사님들의 명단과 수표번호, 향응접대 장소 일시 등의 관련 자료(수기)들을 진정인 조사시 모두 제출하겠다"면서 "명단에 적시된 전 검사님들과의 대질을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그의 진정서와 그가 진정서에 적시한 '관련자료'를 수기로 정리한 문서를 입수해 그를 세 차례 심층 면담했다. 부산지검은 2달 전에 이 진정서를 접수한 뒤 사건을 배당했지만, 아직까지 진정인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또 J씨가 거명한 일부 검사들을 기자가 접촉했으나, 대부분 "접대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충격적인 그의 '검찰 접대 리스트'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J씨의 진정서와 관련 자료에 적시된 내용은 검찰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핵폭탄급'이다.
"체육대회, 검사 회식, 환영식, 송별식 비용 대고 촌지까지 줘" J씨는 부친부터 2대에 걸쳐 건설업을 하면서 검사들과 친분관계가 상당히 두터웠던 인물로 알려졌다. 스스로 20여 년 동안 '검사 스폰서'를 자처했을 정도다. 그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소속 경남도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J씨의 표현대로 "보수성향에다 부르주아 집안출신"인 그가 왜 '권력기관'인 그들을 향해 칼을 빼들었을까? 도대체 그와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오마이뉴스>는 그를 세 차례에 걸쳐 심층 면담했다. 다음은 그의 주장을 재구성한 것이다.
경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J씨는 갓 26살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사업(건설업)을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N건설의 대표가 된 것이다. N건설은 관급공사로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서부경남 지역에서 잘 나가는 건설회사였다.
부친처럼 지역유지였던 J씨는 법무부·검찰에서 위촉하는 갱생보호위원과 소년선도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검사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부친이 서울의 한 명문사립대 법대를 졸업한 것도 '검사 인맥 쌓기'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나이가 젊으니까 제가 다른 분(위원)들보다 활동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검찰청 출입도 잦았다. 검찰청의 사무과장이 검사들을 소개해주면 제 명함을 주고 안면을 텄다. 저는 평검사들한테도 '영감님'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안면을 튼 이후부터 접대, 속칭 '스폰'(sponsorship)이 시작되었고, 그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 2004년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체육대회, 등반대회 등 공식행사는 물론이고 검사들 회식, 환영식, 송별식 등에 비용을 대는 것은 '스폰의 기본'이었다. 물론 '촌지'도 빼놓을 수 없는 스폰 중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J씨가 지목했던 검찰 고위 간부 P검사는 <오마이뉴스>가 전화로 접대받은 사실이 있는지 확인 취재에 들어가자 용무를 이유로 전화를 끊었다.
검사실에서 촌지를 직접 건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J씨의 증언이다.
"촌지를 주는 날에는 어김없이 경리를 시켜 신권으로 바꾼 뒤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수행비서와 함께 벤츠를 몰고 검찰로 갔다. 지금은 검사실이 많이 오픈(open)돼 있지만, 당시에는 폐쇄돼 있었다. 촌지를 내놓으면 '이렇게 또 주면 우짜나?' 하면서도 대부분 자연스럽게 받았다." 촌지에 '거부 반응'을 보인 검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법무부 한 고위간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한 검사,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B검사가 대표적이었다.
한편 '스폰서 인계'라는 것도 있다.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스폰서'를 소개해주는 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순환근무 속에서도 '검사-지역유지'가 유착할 수 있는 유력한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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