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암 환자의 서울 입원 비율
새사연
박유원 : "그러다보니 수도권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가족들이 병원 옆 여관에서 생활하며 간병을 하는 일도 허다하다."
정달현 : "병상 수에 대해 논할 때도 그런 부분들을 함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원래 한 사회의 적정 병상 수는 그 사회의 인구와 인구 구성 등의 추계에 따라 조직되어야 되고 제대로 활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영리적 의료, 즉 수익성이 높은 의료 서비스는 지나치게 많이 공급되는 반면, 돈이 안 되는 서비스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의료 자원을 만들고 이용하는 방식이 이윤을 추구하려는 경제적 동기에 따라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의료 자원이 수도권에만 몰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병상 수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영리적 영향력을 계속 줄여나가면서 의료 자체의 요구에 충실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은경 : "병상을 만들면 반드시 채워진다는 법칙이 있다. 수도권 대형 병원들이 급성기병상을 지나치게 많이 짓고 있는데 이는 어떻게든 환자로 채워진다. 그러면 지방 중소병원은 환자가 계속 줄게 되고 결국 제대로 된 진료를 하기가 더욱 어렵게 된다. 이런 무분별한 병상 확충 경쟁은 결코 시장 기능에 의해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의료 영역은 환자가 합리적 선택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공의 조절과 규제, 전달 시스템이 필요하다. 병상이 무분별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제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규제가 전혀 없다."
조남선 : "동의한다. OECD 평균과 비교해 재원일수나 병상 수가 많은가 적은가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큰 의미가 없다. 한쪽에서는 병상이 남아도는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입원실을 잡기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또 다른 나라에 비해 재원일수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 :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OECD 평균과의 수치 비교를 떠나 한국 사회의 의료 이용 현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파헤쳐보기로 하자."
이은경 : "의료 이용을 둘러싼 오랜 논쟁 가운데 하나가 과연 의료 공급자와 수요자 중 어느 쪽이 의료 이용에 대한 결정을 내리느냐 하는 것이다. 공급자인 의료인들의 지나친 이윤 추구 행위 때문에 의료 이용이 늘어나게 된다는 주장과, 입원과 치료를 선호하는 우리의 독특한 문화 탓에 수요자인 환자들 스스로가 병원을 많이 이용한다는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의료 공급자가 수요를 결정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환자들이 병원 치료와 약, 주사 등을 선호하게 된 문화의 이면에는 병원과 제약회사들의 계산된 공급 행태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조남선 : "그런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이제 공급자가 멋대로 수요를 창출하기는 쉽지 않다. 가령, 요즘은 처방이나 입원일수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심사를 하지 않나. 불필요한 의료 행위는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의료 공급자들이 자신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억지 수요를 만들고 있다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의료 수요가 늘어난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은경 : "물론 모든 나라가 의료 이용의 확장기를 경험한다. 우리나라 역시 경제 성장과 전국민건강보험의 도입으로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가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시스템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에는 의료 공급을 확대해 의료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면 지금은 적정한 의료 지침을 마련해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달현 : "가령, 각각의 증상에 따라 적정한 수준의 처방과 입원에 대한 가인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홍보도 필요하지만 공급자의 공급 행태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다. 외국에서도 항생제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 폐렴 치료를 위한 가이드라인, 입원일수 제한 등의 조치를 통해 의료 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다."
박유원 :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부의 규제에 대한 의료인들의 저항이 너무 크다. 병상 총량 규제, 지불제도 개선 등의 개혁 방안들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2020년이면 고령인구가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날 텐데 현재의 문제들을 그대로 둔 채 고령사회가 된다면 의료 수요와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황지원 : "의료 전달 체계가 왜곡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중하고 위급한 진료를 담당하는 병원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감기를 비롯해 흔히 접하는 질병에 대한 치료는 동네의 1, 2차 병원에서 하면 되는데 우리는 감기, 고혈압, 당뇨 치료를 위해서도 수도권의 대형 병원을 찾는다."
이은경 : "중증 환자를 담당해야 할 종합전문병원에 1차 환자가 몰리니 수도권 대형 병원은 늘 환자로 넘치고, 지방 중소 병원은 살아남기 위해 비만, 성형 등 특화 진료로 전환하고 있다. 결국 왜곡된 의료 전달 체계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규제가 필요하다. 주치의 제도, 지불제도 개선 등의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
사회 : "적정한 수준의 의료 공급을 위해 의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그밖에 또 어떤 과제가 있나."
황지원 : "선진국의 경우는 의료가 사회복지라는 큰 틀에서 통합적으로 관리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따로국밥이다. 가령, 독일은 환자가 급성기병상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시기와 집에서 요양해도 되는 시기를 구분하고, 만일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간병인의 수당을 정부가 대신 지불해준다."
정달현 :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병원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병원들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현실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시장 논리로만 풀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나서 공공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지방 중소 병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이끌 필요가 있다."
이은경 : "환자들이 이른바 빅(Big) 4로 불리는 수도권 대형 병원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시설이나 의료진이 우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 대형 병원은 가족이 없어도 입원이 가능하도록 높은 수준의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현상도 간병·간호, 요양 등이 개인 부담인 의료 현실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의료 체계라고 하면 홈 케어(Home-care)까지를 포함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치료 영역에만 머물러 있다."
정달현 : "사실 재원일수와 급성기병상의 증가, 간호사 수 감소 등의 구조적인 문제들도 모두 의료 자원의 편중에서 비롯된다. 흔히들 얘기하는 3시간 대기 3분 진료, S병원에 가기위해서는 몇 달 전에 예약하고 그마저도 인맥이 없으면 가기 힘든 상황, 의사들은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경영인으로 내몰리는 현실 등. 결국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종합적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 : "지금까지 병상의 수와 국민의 의료 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의료의 공급을 둘러싼 화두가 '더 많은 공급'에서 '합리적 공급'과 '효율적 의료 이용'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핵심은 적절한 규제와 정책의 도입이다. 특히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의 집중에 따른 지역 간 공급 편차의 해소, 그리고 고령사회에 대한 대책 마련 등이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모두들 수고하셨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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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병상이 남아돌고, 한쪽은 입원조차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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