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학교 교실마다 CCTV를 설치하시죠

[주장] 수업동영상 인터넷 공개로 교원평가 제대로 될까

등록 2010.04.08 14:03수정 2010.04.0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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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에 모여 토론하는 학생들(자료사진)
교실에 모여 토론하는 학생들(자료사진)임정훈

교원평가에 대해 시간을 갖고 꼼꼼히 준비하자는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의 요구를 반대를 위한 명분 쌓기라며 짓누르더니만,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맞벌이 학부모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수업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겠단다. 학부모들이 그걸 보고 교원들의 수업 능력을 등급 매기도록 하겠다는 거다.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었으니 교원평가를 하긴 해야겠고 정부 차원에서 실적 또한 내야겠는데,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무리수가 남발되고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없이 정책으로 결정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건 백보 양보해서 교사들 겁주기일 뿐이다. 인터넷에 띄울 테니 수업 준비 열심히 하며 긴장하라는.

학부모들 편의 위해 온라인으로 수업 공개?

주지하다시피 교원평가의 최종 목적지는 분명 수업 내실화를 통한 공교육 정상화이다. 무릇 수업이란 교사와 학생 사이에 교감과 소통의 과정일진대, 이걸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지금도 학교마다의 보여주기식 '연구수업'에 실효성이 제기되는 판에 아예 정부가 나서서 '눈 가리고 아웅' 하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그럴 바에야 학교 교실마다 CCTV를 설치하지.

이건 정책 입안자들의 교육 철학이 얼마나 천박한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실제와는 달리 그럴 듯하게 치장될 게 뻔한 수업 한 시간을 통해 부적격 교사가 걸러질 것이라고 여기는 걸까. 백보 양보해서 이것은 교원평가 항목 중에 학부모 평가도 실시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늉'일 뿐이다. 4대강이고 세종시고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나무라는 대통령의 표현법을 빌자면, 이는 '평가를 위한 평가'일 뿐이다.

수업 공개라는 방식을 반대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도 적지 않은 교사가 자신의 수업을 참관하길 원한다면 학부모든 동료 교사든 그 누구도 가로막지 않는다. 문제는 정작 따로 있다. 동료 교사의 경우 하루 중 두세 시간 비는 상황에서 수업 연구에 잡무 처리할 시간도 빠듯한데 한가하게 남의 수업 구경할 여유가 있을까.

학부모들에게는 맞벌이 여부보다도 학교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게 문제다. 과연 맞벌이 학부모가 아니면 별 부담 느끼지 않고 공개 수업에 참관할 수 있을까. 학생, 교사와 더불어 어엿한 교육의 주체로서 학부모가 학교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는 환경 마련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뜻이다. 1년에 한 번뿐인 자녀의 수업 참관일인데, 아무리 맞벌이라고 해도 그 시간 못 낼 학부모는 거의 없다.


정부의 말대로 진정 맞벌이 학부모를 배려하고 싶다면, 차라리 녹색어머니회, 학부모 봉사단, 학부모 식품 검수단 그리고 청소당번 등 웬만한 학교마다 관행적으로 꾸려지는 이런 학부모 부담을 줄여 달라. 어렵사리 전화를 걸어 부탁하는 담임교사도, 선뜻 거절하지 못하고 부탁을 들어야 하는 학부모도 피차 괴로우니 말이다.

손가락질 받는 교사는 본인이 더 잘 안다


기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교사가 자신의 수업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왔다. 인터넷에 올려 남들에게 과시하거나 평가 받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다. 수차례 되돌려 보며 자신의 수업을 스스로 피드백하기 위한 자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드물게는 같은 교과 교사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앉아 수업 동영상을 본 후 서로의 수업 방식에 대해 조언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자율'을 정부는 '타율'과 '강제'로 얽어매려 하는 꼴이다.

13년 교직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학부모의 수업 동영상 평가 방식은 학교마다 기상천외한 매뉴얼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부가 교원평가 결과를 교원성과급 지급에 반영한다고 밝힌 상황에서 어떻든 기준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부가 평가에 관한 시시콜콜한 기준을 만들어 전국 모든 학교에 강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에 교원평가에 관한 일선 학교의 고민은 깊다.

교육기자재 사용 3점, 파워포인트 자료 제작 5점, 판서 내용 3점, 교원 복장 2점. 이런 식의 점수표가 학부모에게 전달될지도 모른다. 여기에다가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호응도를 파악한다면서 동영상에 녹음된 박수소리의 데시벨 수치까지 굳이 반영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진행될 경우, 이러한 웃지 못할 기준이 '객관적'이라는 이름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 지경에 이르면 학교에서 '교육'은 사라지고 '코미디'만 남게 된다.

어느새 현실 속에서 고루하고 멋쩍은 말이 되고 말았지만, 교사는 보람과 명예를 먹고 산다. 학생들과 학부모로부터 무능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교사는 본인이 더 잘 안다. 평가와 성과급이라는 칼날을 들이대기에 앞서, 그렇다고 '뒷담화'만 쏟아내기에 앞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수업을 잘 해달라고, 아이들에게 더 신경 써 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분위기를 만들면 어떨까.

이를테면, 학생회와 학부모회를 법제화하여 교사와 함께 수업은 물론 학교 운영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보장하고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훈련시킬 수 있는 교육적 효과와 함께 교원들의 성찰과 자질 함양에 큰 자극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동영상 공개는 교사 자존감 훼손하는 일

사범대의 교사 양성 커리큘럼을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자격증 하나 가지고 있다고 교사직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학교엔 승진에 별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직무와 관련된 교양 연수를 게을리 하지 않는 교사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에게 수업 '쇼' 준비하라는 건 교사로서 자존감을 훼손시키는 일이다. 대다수가 퇴출돼야 마땅한 부적격 교사라는 인식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이들과 함께 수업에 대해 토론하고 부대낄 시간을 마련해 달라.

부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 교원단체, 학부모단체들이 모여앉아 교원평가 방식과 기준에 대해 심사숙고해 달라. 부작용을 뻔히 알면서도 여론에 밀려 시간에 쫓겨 한 번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다시 되돌리는 데조차 갈등이 유발되고 에너지가 소진되기 일쑤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다양한 목소리와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공청회도 자주 열면서 더디 가더라도 제대로 가자. 문제는 방식과 기준일 뿐, 교원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교원평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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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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