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추노>잊지 못할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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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초반부터 비중 있는 조연들의 줄초상으로 눈길을 모았던 <추노>의 엔딩은 결국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예상했듯 많은 이들의 죽음으로 마무리 되었다.
업복이를 제외한 노비 당원들은 시커먼 정체를 드러낸 '그분'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던 좌의정 이경식과 그의 수하 '그분' 그리고 송태하를 배신했던 조선비는 모두 업복이의 총에 숨을 거두었다.
업복 역시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며, 주인공 대길이는 언년이를 대신해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대길이와 함께 죽을 줄 알았던 송태하와 언년이가 살아남아 뒷일을 도모했다는 사실인데, 이 역시 미완에 가깝다.
비록 엔딩 내레이션에서 황철웅이 읊조렸듯이 효종 6년(1655년) 도망 노비를 쫓는 노비추쇄가 중지되고 석견이 귀향에서 풀려났지만, 송태하가 이야기했던, 그녀의 아내가 혜원이와 언년이 두 이름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결국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죽음과 채 이루지 못한 꿈.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노>를 비극으로 정의하기에는 뭔가 꺼림칙하다. 무엇 때문일까?
우선 <추노>가 비극으로만 기억되지 않는 것은 많은 이들이 그 비극적인 결말을 쉽게 예측하고 대처해왔기 때문이다. 그 시대 역사를 알고 있는 시청자들의 입장으로선 주인공들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이미 예상할 수 있는 바,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결말 대신 결말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비극적인 시대에 여러 꿈을 안고 사는 인물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때는 양란이 끝나고 무너진 신분질서를 되잡기 위해 지배층이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해석하던 조선 인조 시대. 비록 체제는 하부로부터 서서히 변하고 있었지만, 약화된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배층들은 오히려 악랄해진 그 시대에 민초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따라서 시청자들이 주인공 대길 말고도 <추노>의 여러 등장인물들에 대해 관심을 쏟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 사람들은 비극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대길이 외에 다른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극의 중반부 왕손이와 최장군이 죽었다가 시청자들에 의해 되살아 난 것이나, 그 어느 드라마보다 탄탄했던 <추노>의 조연진이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오죽하면 대길이를 살리기 위해 죽은 천지호 외전을 만들어 달라지 않은가. 아마도 PD는 극이 진행되면서 각 조연들의 캐릭터를 강화시키기 위해 꽤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다.
<추노>를 비극으로 정의할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죽음이 여러 희망을 잉태했기 때문이다.
대길의 죽음은 비정한 살인귀 황철웅의 뜨거운 눈물과 함께 참회를 낳았고, '지랄 같은 세상'을 바꾸겠다던 송태하와 그의 사랑 언년이를 살렸으며, 왕손이와 최장군을 비롯해 짝귀 식구들이 비극적 시대를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생존 자체가 희망이었던 그 시대 대길의 죽음이 곧 희망이 된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민초들의 생존만으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추노> 곽정환 PD의 페르소나라 불릴 수 있는 업복이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어떻게 역사적 원동력으로 산화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