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앞 해군 아파트 주차장은 평일 낮 시간인데도 차가 가득하다.
박상규
"조용하고 좋아 보이죠? 왜 그런지 압니까? 지금 해군이 모두 비상 아닙니까. 여기 사는 아빠들은 거의 대부분 사령부에서 비상근무 하고 있거나, 배 타고 멀리 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용해 보이는 거죠. 단지 규모에 비해 머무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한 부사관의 말이다. 결국 외지인이 느낀 '조용한 주거 환경'은 사실 '비상 상황'의 결과일 뿐이었다. 이 부사관의 말을 듣고 보니 해군 아파트 단지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평일 대낮인데도 아파트 주차장에 차가 많고, 단지 규모에 비해 너무 조용하다는 것.
김아무개 대위는 "입주 군인들 약 3분이 1이 배를 타고 바다에 떠 있으니, 차를 쓸 일이 없다"며 "남자들이 배 타고 나가 있는 시간이 많으니, 아내나 아이들은 아예 아파트에 같이 살지 않고 고향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대위는 평택 2함대에 근무하는 어려움에 대해 담담히 말을 이었다.
"2함대에 근무하면 24시간 비상대기라고 보면 된다. 주말이나 공휴일? 어디 멀리 못 간다. 집에서 늘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이 설치해 놓은 해안포의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우린 비상이 걸린다. 2함대가 서해 NLL을 담당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피로와 정신적 긴장이 너무 크다."그는 경남 진해 쪽에서 근무하다가 2개월 전 평택으로 왔다고 했다. 김 대위는 "해군 장병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이 바로 평택 2함대"라고 덧붙였다. 박아무개 부사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천안함 침몰로 안 그래도 힘든 2함대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며 "이 아파트에서 웃고 다니는 사람 봤나?"라고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남편이 군을 떠났으면 좋겠다"봄 햇살이 좋아도 해군 아파트에는 활기가 없었다.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만 잠시 활기가 느껴질 뿐이다. 단지 한 가운데 있는 상가 역시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 식당 주인은 "손님으로 꽉 찬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천안함 침몰로 인해 아파트 분위기가 더 침체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해군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더 큰 듯했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 후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뉴스를 되도록 보지 않는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이 충격을 받을까 봐 염려된다. 한 번은 딸이 TV를 보면서 '아버지도 바다에 빠지면 어떻게 해?'라고 묻더라. 그 말을 듣고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학교를 마친 딸과 함께 집으로 향하던 대위 부인 박연주(가명·35)씨는 초조하게 말했다. 박씨는 "내 남편이 천안함 안 탔다고 웃을 수도 없고, 미래가 걱정돼 울 수도 없는 처지"라며 "마음 같아서는 남편이 군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남편이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며 "천안함 이야기만 하면 짜증을 내거나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오후 6시께 2함대에서 휴가를 나가는 해군 사병 두 명이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천안함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그들은 바로 '경계 태세'로 돌입했다.
"마음 아픕니다. 할 말 없습니다. 나중에 제대하고 기회 되면 말하겠습니다. 부대는 지금 계속 비상입니다. 우린 아는 게 없습니다.""해군이면서도 육지에 근무하는 게 가장 잘 빠진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