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시티의 스카이. 파랗고 맑은 하늘과 황토빛 흙집이 이루는 조화가 예술품 못잖게 아름다웠다.
김은주
올드시티는 야즈드에 위치한 구시가지로 2천년이나 된 마을입니다. 유네스코에 의하면 야즈드의 구시가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고 합니다. 햇빛에 잘 말린 진흙과 벽돌로 만든 집과 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는데 오래된 마을이지만 그동안 사람이 계속 살아왔기에 세월이 가져온 기품과 운치가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올드시티를 거니는 것, 즉 미로 속을 헤매는 게 야즈드 여행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어젯밤엔 미로 속에 갇힌 생쥐마냥 우왕좌왕했는데 그건 밤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낮에는 길 잃을 걱정일랑 접어두고 무작정 천천히 흙 담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서 강렬한 사막도시의 햇빛을 느끼는 게 야즈드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고 안내 책자에서 본 바 있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햇빛이 쨍쨍한 시간을 기다려 아이들과 함께 다시 올드시티의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꼬불꼬불한고 조용하고 정겨운 골목을 걷다가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초등학교입니다. 이곳은 남녀가 유별해서 버스나 지하철 등 모든 곳에서 남녀를 구별하는데 초등학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간 곳은 여자 애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였습니다.
학교 앞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마침 수업을 마친 여학생들이 나왔습니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작은 읍사무소나 동사무소 크기 만한 학교에서 작고 귀여운 여자 애들이 몰려나왔습니다. 모두들 너무 귀엽고 예쁘게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 예쁘지만 이 아이들은 정말 어린이 잡지 모델이라도 되는 것처럼 예쁘게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앞에 있는 놀이터로 달려갔습니다. 낡은 그네와 미끄럼틀과 시소가 전부인 조그마한 놀이터였습니다. 사교성 좋은 우리 집 작은 애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서 '살롬'이라고 인사하고 애들과 어울려서 그네도 타고 미끄럼도 탔습니다. 작은 애는 애들과 더 친하고 싶었지만 대화가 안 되니 말없이 어울려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 타는 애를 밀어주면서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도 우리 갈 길을 갔습니다.
골목을 거닐면서 굳게 닫힌 집 대문을 감상했는데 대문 모양이 집집마다 다 다른 것도 특별했지만 더 인상적인 것은, 길쭉한 모양과 동그란 모양의 문고리입니다. 길쭉한 모양은 남자들이 두드리는 것이고, 동그란 문고리는 여자 전용이라고 했습니다. 장난기 많은 둘째가 여자 문고리를 잡고 두드리는 시늉을 해서 난 얼른 말렸습니다.
그런데 우려하던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뒤처지는 바람에 아이들을 놓쳤습니다. 어젯밤에 호된 신고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환한 대낮에 또 길을 잃어버리고 거기다 아이들까지 놓쳤습니다. 심장이 쿵 하면서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걱정됐습니다. 한낮에는 걱정하지 않고 어슬렁거려도 된다고 했지만 미로는 미로인 모양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선 애들부터 만나야겠다 싶어서 큰 소리로 애들을 불렀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찾다가는 오히려 더 길을 잃게 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애들을 놓친 그 자리에서 목이 터져라 계속 애들을 불렀습니다. 한참동안 다급하게 불렀더니 애들이 나타났습니다. 놀란 건 애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우린 한낮이라고 너무 방심했었다며 스스로를 자책했습니다.
야즈드, 올드시티의 미로는 그리 만만한 골목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길을 잃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길을 잃는 것, 그게 추억이 되는 것 같기에 올드시티에 들어섰다면 길을 잃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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