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열린 봉은사 일요법회에서 '맨장삼'이 아닌 '가사'를 입고 명진 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천안함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에게 거듭 위로의 말을 전했다.
홍현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4일 열린 일요법회에서 74년 해군예인정(YTL) 침몰사고로 스무살 동생을 잃은 사연을 전하면서 천안함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명진 스님은 "이런 큰 사고가 났는데 아직도 원인을 밝힐 수 없는 것이 국가인가"라면서 사고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또 고 한주호 준위의 빈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 비난을 받고 있는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도 분노를 나타냈다.
이어 명진 스님은 <오마이뉴스>에서도 실린
'명진스님, 기독교인들을 대신해 용서를 구합니다'라는 고영근씨의 편지 전문을 신도들에게 읽어주면서 "이렇게 잘못한 걸 사과할 줄 알고 참회할 줄 알고 인정할 줄 아는 게 선진국이며, 국격이 높은 나라"라면서 고씨를 "훌륭한 기독교인"이라고 평가했다.
외압 의혹 제기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대해 명진스님은 "툭하면 명예훼손으로 고발도 잘하고 툭하면 법적조치도 잘하는 사람이 고발도 안 하고 말도 안 한다"면서 "그렇게 묵언수행하다가 정말 불자가 되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묵언수행 잘해서 정직하고 거짓말 안 하는 그런 사람이 돼서 오면 상좌로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일요법회에는 김영국씨도 참석했다. 명진스님은 신도들에게 김씨를 소개하면서 "권력 앞에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행동이었다"고 말해 신도들이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명진 스님이 4일 설법한 일요법회 법문 전문.
"세상에서 제일 절절한 것이 자식 생각하는 부모 마음" 천안호 침몰사고 이후 아직까지 많은 실종자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고, 또 수색작업 중에 해군 UDT 대원 한 분이 정말 온몸을 다 던져서 많은 전우를 구하기 위하여 무리한 잠수를 하다가 사망하고, 또 군 당국에 협조를 하기 위하여 어선에 탔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는 그러한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미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제가 출가를 해서 자식을 두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아마 온전히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 동생이 74년도 YTL 침몰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제가 부모 대신이라고 생각하며 정을 주고 혼도 내던 그 동생이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 또 시신으로 돌아오기 전에 4일 동안 실종자 명단에 들어있으면서 혹시 살아돌아올까 기다리는 그때 그 심정을 생각을 하면 지금 천안함에 갔다가 실종된, 지금은 찾는 것도 포기했기 때문에 유가족이 됐다고 생각을 한다, 그분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다시 한 번 기적같은 일이라도 일어나서 실종자들이 돌아왔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남아 있다.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들도 힘을 내서 이 어려운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실 수 있도록 부처님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세상에서 제일로 절절한 것이 자식 생각하는 부모 마음이라고 저는 생각한다. <삼국유사>에 보면 해통이라는 스님이 출가하는 구절이 나온다. 해통스님은 본래 경주 사람으로 출가하기 전에 남산 근처에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먹고 뼈는 동산에 버렸다. 다음날 새벽에 보니 자기가 버린 뼈가 없어 그 핏자국을 따라 들어가 봤더니 그 뼈가 전에 살던 동굴로 들어가서 새끼 다섯 마리를 품고 있었다. 살을 발라먹은 그 뼈가 다섯 마리 새끼를 품고 그렇게 있는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해서 속세를 버리고 출가해서 해통이라는 법명을 받았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세상에 이어지는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부모자식으로 만난 인연 그 절절함을 온몸으로 느낀 해통스님의 마음 속에서 참으로 분명 나고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가 있었으리라고 생각을 한다. 제 몸에 새끼를 담아 기르고 나아서 먹이고 키우는 그 절절함, 죽었는데 뼈라도 남아 새끼에게 돌아가는 그 모정, 도대체 그게 뭘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뼈조차, 살아있는 몸이 아니라 뼈가 새끼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그 부모의 절절함, 어느 미물, 짐승도 이러할진데 사람은 오죽하겠나? 자기가 없으면 새끼들이 배를 곯을까 뼈만 남은 몸뚱이라도 새끼에게 돌아가는 그 수달의 애끓는 모정, 정말 우리 자식을 가진 신도님들은 다들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자식을 얼음장같은 찬물 속에 두고 찾지 못하는 그 부모, 가족들은 지금 심정이 어떨까? 아마 미친 것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제정신이 아니다(한숨). "누가 자식을 군대에 보낼 것인가" 제 동생이 사고가 난 2월 22일날 몹시도 추웠다. 오전 10시 경에 충무, 지금은 통영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만, 충무 앞바다에 청천벽력같은 전복사고로 실종이 됐을 때 4일을 기다리는데(한숨), 지옥이 따로 없다. 지옥이. 밥도 안 넘어가고 물도 안 넘어간다. 이번 천안함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구조하는 현장에서 손이 시려우니까 주머니에 넣었다가 뺐다고 한다. 내 자식은 저 찬 바다 속에 있는데 손이 시렵다고 손을 집어넣는 것도 미안하고, 눈물이 흐르는데 바람이 불어서 눈물이 마르는 것도 미안하고, 무엇하나 미안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그것이 가족들의 심정이다. 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동안 진해의 한 여관에 있으면서 낮에는 밖에 나가면 해군 장교만 보면 주먹질을 하고 두들겨 패고 그래서 6번이나 경찰서에 끌려갔다. '내 동생을 찾아내라.'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그 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제 그제 목요일날 비가 추적추적오는 동작동 국립묘지를, 현충원에 갔다. 국화를 159송이를 사서 해군 일병들 묘에 꽂아놓았다. 그 중에 김홍두라고 하는 해군일병의 시신을 못 찾았다. 159명 중에 158명은 시신을 찾았는데 한 분을 못찾았다. 그 김홍두 일병의 형님하고 저하고 또 동갑이다. 사고 나고 난 뒤에 한 달쯤 됐다가 명동에서 우연하게 찻집에서 만나서 둘이 붙잡고 울던 생각이 난다. 그때 제가 그랬다. 당신은 그래도 한 달이 지났지만 어느 섬엔가 떠밀려갔다가 살아 돌아올 희망이 있지 않느냐. 이게 바로 유가족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차라리 죽었으면 포기하면 되는데, 열흘 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부에서는 이랬다, 저랬다 북의 소행인 것 같다, 아니다 배가 노후해서 그랬다, 점점점 의혹만 더 키워나간다. 대명천지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이런 큰 사고가 났는데 아직도 원인을 밝힐 수 없는 이것이 과연 국가인가. 이것이 국민과 영토를 보호하는 국가의 모습인가. 누가 자식을 군대에 보낼 것인가 아마도 이번 침몰사고로 실종된 해군들 중에 국회의원 아들이나 장관 아들이나 아니면 고위직에 있는 공무원의 아들이 저는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그야말로 돈없고 빽없고 줄없는 그런 서민들의 아들들일거라고 생각하니까 더 가슴이 (한숨) 미어진다."공성진 의원, 옆에 있었다면 '귀싸대기'를..." 한주호 준위가 마지막으로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딸이 대학교 1학년인데 피부에 조금 문제가 있어서 한의원을 다녔나 보다. 그래서 구조 나가기 전에 딸한테 마지막으로 보내는 마지막 문자메시지가 '딸, 한의원에 전화 안했으면 아빠가 대신할게 내 딸 사랑해'라고 문자를 보냈다는 것을 보았다. 참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여기 자식을 둔 보살님들은 그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실 거다. 고 한주호 준위는 마음에 사랑하는 아들 딸 품고 눈을 감은 것이다. 그런데 그 절절하고 애통하고 비통한 자리에서 그분을 배경으로 해서 기념 촬영을 하는 정치인이 그게 바로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지역구 국회의원 공성진, 아시죠? 어떻게 그 자리에 가서 어떻게 그 피끓는 그 애통한 자리에 가서 옆에 있었으면 귀싸대기를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자리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런 사람들, 이게 이 나라를 열흘이 되도 사고원인조차도 규명하지 못하는 아주 웃기는 이런 나라를 만든 거다. 이렇게 황망한 사고로 부모자식간의 인연이 끊어지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게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숨김없이 유족들이 납득할 수 있게 의혹을 밝혀야 한다. 무엇 때문에 생존한 해군들은 한군데 모아놓고 '기억이 안 난다'는 그 말만 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무엇을 감출 게 있고 무엇을 속일 게 있나. 이명박 대통령이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낱낱이 공개적으로 진실을 밝히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장관이나 해군장교들은 이랬다 저랬다, 사고 시간도 바뀌고 전혀 진실성이 하나도 없다. 아마 해군 참모총장이나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이 군대를 안 갔다 온 군면제자라고 무시하고 말을 안 듣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대통령이 그렇게 분명히 밝히라고 했는데 사태를 이렇게 오리무중으로 분간할 수 없게 해도 되는 건가. 부모와 자식, 죽어도 죽지 못하는 수달같은 그 마음, 그 절절한 심정을 외면하고 혹시라도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유족들, 돌아가신 해군 장병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우리 봉은사 신도님들도 자식이 있고 자식이 있는 신도님들도 하루빨리 (한숨) 이 사고가 마무리가 되고 이번 사고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질 수 있도록 부처님전에 기도를 드려야되겠다. 또한 이 비극에 관심을 거두지 마시고 지켜보면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촉구하는 자세, 그것 또한 유족들을 위한 자비의 마음이 아닌가.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는 불자의 자세라고 저는 생각한다. 여러분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일동박수) "이 고통, 이 슬픔, 이 괴로움을 어떻게 견뎌야 할 것인가" (한숨) 참으로 이러한 죽음 앞에 종교적인 자세를 갖게 된다. 이 고통, 이 슬픔, 이 괴로움을 어떻게 견뎌나가야 할 것인가. 그래서 어떤 분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대로, 이러면서 절대적 힘을 가진 존재인 신에게 (의지)한다고 한다. 저 같은 경우는 '도대체 죽음이 뭔가', '스무 살 나이에 그렇게 한줌 재가 되어서 묘지에 묻혀있던 내 동생이 살아있을 때 형하고 부르던 목소리는 어디가고 그 다정했던 나한테 맞으면서 엉엉 울던 그 실체는 과연 뭔가'. '무엇이 왔다갔는가', '이 몸뚱이는 화장을 하든지 땅에 묻히든지 언젠가는 없어질 텐데, 나는 그럼 뭔가', '앞으로 때가 되면 늙어서 죽든지 병으로 죽든지 언제든 죽어야 할 텐데 우리는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가', 불교는 이런 물음으로 출발을 한다. 제가 19살 고등학교 졸업하고 출가할 때만 해도 도를 깨달으면 신통이 생기고 멀리 볼 수 있고 남의 인생도 볼 수 있고 그런 걸 은근히 기대를 했다. 그러나 제 동생을 그렇게 사고로 잃고 그 사고의 현장은 지옥하고 다를 바가 없다. 158명을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산화장터, 마산화장터 다 해도 화장이 쉽게 끝나지 않으니까 서울에서 화장만 전문으로 하는 육군본부 부대가 있다. 그 부대에서 트럭에다가 화장할 수 있는 시설을 싣고 12대가 내려왔다. 그래서 화장을 하는데 (한숨) 이게 사람이 미치는 거다. 밤중에 제 동생 차례가 돼서 나가보니까 옆에 화장차는 금방 나온 새차고 제 동생이 들어가야 할 화장차는 오래돼서 낡은 차다. 저희 아버님이 저를 붙잡고 우시면서 "살아서도 호강을 못했는데 죽어서도 왜 헌차에 들어가느냐. 남들은 새차에 들어가는데..." 옆에 집 아버지는 또 이만한 대병에다가 소주를 마시면서 "우리 아들은 새차에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이게 새차에 들어가고 헌차에 들어가든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막상 화장을 시작하니까 새차는 길이 안 나가지고 불이 안 붙는다. 제 동생은 들어가자마자 불이 잘 붙어서 훨훨 타는 거다. 그러니까 저희 아버지가 "우리 아들은 살아있을 때도 말도 잘 듣더니(일동 웃음)." 그러니까 옆에 아버지가 얼마나 화가 나겠나. 두 사람이 멱살을 붙잡고 싸우는 거다. "그래 이놈아 우리 아들은 속을 썩여서 안 탄단 말이냐." 피눈물이 나는 일이다. 동작동에 제 동생을 묻고 제 동생 영정을 모셔놓고 49일을 동작동 국립묘지를 거의 매일 나갔다. 소주 한 병 들고 쥐포 두 쪽 들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고 그래도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제 동생 이름을 불러보고. 도대체 뭐냐. 뭐냐, 생사가 뭔가, 나고 죽는 게 뭔가. 그래서 그때 제가 49제를 지내고 배낭을 싸들고 집을 나와서 동작동에 다시 들려서 다짐한 게 있다. 석가모니가 나를 무등을 태우고 하늘에 천신들이 내려와서 악기를 타고 꽃비가 내린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나를 모른다면 그 자리를 가지 않겠노라. 하루에도 천번만번 펄펄끓는 가마에 백번을 들어갔다 나갔다 하더라도 '내가 뭔가', '나고 죽는 존재라는 게 뭔가' 이걸 안다면 나는 그러한 지옥 불구덩이 칼싸움 지옥 끓는 가마에 서슴없이 가겠다.이렇게 다짐을 하고 제가 집을 떠났다. 그리고 충주 대원사라는 절에서 한 철을 지내게 되었다. 그때 제가 그 추운 겨울에 12시 넘어서는 일체 음식을 입에 안 댔다. 먹는 것이 미안해서, 물에 빠져죽은 내 동생의 생사문제, 나고 죽는 문제는 해결이 안 됐는데 어떻게 내가 배가 부를 수 있나. 이 배고픈 거 이거 하나 못참아 이러면서 제일 배고플 때 5~6시 사이에 법당에 들어가서 꼭 천배씩 절을 했다. 백일을 했다. 몸무게가 지금 72킬로 나가는데 54킬로까지 떨어졌다. 지금도 저는 중으로서 제 동생이 대신 시켜준다고 생각한다. 힘든 고비마다 제 동생을 생각하면서 고비를 넘기곤 했다. 나고 죽는 문제 생사,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일이다. 봉은사 신도님들 다시 한 번 마음을 곧추세워 이러한 비극, 이러한 슬픔 앞에서 참으로 나는 뭔가, 이 물음을 놓지 않고 수행하는 그러한 불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진실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 '국격이 높은 선진국'"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뉴스앤조이'라는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거기보면 '명진스님, 기독교인들을 대신해 용서를 구합니다'라는 명진스님께 드리는 한 기독교인의 편지가 있다 그 분의 이름은 고영근이다. (편지 읽기 시작) 법정스님이 4대강에 대해 하신 말씀을 읽어드리겠다. "지금 방식대로 4대강 사업이 진행된다면 크나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이 땅에서 이러한 무모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다면 우리는 정권과 함께 이 국토에 대해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것입니다." 이게 법정스님께서 하신 말씀이다(일동 박수). 법정스님을 그렇게 끔찍이 존경하는 분이 왜 법정스님 말을 안 듣나. (편지 다시 읽기 시작) (편지 다 읽자 일동박수) 이 편지를 저한테 개인적으로 보낸 게 아니고 기독교 인터넷(뉴스앤조이) 거기에 올려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읽어도 될 것 같다. 참 훌륭한 기독교인이다. 우리 불교인들도 이래야 한다. 잘못한 걸 사과할 줄 알고 참회할 줄 알고 인정할 줄 알고. 이게 선진국이다. 이런 나라가 국격이 높은 나라다. 이런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고 진실을 인정할 줄 알고 거짓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을 우리는 국격이 높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안상수 의원, 그렇게 '묵언수행' 하다가 정말 불자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