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 이항복의 집터, 뒤에 보이는 <필운대>라는 글씨를 직접 썼다고 한다.
박금옥
우리가 찾아간 시간이 쉬는 시간이었는지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반긴다. 아이들 눈에는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 구경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다. 백사 이항복은 우리에게도 아이들 못지않게 먼 선조에 드는 어른이지만, 직접 현장에 찾아와 해설을 들으며 그 시절을 상상해 보는 시간은 꽤나 즐겁다.
학교를 나와 오던 길로 돌아 나오면서 매동초등학교와 서울시 유아교육 진흥원 건물 주차장을 지나면 마을버스 길이다. 길을 건너면 바로 서울시립 어린이 도서관 건물로 들어가는 계단이 나온다. 오른 쪽에는 종로 도서관이 보이고,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도 종로도서관 앞이다. 어린이 도서관 마당을 가로질러 내려가면 앞에 보이는 곳이 사직단 북문이다.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곧바로 사직단 정문으로 가려면 배화여고로 가기 위해 건넜던 건널목에서 왼쪽으로 50미터 쯤 직진해 가면 대로변에 세워져 있는 사직단 정문을 볼 수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경복궁 동쪽에는 종묘,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한다. 종묘는 조상을 받들기 위한 곳이고, 사직은 토지신과 곡식 신에게 제를 지내는 곳이다. 농경시대의 백성에게는 땅과 곡식이 없으면 살 수 없었기에 사직에 제를 지내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또한 나라가 존재하는 한 사직에 제를 지내야 하는 것이고 나라가 폐하면 사직 또한 폐하는 것이라 사직은 국가 그 자체였다. '종묘사직'이란 말이 이래서 나온 것이다. 종묘는 한 나라에 한 곳에만 있으나 사직은 도성은 물론 각 지방의 행정단위마다 설치해서 왕을 대신해 지방 수령이 제를 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