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호텔 안의 안뜰. 안뜰은 가운데 연못이 있고, 연못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김은주
오래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내게서 <트레인스포팅>이라는 영국영화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약에 취해 길거리를 떠돌던 부랑자 청년의 한마디가 가끔씩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텔레비전 냉장고, 남들 갖고 있는 것 다 갖고 싶어. 그리고 아내와 아이와 함께 좋은 가정을 이루고 싶다."
쓰레기처럼 길거리를 굴러다니던 청년에게 어느날 생겨난 꿈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꿈은 중산층의 삶을 누리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내가 왜 그 청년의 꿈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느냐면, 청년이 그리는 이상이 바로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적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담한 2층집을 소유하고, 실내는 최신 가전제품과 튼튼한 가구로 채우고, 차고에는 고급 승용차가 한 두 대 서있으며 한 가족이 평화롭게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광경, 아마도 이런 풍경이 자본주의의 이상향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이상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물질입니다. 남들이 갖고 있는 걸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인생은 그리 행복한 인생이 못 되는 것이지요. 정말 그럴까요?
나의 대답은, 아니다, 입니다. 물질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 난 잠자리나 음식에 연연해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우리 돈으로 500원 하는 길거리표 햄버거나 고급 호텔에서 대접하는 뷔페식 아침이나 행복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저렴한 방에서 묵고 값싼 음식을 먹는 배낭여행이었지만, 꽤 만족했습니다.
실재로 우리 일행 중 어떤 선생님은 그간 좋은 호텔에서 묵고 고급 음식을 먹는 패키지 스타일의 여행을 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가난한 배낭여행을 시도했는데 앞으로도 배낭여행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배낭여행이 훨씬 재미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걸 보면 물질의 차이가 행복과 꼭 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