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동산 곶자왈동백동산 곶자왈 숲의 먼물깍 연못 앞에 꽃이 좋아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40명은 생태관광을 하기에 너무 많은 숫자일 수도 있습니다.
장용창
5. 강의 내용
저의 강의의 큰 주제는 이러했습니다. "문화(culture)라는 것은 미술이나 음악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각 지역마다 문화(삶의 방식)가 다른 것은,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주의 문화는 다른 곳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자연환경 때문에 그런 문화가 만들어졌는가?" 이런 대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저는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질문을 주었습니다.
(1)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바다를 건너 제주에 왔을까?
(2) 곶자왈이라는 이 오래된 숲이 왜 지금까지 보호될 수 있었을까?
(3) 오름에는 왜 나무가 없을까?
(4) 왜 남자 해녀가 없을까?
(5) 하천에 물이 없는데, 어떻게 물을 얻었을까?
(6) 왜 밭 주위로 담을 둘렀을까?
(7) 왜 가족들이 안거리와 밖거리 집에 따로 살까?
(8) 왜 무속신앙이 지금까지도 존중될까?
(9) 제주의 음식은 왜 이렇게 만드는 게 간단할까?
(10) 골프장과 걷는코스 중 어느 게 제주의 미래일까?
위와 같은 주제에 맞춰 힌트를 보여주는 사진들을 슬라이드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는 저런 큰 질문 이외에도 사진에서 답을 얻을 수 있는 작은 퀴즈들도 계속 냈습니다. 가끔씩 학생들이 먼저 질문을 해줄 때에도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 더 고민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친구가 "한국에선 언제부터 김치를 먹었나요?"라고 질문하자, 저는 거꾸로 "김치의 정의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습니다. 학생들이 "매운 양념을 쓴 샐러드"라는 식으로 대답하자, 저는 다시, "과연 맵다는 것이 김치 샐러드의 핵심인가?"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스무 고개를 넘다보면 결국 어느 친구가 "김치의 정의는 소금에 절인 채소"라는 답을 말합니다. 그럼 저는 다시, "그렇다면 왜 소금에 절인 채소를 먹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럼으로써 "겨울에 채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라는 답을 학생들로부터 유도해냅니다. 이런 과정들이 너무 재미 있고, 열심히 참여해준 학생들이 고마웠습니다.
6. 용눈이오름에서
둘째날에는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서 생태해설사와 함께 안내를 했습니다. 현장에서도 저는 그냥 경치 구경을 하는 게 아니라, 질문(과제)을 던져주고, 현장에서 답을 찾도록 주문했습니다. 용눈이오름에서 제가 준 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왜 이 오름의 이름이 용눈이(sleeping dragon)인가?
(2) 이 곳에서 화산폭발은 몇 번 일어났으며, 그 증거는 무엇인가?
(3) 어떤 사람들은 오름에 나무가 없어야 더 아름답다고 얘기한다. 이 곳에 나무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의 정의는 무엇인가?
(4) 시각만 이용하지 말고, 오감을 이용해서 느껴보라. 싱가폴과 무엇이 다른가?
학생들은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쇠똥 옆에 핀 꽃사진을 찍는 저를 따라서 열심히 쇠똥 냄새도 맡아보고, 제가 붉은 송이돌을 보여주면서 화산재(volcanic ash)라고 소개하자, 친구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진 사람이 맛을 보았습니다. 1시간 가량 마음껏 놀게 한 다음, 과제에 대한 답을 달라고 하자, 어떤 친구들은 "화산활동이 이젠 끝났기 때문에 잠자는 용"으로 불린다거나, "화산이 불을 뿜는 것처럼 용도 불을 뿜기 때문에 용이라 불린다"는 등 재치 있는 답을 하기도 하고, 좀더 진지한 답을 주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들이 고마웠습니다.
7. 동백동산 곶자왈 숲에서
여기서 제가 준 과제(질문)은 좀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1) 당신이 제주도지사라면, 이 숲을 어떻게 관리하고 싶은가?
(2) 생태계의 기본 원리는 협력과 경쟁이다. 이 숲의 식물과 동물들은 어떻게 협력하고 경쟁하고 있는가?
(3) 이 숲에서 이루어지는 관광 등 인간의 활동은, 위와 같은 생태계 평형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물론 중간중간에 현장을 보면서 좀더 쉬운 퀴즈를 주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숯가마터에 있는 집터를 보면서, "저 마을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끔 여기서 잠을 자면서 숲에서 지냈다. 뭘 했을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냥을 했다"는 등의 진지한 답도 나오고,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화가 난 아내를 피해서 숲에 도망 왔다"는 등의 재치 있는 답도 나왔습니다.
8. 아쉬운 점
전체적으로 볼 때 저는 이번 생태관광 가이드가 아주 즐거웠습니다. 학생들이 제가 구상한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잘 따라주었고, 윤리원칙도 잘 따라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행이 40명이라는 점은 아쉬운 점입니다. 너무 많습니다. 한 그룹이 10명 이상이면, 그 소음과 규모만으로도 숲의 야생동물들을 위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나마 지금은 철새들의 월동시기도, 번식시기도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멸종위기종 철새들이 번식하는 시절에 40명이라는 대규모의 그룹을 데리고 동백동산 숲을 통과하는 것은, 저는 안 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관광 건은, 제가 가이드로서, 또는 관광객으로서 참여했던 과거의 경험들에 비해 생태관광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뿌듯합니다.
9. 동백동산 곶자왈에 대해
여러분이 제주도지사라면 동백동산 곶자왈을 어떻게 관리하고 싶습니까? 어느 신문기사를 보니, 제주도청이 동백동산 곶자왈을 람사르습지사이트로 등록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서 반갑습니다. 하지만, 최근 생태관광이 관광객의 숫자라는 단순한 성과만을 추구하고 있어서, 동백동산이 정말 람사르사이트가 된다면, 오히려 관광객의 숫자만 많아져서, 그 생태계를 헤치게 될까봐 저는 많이 걱정됩니다. 동백동산을 람사르사이트로 지정하자는 말을 제가 제일 먼저 꺼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저는 더욱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동백동산을 람사르사이트로 지정함과 동시에 관리계획을 즉시 실시하는 것입니다. 체계적인 관리계획은 과학적인 조사를 요건으로 하기 때문에, 간단히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핵심보호지역과 완충지역, 개방지역으로 구분하고, 핵심보호지역에는 사람의 출입을 아예 금지하는 정책만이라도 람사르사이트 지정과 동시에 실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먼물깍 연못까지만 출입을 허용하고, 그 안쪽으로는 출입을 아예 금지시키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수많은 방문객들이 먼물깍 연못의 안쪽 숲으로 들어가도록 허용한다면, 동백동산에서 번식하는 삼광조와 팔색조 등의 멸종위기 동식물에 큰 위협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주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