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린 일요법회에서 이 사찰 주지 명진 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의 직영사찰 전환 배경에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압력이 있었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김도균
<오마이뉴스> 등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자승 원장은 조계종 입법부 최고수장으로서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특정정당 후보의 선거운동원을 자처했다는 점에서 종단 안에서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초 총무원은 수도권 포교 강화를 목적으로 삼각산 도선사와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한다고 발표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도선사는 빼고 봉은사만 지정하면서 의혹을 키웠다. 중앙종회 의결과정에서도 봉은사 직영 안이 중앙종회의 안건상정을 논의하는 총무위원회에서 부결되었음에도 총무원장이 직권상정해 3월 11일 종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날 봉은사 직영 안은 안건 중 맨 아래에 있었으나 종회는 법정스님 입적 소식이 전해진 어수선한 상황에서 다른 안건은 제쳐놓고 직영안을 전격처리했다.
봉은사 직영 안이 주지인 명진 스님은 물론 봉은사 신도, 공청회 등 불교 내부의 충분한 공감대 없이 변칙 처리되면서 애초 '도심포교를 위한 백년대계'를 위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했다는 총무원의 주장은 설득력을 상실했고 오히려 정치적 의혹만 키우고 있다.
현재 사태의 직접 당사자인 자승 원장은 모르쇠로 일관해 세간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사이 원로회의나 중앙종회는 명진 스님을 해종행위자로 간주해 징계를 검토하고 있다는 등의 성명을 발표하고 종단 내 개혁단체들은 자승 원장의 해명을 요구하는 등 종단 내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의현 전 총무원장과 현 자승 총무원장 현 사태는 자승 원장의 태도에 달려있는 형국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의 부적절한 자리도 문제지만 정권에 맞춰 비판적인 승려를 절에서 축출하려했다면 그는 94년 정권의 지원으로 총무원장 3선을 노리다 승적까지 박탈당한 서의현 전 총무원장과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당시 서의현 전 원장은 3선을 시도하면서 김영삼 정권으로부터 경찰력을 지원받기도 했지만 국민여론의 악화와 개혁세력의 완강한 저항으로 퇴진할 수밖에 없었다.
서 전 원장이 물러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조계종단의 정치예속화 때문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 전 원장은 92년 대선당시 개신교 장로였던 민정당 김영삼 후보를 위해 여당 선거운동원 이상으로 지지활동을 벌였고 급기야는 대구 동화사 대불조성자금으로 조성된 80억 원의 비자금을 김영삼 후보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 비자금은 당시 조계종 전국신도회장이던 청우건설 조기현 대표가 국방부 상무대 이전 공사비로 받은 돈으로 조성한 것으로 드러나 조계종단은 위신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서의현 전 원장은 3선을 시도했고 이에 대해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석림동문회, 선우도량, 전국승가학인연합 등이 참여하는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이하 범종추)'는 서의현 체제 타도를 결의했다. 서 전 원장 측은 범종추의 퇴진 시도를 자신이 장악한 중앙종회와 종정의 힘을 통해 제압하려고 했고 한편으로는 용역을 통해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 역시 서의현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 경찰기동대를 동원해 총무원에 농성 중이던 범종추 세력을 해산시키기도 했다.
중앙종회의 결의와 정권의 지원으로 3선에 성공한 서의현 체제는 상무대 비리와 무차별 폭력행사로 불교신자들은 물론 국민들의 공분을 사면서 정권마저 등을 돌리자 곧바로 막을 내렸다. 이때 맹활약한 이가 바로 명진 스님이다. 94년 종단 개혁당시 수많은 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복을 벗어 조계사 대웅전 불전에 올린 뒤 종단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대로 승복을 벗겠다는 사자후를 토해내 참석자들을 울리면서 종단개혁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서의현 체제의 비리와 정치예속화를 거부하면서 시작된 조계종 개혁운동은 인적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가자의 종단운영 참여 불허 등의 한계가 있었지만 권력관계에서 어느 정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2008년 촛불정국 때 20만에 달하는 불자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현 정부의 종교편향을 비판하는 법회를 개최해 권력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다.
자승, 뒤로 숨지 말고 전면에 나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