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주년 되는 날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버렸던 안 의사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다. 안 의사의 영혼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대륙에서 떠돌고 있으니, 민족의 가슴이 아프다. 순국한 지 100년, 해방된 지 65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안 의사의 마지막 유언은 해방이 되면 고국으로 자신의 유해를 안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달라." 죽어서도 해방된 조국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안 의사의 염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여러 가지 추모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정부가 발표한 추모사업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한국과 중국, 일본 3국 공동으로 안 의사 유해발굴을 다시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2일 한중일 3국의 합동 유해발굴 사업을 지시하자, 외교통상부와 국가보훈처 등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언론들도 마치 한중일의 합동유해발굴이 조만간 이뤄질 것처럼 떠들썩하다.
하지만 정부의 유해 발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요한 대상인 북한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안 의사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다. 그곳은 현재 북한 땅이다. 북한을 제외한 한중일 합동 유해발굴 사업은 상주 없이 발굴 작업을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제외교 무대에서 통하기나 할 주장인가. 이는 북한핵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북한을 제외하고 한미중일러 5자 회담을 하자는 것과 똑같다. 우리 언론은 왜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가. 몰라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정부의 북한 왕따 전략에 동참하기로 한 것인가.
'상주' 북한 뺀, '한중일' 안 의사 유해 공동 발굴?그러나 정작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남한 정부다. 중국이 남한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안 의사 유해 발굴 작업에 대해 중국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것처럼 발표해왔다. 지난 2008년 3월 안 의사가 순국한 중국 다롄시 뤼순(여순) 감옥 근처에서 진행한 남한만의 '단독' 유해발굴 작업도 중국 정부의 적극적 협조로 이뤄졌다고 밝혔었다.
나는 지난 2008년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중국 하얼빈시 초청으로 하얼빈을 방문했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하얼빈역과 안중근 전시실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하얼빈시 고위관계자와 만났다. 당시는 남한만의 단독 발굴단이 뤼순 감옥 근처에서 안 의사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던 시기여서 자연스럽게 안 의사 유해발굴이 화제로 올랐다.
하얼빈시는 안 의사의 의거 장소로, 안 의사 전시실을 갖고 있어 유해 발굴 작업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고위관계자의 입에서 놀랄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안 의사 유해 발굴 문제는 잘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안 의사 유해발굴은 북한과의 문제도 있어 중국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유해의 연고를 주장할 텐데, 남북한이 그런 문제를 먼저 합의를 해야 중국이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하얼빈시의 안 의사 전시실 확충 등에 대해서도 "중국으로서는 일본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등 조심스런 문제"라고 말했다. 놀랍도록 솔직한, 하지만 중국 정부의 고민이 담긴 말이 아니었을까.
남북한 공동 아니면 적극 협조할 수 없다는 중국하얼빈시 고위관계자의 말대로 남한만의 안 의사 유해 발굴 작업은 그해 5월 몇 개의 동물 뼛조각만 발견한 채, 아무런 성과도 없이 중단됐다. 엉뚱한 곳에서 우물을 판 셈이었다. 그때 일은 남한만의 단독 발굴이 얼마나 성급한 일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대해 당시 중국 인민일보사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지난 2006년 6월 남북 양측이 공동조사를 거쳐 유해가 뤼순감옥 뒤편의 야산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지만, 한국과 북한, 중국 등 여러 국가 간 합의가 달성되지 않아 그간 발굴 작업에 진전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발굴 작업이 남북한과 중국 사이에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남한의 일방적인 추진에 중국과 북한이 마지못해 동의해준 측면이 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중국은 남한 정부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응했을 뿐이지, 애초부터 남한 단독 발굴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북한과의 합의를 통한 남북한 공동조사가 아니라면, 안 의사 유해 발굴 작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