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갑수의 저서 <이승만에서 2PM까지> 겉그림.
한걸음 더
에코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우리는 과연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 에코는 그렇다고 했다. "악의나 잔혹함에 분개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없지만,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며. 이이제이. 코미디에는 코미디로 대처할밖에.
반면 인간 사회의 어리석음을 향해 정색하며 화를 내는 방법도 있다. 경험으로 미뤄보건대 전자는 패러디의 형태로 나타나는 조롱인데, 현재 인터넷 공간을 달구며 다양하게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후자는 페이소스가 동반된 정공법에 가깝다. 개선의 여지를 남겨두는 애증이랄까. 소설가 김갑수는 후자를 선택했다.
가령, 우리가 화를 내며 동시에 웃었던, 즉 숱한 어리석은 사건들은 태반의 경우 '보수와 진보' 혹은 '우파와 좌파' 놀음에 기인한다. 심지어 '좌빨'이니 '친북'이니 하며 덧씌우는 데 재능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김갑수는 신간 <이승만에서 2PM까지>(도서출판 한걸음·더)를 통해 이것은 '이념의 2원론'일 따름이라 했다. 이런 2원론이 사람에게까지 함부로 적용되는 실정이라 우려하는 저자는 "문제는 '가짜 보수'나 '사이비 진보'에 있으며 바로 그들로 인해 역사는 파행하거나 퇴행하는 것"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그래서 '이념'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나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다고 본다. 자연스러운 사람과 부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부자연스러운 사람은 필경 위선적이거나 아니면 위악적으로 나타난다.(...)한국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사들은 이념과 상관없이 대부분 위선적이거나 위악적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부자연스럽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가짜 보수'거나 '사이비 진보'일 가능성이 크다. (동저서 머리말 중)"같은 맥락에서 노무현을 진보적, 이명박을 보수적이라 말하는 세간의 시각에 저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전자는 위악적이요 후자는 위선적이라 구별하는 편이 더 일리가 있단다.
<이승만에서...>를 통해 만난 신규식 선생하마터면 <이명박의 위선과 노무현의 위악>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올 뻔한 이 책 <이승만에서 2PM까지>는 노무현 정부 후반기 1년 반과 이명박 정부 전반기 1년 반을 합쳐 3년에 걸친 한국 사회 쟁점을, 제목 그대로 '인물' 탐구를 통해 보여준다.
이 기간 동안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자연스러운 사람'과 '부자연스러운 사람'들의 행보를 작가의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지난 한 세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노무현과 이명박은 사적 영역을 떠나 이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가늠하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정약용, 김옥균, 서재필, 안창호, 이광수 등, 저자에 따르면 '서구인에 대해 시종여일한 열등의식'에 젖어있던 일단의 세력을 반성하고 신규식, 장준하, 김구 등 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진실을 재발견하게 하는 것이 또한 이 책의 강점이다.
강산이 한 번 변하는 동안 프랑스에서 살아온 내가 궁금했던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치 점령 하에 레지스탕스 운동가로 활약했던 샤를르 드 골, 장 물랭과 같은 인물들이 좌우의 구별 없이 오늘날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프랑스에서는 극영화로, 다큐멘터리로 재조명된 그들의 삶을 만나는 일이 낯설지 않다. 드골을, 물랭을 모르는 프랑스인은 그래서 프랑스인이 아닌 거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임시정부 주석 김구에 대한 평가 논쟁이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첨예한 대한민국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렇듯 우리의 근대사를 살았던 '자연스러운 사람'과 '부자연스러운 사람'들의 비열하거나 혹은 인간적인 면모를 생동감 있게 복원해낸 것은 단언컨대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섬세한 소설가로서 관록의 소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