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살풀이라도 한 번 하든지 원!"

여주 5일장, 장마다 비 내려

등록 2010.03.25 15:08수정 2010.03.2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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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주 5일장 두세달 째 옂주 5일장이 서는 날은 날씨가 안 좋았다. 3월 25일 장도 역시 비가 내렸다.

여주 5일장 두세달 째 옂주 5일장이 서는 날은 날씨가 안 좋았다. 3월 25일 장도 역시 비가 내렸다. ⓒ 하주성

▲ 여주 5일장 두세달 째 옂주 5일장이 서는 날은 날씨가 안 좋았다. 3월 25일 장도 역시 비가 내렸다. ⓒ 하주성

 

"자 떨이여 떨이, 단돈 만원에 이거 다 가져가."

"어떻게 장날마다 비가 오나 그래, 살풀이라도 한번 하든지 해야지."

 

여주 5일장은 참 이상도 하다. 그러고 보니 5일장을 취재하면서 늘 느낀 것이지만, 하루도 맑은 날이 없다. 아마 맑은 날을 두세 달째 보지 못한 것 같다. 계속 비가 오거나 눈이 오고, 그것도 아니면 그 전날 많은 눈이 내려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5일장인데

 

여주 5일장은 참 볼 것이 많다. 비가 온다고 사람들이 조금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몰려드는 곳이다. 5일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봄철이 되니 각종 묘목은 물론, 청보리 싹까지 나왔다. 청보리 싹을 찍고 있는데, 한 분이 이게 무엇이냐고 물으신다.

 

"이거 보리 싹인데요."

"아니, 보리 싹도 먹어요?"

"그럼요, 살짝 데쳐서 밥 비벼먹으면 정말 좋아요."

"처음 듣는 이야기네."

"그 청보리 싹을 먹으면 회춘이 된대요. 아저씨는 절대 주지 마세요."

"왜? 젊어지면 좋지."

"큰일 난다니까요. 저녁마다 집에 안 들어오면 어쩌시려고."

 

그래서 장이 떠나갈 듯 한바탕 웃어댄다. 5일장은 그래서 재미가 있고, 따듯한 정이 넘친다. 늘 만나는 사람들이라 더욱 그러하다. 낯이 익은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한번쯤 들여다보고 아는 체라도 하는 것이 5일장의 인심이다.

 

a 보리싹 5일장에는 별별 것들이 다 나온다. 봄이 되었나보다. 보리싹도 한 바구니 담겨져 있다.

보리싹 5일장에는 별별 것들이 다 나온다. 봄이 되었나보다. 보리싹도 한 바구니 담겨져 있다. ⓒ 하주성

▲ 보리싹 5일장에는 별별 것들이 다 나온다. 봄이 되었나보다. 보리싹도 한 바구니 담겨져 있다. ⓒ 하주성

a 묘목 봄철이 되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하는 과일나무 묘목. 그러나 비가와서 사람들이 찾지를 않는단다.

묘목 봄철이 되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하는 과일나무 묘목. 그러나 비가와서 사람들이 찾지를 않는단다. ⓒ 하주성

▲ 묘목 봄철이 되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하는 과일나무 묘목. 그러나 비가와서 사람들이 찾지를 않는단다. ⓒ 하주성

 

30년 가축장 토박이의 이야기

 

여주장 끄트머리에 있는 가축장. 많을 때는 10여명이 난전을 편다.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서 너 명의 사람들이, 가축이 비라도 맞을세라 천막을 치고 있다. 여주장에서만 30년 째 가축을 팔고 있다는 김영학씨(남, 69세. 여주군 흥천면). 짐승을 자식같이 대하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부부가 늘 장에 같이 나와 장사를 하신단다. 연세를 물으니 68세라고 하시는데, 아주머니는 69세라고 하신다. 당신 나이도 모르느냐는 핀잔과 함께.

 

"여주장도 많이 달라졌죠?"

"그럼요.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축을 팔고는 했는데, 요즈음은 거의 다 사라졌어요."

"오늘은 애들이 얼마 없네요."

"비도 오고 해서 몇 녀석만 데려왔는데, 매장 이렇게 비가오니 큰일이네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혀를 차자,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간다. 아마 매일 보는 얼굴이라 반가운가 보다. 저렇게 반갑게 쫓아다니는 녀석들이 낯선 곳으로 팔려간다는 것이 늘 마음이 아프단다.

 

a 김영학씨 여주 가축장의 토벅이 김영학씨. 벌써 30년 째 여주장에서 가축을 팔고 있다고 한다.

김영학씨 여주 가축장의 토벅이 김영학씨. 벌써 30년 째 여주장에서 가축을 팔고 있다고 한다. ⓒ 하주성

▲ 김영학씨 여주 가축장의 토벅이 김영학씨. 벌써 30년 째 여주장에서 가축을 팔고 있다고 한다. ⓒ 하주성

 

"방송이나 신문에서 가축을 파는 사람들을 나쁘게 이야기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말하면 안돼요. 가축을 파는 사람들은 평소 이 녀석들을 자식같이 생각해요. 여기서 가축을 잡는 것도 아니고 잘 키워서 파는 것뿐인데, 흡사 자신들만 동물을 사랑하는 것처럼 떠들어대면 되나요."         

"우리 집에 가면 농장을 하고 있어요. 개들도 수십 마리 씩 있고, 닭이며 토끼 등 엄청난 가축을 먹이고 있는데, 그 사료 값만 해도 엄청 들어요. 30년간 이 장사를 하지만, 내 손으로는 아직 한 마리의 짐승도 잡아 본 적이 없어요."

 

마음이 많이 아프셨다고 하신다. 무조건 가축을 판다고해서 다 죄인 취급을 하는데, 그런 사람들보다 정작 몇 배 더 가축을 끔찍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루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장날마다 비가 오네요."

 

a 가축장 여주장 한 편에 마련된 가축장. 지나는 사람들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녀석들도 있다.

가축장 여주장 한 편에 마련된 가축장. 지나는 사람들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녀석들도 있다. ⓒ 하주성

▲ 가축장 여주장 한 편에 마련된 가축장. 지나는 사람들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녀석들도 있다. ⓒ 하주성

a 호로조 귀한 호로조도 장에 나왔다. 5일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어, 5일장은 늘 붐비나 보다.

호로조 귀한 호로조도 장에 나왔다. 5일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어, 5일장은 늘 붐비나 보다. ⓒ 하주성

▲ 호로조 귀한 호로조도 장에 나왔다. 5일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어, 5일장은 늘 붐비나 보다. ⓒ 하주성

 

5일장을 나가 취재를 하면서 자주 얼굴들을 보는 사람들이라, 지나치면서 아는 체도 해본다. 그래서 마음에 맺힌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는 사이가 되었나 보다. 좀 그칠 것 같은 비가 또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 장은 아무래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비가 오는 장을 찾아 나서는 것은, 5일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 때문이란다.

2010.03.25 15:08 ⓒ 2010 OhmyNews
#5일장 #여주장 #가축장 #비 #김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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