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기옹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장도장 보유자인 박용기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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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전라도요, 전라도엔 광양이라'(朝鮮之 全羅道, 全羅之 光陽)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는 양지바른 빛고을 광양(光陽)을 이렇게 예찬한다. 또, 광양사람을 표현하는 예로 '옛날에 광양사람이 순천에서 수 만 마리 벼룩을 몰고 왔는데 광양에 도착해서 세어보니 한 마리도 빠트리지 않고 다 몰고 왔더라'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야무지고 치밀한 광양사람의 기질을 그대로 표현한 것인데 벼룩마저 그렇게 다룬 솜씨라면, 손재주는 또 어디 갈 것인가?
장도(粧刀)는 예로부터 서울, 울산, 영주, 남원 등지에서 많이 만들어져 왔지만, 그 중 전라도 광양의 장도는 섬세함을 자랑하며 한국적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다.
흔히 '장도'하면 은장도를 우선 떠올린다. 하지만 은장도는 장도의 여러 종류 중의 하나일 뿐이다. 서늘한 은빛으로 반 만 년 역사와 함께 한, 이 작은 칼 '장도'는 어떤 존재였을까?
옛날 선조들은 성년이면 누구나 자그마한 손칼을 옷고름이나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스스로를 지켜왔다. 특히 은장도는 은으로 장식된 장도로 칼집이 있고 단장하는 작은 칼을 지칭하는데, 주로 혼인한 여자가 옷고름에 찬 것을 '패도'(佩刀), 미혼여성이 주머니 속에 지니는 것을 '낭도'(囊刀)라 하여 총칭하여 장도라 하였다. 또, 딸을 시집보내며 친정어머니가 마지막 훈계로 준 것이 '장도'요, 관례를 치른 아들에게 아버지가 내린 것이 '패도'로 정절과 충의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