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인 반'이라고요?

입시설명회 방불케 하는 인문계고 학부모총회

등록 2010.03.21 11:46수정 2010.03.2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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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과 고등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딸을 둔 평범한 엄마입니다.  새 학기를 맞아 학교에서 학부모총회가 있어 아이들의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아이들을 맡긴 엄마로 마땅히 참석해서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특색이 어떠한지,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여기며 학부모총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아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마음이 참 뿌듯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남다른 배려에 감사했고 담임 선생님도 이제 교사를 하신 지 1년이 채 안 되신 신선함을 지닌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다가와서 참 감사하고 뿌듯했지요.

 

딸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리라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고등학교는 조금 다른 점이 있기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내심 설레는 마음으로 학부모총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처음 교장 선생님의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들으며 우리아이가 그래도 학교는 잘 온 것 같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에 맡겨주시고 부모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공감하며 아이가 슬퍼할 때 같이 울어주고 기뻐할 때 같이 웃어주고 아이가 혹 학교 선생님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 함께 욕하면서 받아주시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아이와 하나가 되어 3년을 보내시면 될거라구요. 참으로 공감했습니다. 마음이 참 따뜻해지더군요.

 

그런데 교장선생님의 짧은 인사말 다음에 이어진 장황한 설명들은 인문계 고등학교여서 그런지 그야말로 입시설명회를 방불케 하는 자리 같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과정과 내신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 수시모집에 대한 준비 그야말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전투(?) 준비를 하는 과정 같았습니다.

 

예전엔 학교공부만 잘 준비하면 들어갔던 대학이 이젠 마치 모든 것에 만능이 되어야만 그래도 4년제 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린 현실이 실감되더군요. 내신관리에 상장관리, 특기관리, 논술 준비, 언어 준비 등등…. 우리 아이들이 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평범한 아이를 둔 엄마로써 마음이 참으로 착잡했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 30명만을 모아 심화반을 만들고, 3년간 그 아이들을 특별 관리하여 소위 일류(SKY)대를 보내어, 그것으로 교육의 성과를 인정받으려는 인문계 고등학교의 교육 아닌 교육 계획에 가슴이 답답하더군요. 학교에서는 방과 후에 각종 교과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수업에 수학, 국어, 영어는 많은 아이들이 몰려서 늦게 신청한 아이의 엄마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오로지 소위 명문대에 많은 아이들을 보내어 좋은 학교라는 평가를 받아야만 중학교에서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학교로 올 거라는 전략뿐인 학교 같더군요.(참고로 제가 사는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입니다.) 담임선생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우리반에는 특별히 공부 잘하는 아이는 없이 그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인 반"이라구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앞 반에 배치해서 반에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얘기 아닌가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참으로 가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는 진정한 친구보다는 오로지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대상자뿐이고 좋은 대학에 들어갈 목표 하나로 3년의 세월을 힘겹게 공부와 싸워야 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 아이가 공부를 썩 잘하는 아이가 아닌 평범한 아이이기 때문에 드는 마음일까요? 만일 우리아이가 상위 30명 안에 들었다면 그래도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요? 솔직히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꿈과 목표를 대학에 두고 달려가며 매일매일 고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상관없이…….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대학과 연관된 질문들을 쏟아내는 엄마들을 보면서 화가 나더군요. 이미 강당에서 충분히 듣고 올라온 얘기들을 또 한 번 듣게 되니 말입니다. 어떤 부모님은 아이가 방과 후 학습에 수학과 영어를 신청 하려고 했는데 늦게 신청했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못한 것을 속상해하며 다음번에 신청할 때는 본인이 직접 신청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학교와 부모님들 모두의 관심이 공부와 내신, 대학에 있는 것 같아 저는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 입학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 아이가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은 하고 있는지,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는지 등이 궁금하였고, 오늘 학교에 가면 이런 점이 좀 해결되겠거니 했는데, 돌아와 생각하니 제가 참 순진한 엄마였더군요.

 

정말이지 이런 현실이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 생활의 추억을 만들기보다 입시라는 치열한 경쟁의 현실 속에 내몰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밤 10시나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에게 오늘도 수고했다며 안아 주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가 참으로 서글퍼지네요. 그래도 나름대로 공부는 학교에서 하고 집에서는 쉬면서 만화로 하루의 피로를 달래는 딸아이에게 그렇게 해서는 좋은 대학 못 간다는 말 보다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딸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 위로해보며 씁쓸하고 착잡한 마음 금할 길 없었습니다.

2010.03.21 11:46ⓒ 2010 OhmyNews
#학부모총회 #경쟁교육 #입시설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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