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그린 능소화
송성영
산 너머 산이었습니다. 보금자리 문제로 또다시 아내와 티격태격하면서 골머리를 싸매다가 무심결에 컴퓨터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시집 한권을 들췄습니다. 윤재철 선생의 시집 <능소화>였습니다. 선생의 시만큼이나 한없이 순수한 선생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어둠 속에서 담배를 핀다 칠흑 같은 바다의 어둠과 침묵 그리고 소멸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오는 허무의 꽃 꿈인지도 모른다 꿈의 꿈인지도 모른다 몽환의 화려한 꽃불 꽃가루지 언제부터인가 눈에서 귀에서 검은 입속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꽃 웃음의 끝 울음의 끝에서 환히 피어오르는 허무의 꽃 가슴 저 끝에 뿌리박은 듯 뻗어 올라 가슴 가득 뒤덮은 능소화 푸른 잎 속에 피어오르는 주황빛 저 꽃' (윤재철 선생의 시집 <능소화>에서)언젠가 선생의 시를 접하다가 문득 아내의 능소화 그림 한 점을 보내드리고 싶어 선생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부 인사 끝에 전남 고흥으로 이사 갈 예정이라 했더니 평교사 박봉을 쪼개 돈을 부쳐 주셨습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기어코 아내에게 통장 번호를 알아내셨던 것입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감사했지만 선생께서는 오히려 미안하다 하십니다.
"미안하다. 부담되게 공연한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그냥 받아 둬. 문예기금이라는 것도 있잖어.""아이구 참, 선생님도 어려우실 텐디. 뭐라 할 말이 없네유." "괜찮어, 니 맘 알어...""어이구 참... 죄송하고 고맙습니다.""괜찮데두... 그럼 이렇게 해. 자네 아내 그림 한 점 보내..." "집 사람 그림이 뭐시가 거시기 하다구유...""그림은 그냥... 내 맘 알지?""알아요 무슨 말씀이신지...""공연히 부담 주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냥 말여, 그냥 그렇게 해 부담 없이 받어..."녹녹치 않은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건네주신 선생의 돈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저미게 하는 큰마음이었습니다.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해직과 투옥의 고초를 겪었던 윤재철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결혼 전, 계룡갑사 주변에서 똥 폼 잡고 한소식 하겠다고 가부좌 틀고 앉아 있을 때 선생은 빗자루를 들고 청소부가 된 성자처럼 묵묵히 법당 주변을 쓸고 또 쓸고 있었습니다.
시집 <능소화> 발문을 통해 문학평론가 김영호 선생이 언급하고 있듯이 윤재철 선생은 '가난해도 꼬장꼬장한 자존심을 잃지 않고 온갖 시련에도 굽힘없이 오직 고통을 안으로 삭인 채 삶의 기품을 간직할 줄 아는, 남산골 샌님과 같은 그런 강직한 선비로서의 본이 되는' 선생님입니다.
'이른바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시인 송기원. 김진경과 함께 푸른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선 모습이 맨 먼저 떠오른다. <중략> 그날 실천문학사 주간으로 법정에 선 송기원은 '북괴가 반국가단체임을 아느냐'는 다분히 정치적인 검사의 유도성 질문에 대해 특유의 빈정거림으로 '전두환도 김일성 주석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며 재판부를 한순간에 희화화해버렸고, 김진경은 단단히 벼르고 나온 듯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신채호 선생이<조선상고사>에서 밝힌 투쟁으로서의 역사관을 근거로 <민중교육>지 발간의 역사적 의의를 길게 설득해 법정의 분위기를 무겁게 했다. 하지만 윤재철은 "재판장님, 저는 교사입니다. 사랑하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자신의 간절한 심경을 짧게 밝혔는데, 오히려 그 진정성이 긴 여운과 함께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와 법정을 숙연하게 했다.'(윤재철 시집 <능소화>에 붙인 문학평론가 김영호선생의 발문 중에서)갑사 법당 주변에서 빗자루 질을 하고 있는 선생을 두고 서울대 나온 사람이 저러고 있다고 뒷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 나는 빗자루처럼 초라한 선생의 겉모습에서 선생 자신을 한 없이 낮추고 있는 큰 속 마음자리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선생은 어쩌다 지나던 길목에서 우리집에 두 세 차례 찾아 오셨고 나는 간혹 선생께 안부 전화 드렸습니다. 때로는 <녹색평론> 등에 발표한 선생의 시나 산문을 통해 선생을 만났고 선생은 어쩌다 <오마이뉴스>에 올린 보잘것 없는 내 글을 통해 우리 식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시곤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선생을 떠올리면서 아내가 원하는 서른 평 집짓기에 대해 입을 닫기로 했습니다. 민박집을 위한 방 한 칸이든 뭐든 그동안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아온 분들이 찾아오시면 생각 없이 쉬어 갈수 있는 손님방 한 칸쯤은 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늘 일손 바쁜 처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무렵 목수 일을 하다가 온갖 집짓는 공구를 건네주고 인도 다람살라로 훌쩍 떠났던 막내 동생이 돌아 왔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때맞춰 목수 동생까지 돌아왔으니 이제 건축 설계도를 들고 집만 지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집 짓다가 10년을 늙어 버린다는 말이 있듯이 집 짓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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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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