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것은 빈틈없이 채워진 일상들과 앞만 보고 달리는 욕망의 굴레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새하얗게 눈 덮인 히말라야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땅 네팔을 찾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보고 싶었으리라. 태고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 있는 네팔과 히말라야가 그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는지도.
그가 히말라야를 보고 온 뒤 털어놓은 속마음이다. 아직 30대 초반인 작가는 히말라야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자신의 시커먼 마음, 검게 타버린 마음을 내려놓고 왔다고 했을까? 오직 치열한 경쟁에서 싸워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경쟁 시스템이 만화가의 세계인들 예외일 수 있었을까?
동그란 얼굴을 한 네팔 어린이의 얼굴 그림 옆에 쓰여 있는 글이다. 전시된 스케치 그림과 사진들엔 유난히 어린이들이 많다. 작가는 네팔의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소박한 그들의 모습· 삶에 깊은 애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50여 일이나 긴 날들을 네팔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그 땅과 그곳 사람들에게 듬뿍 정을 들였나 보다.
"'나마스떼!' 동그랗고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아이는 말라붙은 콧물에 하얗게 튼 모습이었다. 나는 아이 아버지에게 네팔식 인사를 하고는 본능적으로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누군가를 그린다는 것,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그린다는 것, 지구를 돌아 아무런 이유도, 부탁도 없이 그저 우연히 만나 온전히 나의 가슴이, 나의 손이 가는 대로 그리는 아이의 얼굴, 나는 내가 그림쟁이인 것에 감사했고, 네팔에 온 것에 감사했다."
작가가 짧지 않은 50여 일간 네팔을 여행하며 바라보고, 느끼고, 스케치한 그림들은 단순한 그림들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잘 살고 잘난 사람들, 부자나라라고 자부하는 나라들이 우쭐거리며 내려다보는 그 아름다운 땅 네팔 그러나 그 땅은 작가에게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소박한 삶에 대한 정다움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그런 모습이었을 게다.
무한경쟁의 바쁜 일상을 접고, 많은 손해를 감수하며 낯설고 두려운 땅으로 훌쩍 떠난 젊은 작가는 여행에 대한 남다른 철학도 갖고 있었다.
"오늘도 수고 했어요, 많이 힘드셨죠? 당신 덕에 전 오늘 많은 걸 볼 수 있어 행복했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발을 그려 놓은 스케치 그림에 쓴 글이다. 자신의 몸이지만 여행으로 가장 힘든 일을 감당하는 다리와 발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글이다.
"걷다, 나는 걷고 있다. 그제도 걸었고, 어제도 걸었고, 오늘도 걷고 있다. 나는 걷고 있다. 아마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내일도 걷고 있겠지, 인생도 여행처럼, 여행도 인생처럼 나는 걷고 있다."
신발을 그린 그림에 쓰여 있는 글이다. 여행은 걷는 것이고 인생이며, 인생이 곧 여행이라는 그의 여행과 인생철학이 담긴 글이다.
"여행은 혼자 떠나는 것이 좋다. 혼자 떠난 여행일수록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계획되지 않은 새로운 사건들을 맞이할 가능성이 커진다. 가벼운 짐과 무계획이 여행의 진정한 맛을 내는 중요한 조미료가 된다. 아늑하고 풍족한 식탁보다 누추하고 부족한 거리의 한 끼 식사가 작은 깨우침을 선사한다. 여행은 혼자 떠나 수백 명의 친구와 함께 걷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에 대한 그의 철학은 명쾌하다. 짧은 여행을 떠나면서도 커다란 여행 가방을 질질 끌며 그 가방의 무게에 짓눌리고, 소지품에 얽매이는 것보다 가벼운 짐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떠나는 여행을 그는 좋아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번 네팔여행길에서 네팔 땅을 밟자마자 길을 잃어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나 길가에 있는 작은 가게 주인아저씨의 친절한 도움으로 길을 찾고 이후의 여행일정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50일 동안의 네팔 여행 중에 그가 그린, 감성이 물씬 풍기는 스케치 그림들과 사진들은 한 점 한 점이 그림 칼럼이고 그림 시였다. 다른 관람객들도 놀라운 그의 감성과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와 그를 찾았다. 왜 이름이 하필이면 "똥개냐"고 물었다.
"어렸을 때 제가 몸이 너무 쇠약했답니다. 걱정이 되신 부모님께서 죽지 말고 튼튼하게 자라라고 지어준 이름이 똥개랍니다.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천한 이름을 가져야 오히려 튼튼하고 오래 산다는,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일이 잘 풀리고 잘 산다는 말이요."
물론 주민등록상의 이름은 김동범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과 가까운 사람들은 지금도 어렸을 때 지어준 또 다른 이름 '똥개"로 부른다는 것이다. 남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이 거북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단다.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이름이기 때문이란다.
전시회는 다음 주 화요일(23일)오전까지 열린다고 한다. 전시장에는 그가 여행 중에 그린 그림과 사진, 그리고 보고 느낀 감동과 여행기 글들을 묶어 만든 책, 카투니스트 동범의 네팔 스케치 포엠 '가끔은 길을 잃어도 괜찮아'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2010.03.19 14:18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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