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편집국과 소통중2층 단식 기자들이 3층 편집국과 원고 송고용 도르래 통이 있는 조그만 구멍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뒤로 납활자판이 보인다.
정연주
안경이 깨지고, 손바닥에 유리가 박히고밖으로 내동댕이쳐지자, 밖에 있던 술 취한 사내들이 몽둥이질을 했다. 안경이 깨지고, 내동댕이쳐지면서 바닥에 깔려 있던 깨진 유리 조각이 손바닥에 박혀 피가 흥건히 났다. 두 사내가 와서 양쪽 팔을 잡고는 1층 차고 쪽으로 끌고 갔다.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1층 차고 쪽에 내려갔더니, 동아일보 소속 차량인 초록색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를 뒷자리 가운데 앉히고 두 사내가 양쪽에 앉았다. 그리고 차는 쏜살같이 어둠 속으로 달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산소용접기로 철문을 뚫으면서 공격을 시작한 시간이 새벽 3시 15분 쯤 되었다. 당시 통행금지가 밤 12시부터 새벽 4시 사이였으니, 통금시간 중이었던 것이다. 내가 창문 가까이에 있다가 맨 먼저 공격을 당해 어디론가 실려갈 때까지 불과 5~10분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을 터다. 차가 동아일보 차고를 벗어나 광화문 쪽으로 나왔는데, 수백 명의 경찰이 지키고 서 있었다.
나를 태운 차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중앙청을 지나 어디론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경찰 출입을 하던 사건 기자 시절, 야근을 하면서 통금 때의 서울시내 풍경과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광화문을 비롯하여 시내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차량을 일일이 검문했다. 신문사 차량에는 통금 때 다닐 수 있는 '야통증'(야간통행증)이 있어서, 통금 시간에도 취재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이날 나를 태운 차량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그냥 마구 달렸다. 도착하고 보니, 혜화동 로타리 근처에 있는 고려대 우석병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단식했던 동료 선배들이 속속 도착했다. 우석 병원 마당에는 우리에게 몽둥이질을 하면서 행패를 부렸던 술 취한 사내들이 서성이면서 우리에게 욕설을 하는 등 적대감을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동아일보사 측은 그때 태권도를 하는 깡패들과 동아일보 보급소에서 일하는 젊은 사람들을 모아서 제작거부 농성사원들을 강제 축출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에 동아일보의 어느 정치부 기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단식농성을 할 때 2층 공무국 유리창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잠자리를 하여 가장 먼저 공격을 받고, 2층 베란다로 내던져졌다. 당시 남아 있던 동료들은 술 취한 사내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험하게 달려들자, 제 몸 생각보다는 활자판이 무너질까 봐 "활자판 넘어진다, 조심하라"고 고함을 질렀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순진한 바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