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유명한 송강호가 초코파이 먹는 장면.
"한국에서 오래 전에 상영되었던 블록버스터 영화인 <공동경비구역 JSA>에는 남북한 병사들이 등장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두 명의 남한 병사가 우연히 DMZ(비무장지대)의 북한측 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남북한 양국의 대치 상황을 모르는 미국인도 있는 현실에서 존 페퍼는 'JSA'니 'DMZ'니 하는 낯선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의 발표를 시작했다.
"남한 병사들은 (적군인) 북한 병사를 만나 싸우는 대신 친구가 되어 몇 날 밤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이들의 비밀스러운 친교의 절정은 남한 병사가 자기네 나라에서 인기 있는 초코파이를 가져오는 장면입니다. 초코파이는 초콜릿으로 덮인 마시멜로 쿠키입니다. 북한 병사는 초코파이를 먹으며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워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왜 우리 공화국은 이런 초코파이를 못 만드는 거야?'"오래 전에 봤던 영화인 <공동경비구역 JSA>의 장면 하나 하나가 존 페퍼의 설명으로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대부분 JMU 대학생이었던 청중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페퍼씨의 영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왜 초코파이를 못 만들어내냐는 북한 병사의 말에 남한 병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남한으로 오라고. 그러면 배 터지도록 초코파이 먹을 수 있어.'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북한 병사는 초코파이를 입에서 빼내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 딱 한 번만 말하는데 내 꿈은 언젠가 우리 공화국이 한반도에서 가장 맛있는 단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야.' 놀랄 만한 침묵이 흐르고 어색한 순간이 지난 뒤 북한 병사는 뱉어낸 초코파이를 다시 입으로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남북한 네 명의 병사들은 다정하게 농담을 주고 받습니다."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한국통'인 존 페퍼. 그는 공산주의 제도에 관심이 많아 지난 1985년에 모스크바에서 공부를 했고 1989년에는 폴란드에도 살았다. 그가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국학을 연구하게 된 데는 북한에 대한 호기심이 작용했다. 세계 최강국이었던 소련도 무너졌는데 작은 나라이면서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난까지 겪은 북한이 붕괴하지 않고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 말이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점도 그를 한국학 연구로 이끌었다. 존 페퍼는 많은 저서와 기고를 통해 한국을 알려왔다.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지난 1998년. 그는 서울, 광주, 대구 등지의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이날 페퍼씨가 강연 첫 도입부를 흥미진진한 영화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정작 페퍼씨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한반도 통일이었다. 그가 남북한을 대표할 만한 상징으로 꼽은 남한의 초코파이와 북한의 냉면은 어떤 의미를,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의 강연 내용을 요약해봤다.
'초코파이 vs. 냉면'에서 '초코파이 & 냉면'으로남한 군인들이 신병 훈련 때 받게 되는 초코파이는 한국 문화에서는 소비재화이자 데카당스,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나타낸다. 반면, 귀순하라는 요구를 거절하면서 충성스럽게 자신의 조국을 옹호하는 북한 병사는 서양식 간식 대신 한반도에서 가장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자존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북한 주민들의 고집스러운 자존심은 '잘 먹인 애완용 강아지보다는 굶주린 늑대가 나을 것'이라는 그들의 말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태도는 북한 주민들이 왜 국수주의적이고 통치에 있어서도 도전적인 태도를 취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냉면은 외부 세계의 불순한 영향력을 물리치려는 북한의 자존심을 잘 드러내는 음식이다. 평양냉면은 남북한뿐 아니라 한반도를 넘어서 가장 뛰어난 별미로 손꼽히는 음식이다. 북한사람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냉면이 평양의 대형식당인 옥류관에 있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을 방문했을 때 안내원은 그 점을 대단히 자랑스러워 했다. 남한 관광객들도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싶어하고 보통 냉면 세 그릇쯤은 거뜬히 비운다고.
북한의 냉면은 초코파이와는 달리 전통적인 한국 음식이다. 냉면은 바로 '순 한국식' 음식으로 민족적이고 주체적인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한 음식 문화의 양분법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나 북한 선전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경직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음식은, 북한에서 먹는 음식까지도 수천 년 동안 세계화의 영향을 받아왔다. 청동기 시대 중국에서 들여온 쌀과 13세기 몽골에서 온 불고기, 16세기 신세계로부터 포루투갈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김치 재료인 고춧가루에 이르기까지. 2차대전과 한반도 분단 이후에는 미국으로부터 구호품 밀가루와 분유가 한국으로 들어왔고 미군 병사를 통해 배곯던 한국인들이 먹었던 스팸도 '부대찌개'라는 이름의 새로운 요리로 등장했다.
오늘날 한국은 단 한 세대 만에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수준의 경제로부터 세계 12대 경제 강국의 하나로 부상한 나라이지만 부대찌개는 여전히 서울의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다. 또한 한반도를 식민지 삼아 한국인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었던 일본으로부터도 1958년 모리나가 제과업체가 만든 초코파이를 들여왔다.
반면, 북한은 6. 25 전쟁 이후 독자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식 경제 제도의 통합도 거부했다. 북한이 비록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조용히 구호 물자를 받긴 했지만 그들은 '주체'라는 자율적인 이데올로기를 개발했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점차 사라진 1990년대에 북한은 골수 민족주의적인 국가로 떠올랐다. 한국 사람들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세계화나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더 순수하고, 더 토속적인 한국이라는 낭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북한을 봤다.
그러나 1990년대 북한의 경제 붕괴는 북한에 대한 이러한 환상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외국 원조가 들어가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사설시장(장마당)이 출현하면서 북한도 외국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패스트푸드 식당이 평양에 세워져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과 햄버거까지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햄버거라는 이름 대신 '다진 고기와 빵'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믿기 어려운 사실은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이 외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스시 요리사를 데려와 스시 요리를 하게 했고 이태리 피자 요리사를 데려와 자기 요리사가 이태리 정통 피자 만드는 법을 배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