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부터 정진경 변호사,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주영 민변 부회장, 김도현 교수
신종철
고법부장판사 제도와 같은 법관의 서열 및 승진제도가 경력법관들의 중도퇴직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법원의 고급인력 손실에 따른 '변호사 양성소'라는 비판 ▲재판 부실화에 따른 항소와 상고의 남발 ▲전관예우 문제 등을 초래하는 만큼 경력법관들의 중도퇴직 차단에서 법원개혁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도현 동국대 법대교수는 15일 서울변호사교육문화회관 세미나실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법관의 인사 시스템에 대한 병폐를 조목조목 짚었다.
법원개혁 방향에 관해 발제자로 나선 김 교수는 먼저 "한나라당이 지난 2월 발표한 법원제도개선방안을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조직(우리법연구회) 해체 문제까지 거론하는 등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없는 정치적 공세"라고 비판하면서도 "그러나 정치적 의도가 어디에 있든 간에, 이번 기회에 변죽만 울리는 법원개혁 논의에 그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 교수는 사법부의 고질적이고 치유 곤란한 문제로 무엇보다 '법관들의 중도퇴직 현상'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법관으로 임명되면 정년까지 중도사직하지 않고 법관으로서의 임무에만 충실할 수 있는 법관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법원개혁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법관의 대거 중도퇴직 현상은 사회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며, 먼저 법원이 입장에서 고급인력의 상실을 꼽았다.
그는 "신참법률가로서 법관에 임명돼 배석판사를 거쳐 단독판사의 경험까지 구비한 10년차 이상의 법관들은 비로소 제대로 된 재판을 독자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유능한 법률가의 자질을 구비하게 되는데, 이런 고급인재가 갑자기 법관을 사직하고 변호사로 전직하면 법원은 또다시 나이 어린 신참법률가들을 받아들여 수년 동안 현장교육을 통해 훈련시켜야 하는 악순환에 봉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황이 이러하니 법원은 재판을 담당하는 기관이기 이전에 유능한 변호사를 길러내는 '변호사 양성소'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경력법관의 중도퇴직은 사회경험이 일천하고 연소한 법관들이 과중한 업무부담 속에서 내린 판결에 대해 소송당사자들은 쉽게 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게 돼 결국 재판의 부실과 그에 따른 항소와 상고의 남발을 가져오게 된다"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실제로 상고심에서 담당하는 대법관 1인당 본안사건 담당건수가 매년 2000건에 이를 정도다.
법관 중도퇴직의 사회적 역기능 '전관예우' 김 교수는 가장 심각한 법관 중도퇴직의 사회적 역기능으로 '전관예우' 의혹을 꼽았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인 전관예우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없지만, 판검사 출신으로 갓 개업한 일부 변호사에게 사건수임이 몰리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며 "왜 이런 전관예우가 간접적으로 은밀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의혹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지는 바로 경력 판검사들의 중도퇴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법관의 중도퇴직 현상을 가져오게 된 원인으로 법관의 서열 및 승진 관행에서 이유를 찾았다. 그는 먼저 "사법연수원 기수가 한 기수라도 앞서면 법관서열에 있어 후배들보다 앞서고, 또한 동일 기수의 법관들 중에서는 사법시험 성적 40%와 사법연수원 성적 60%의 합산 점수에 따른 성적이 높은 법관이 동료법관들보다 서열이 앞서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승진에서 발탁되지 못한 법관은 후배법관들에게 '길을 터준다'는 명목으로 또는 후배법관의 밑에서 일하게 돼 조직운영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법복을 벗고' 변호사의 길로 나서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매년 60명가량의 법관들이 사직하고 있다.
김 교수는 "법관경력 7~8년차에 대거 퇴직현상이 있는데, 자신의 서열을 감안할 때 임관 초기부터 고법 부장판사로의 승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우 현재의 과다한 법관의 업무량과 법관처우에 대한 불만 그리고 전관예우적 혜택의 가능성마저 기대할 수 있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 법원에 남는 것보다 변호사의 길로 나서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해 퇴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이는 승진하지 못하면 법복을 벗는 것이 관행이었을 뿐만 아니라, 로펌으로 전직하거나 변호사 개업을 함으로써 법원에서 봉직하면서 희생했던 것을 단기간에 보상받으려는 심리도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법원행정처 주요 보직 법관들이 차지해 온 관행 사라져야"이와 함께 김 교수는 "법원행정처는 사법정책 및 법관인사 등의 막강한 권한을 장악하고 우수한 엘리트 법관들을 법원행정처 보직에 임명해 재판업무가 아닌 행정업무를 훈련시키고 또한 일반법관에 대한 감독기구이자 통제기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며 법원행정처도 문제 삼았다.
이어 "전체 법관 가운데 22%만이 고위직 법관으로 승진할 수 있는데 비해 법원행정처 보직 경험이 있는 법관들 가운데 51% 이상이 고법 부장판사 이상의 고위직에 승진했다"며 "법원행정처 보직 경험이 있다면 스스로 중도사직하지 않는 한 무난히 고위법관으로 진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법원행정처가 법관승진의 로열코스임을 확인해 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