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개혁, 경력법관 중도퇴직 막는 방안에서 출발

"정년까지 법관 임무만 충실할 수 있는 법관상 구현이 법원개혁 출발점이자 종착점"

등록 2010.03.15 19:03수정 2010.03.15 19:03
0
원고료로 응원
 좌측부터 정진경 변호사,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주영 민변 부회장, 김도현 교수
좌측부터 정진경 변호사,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주영 민변 부회장, 김도현 교수 신종철

고법부장판사 제도와 같은 법관의 서열 및 승진제도가 경력법관들의 중도퇴직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법원의 고급인력 손실에 따른 '변호사 양성소'라는 비판 ▲재판 부실화에 따른 항소와 상고의 남발 ▲전관예우 문제 등을 초래하는 만큼 경력법관들의 중도퇴직 차단에서 법원개혁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도현 동국대 법대교수는 15일 서울변호사교육문화회관 세미나실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법관의 인사 시스템에 대한 병폐를 조목조목 짚었다.

법원개혁 방향에 관해 발제자로 나선 김 교수는 먼저 "한나라당이 지난 2월 발표한 법원제도개선방안을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조직(우리법연구회) 해체 문제까지 거론하는 등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없는 정치적 공세"라고 비판하면서도 "그러나 정치적 의도가 어디에 있든 간에, 이번 기회에 변죽만 울리는 법원개혁 논의에 그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 교수는 사법부의 고질적이고 치유 곤란한 문제로 무엇보다 '법관들의 중도퇴직 현상'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법관으로 임명되면 정년까지 중도사직하지 않고 법관으로서의 임무에만 충실할 수 있는 법관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법원개혁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법관의 대거 중도퇴직 현상은 사회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며, 먼저 법원이 입장에서 고급인력의 상실을 꼽았다.

그는 "신참법률가로서 법관에 임명돼 배석판사를 거쳐 단독판사의 경험까지 구비한 10년차 이상의 법관들은 비로소 제대로 된 재판을 독자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유능한 법률가의 자질을 구비하게 되는데, 이런 고급인재가 갑자기 법관을 사직하고 변호사로 전직하면 법원은 또다시 나이 어린 신참법률가들을 받아들여 수년 동안 현장교육을 통해 훈련시켜야 하는 악순환에 봉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황이 이러하니 법원은 재판을 담당하는 기관이기 이전에 유능한 변호사를 길러내는 '변호사 양성소'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경력법관의 중도퇴직은 사회경험이 일천하고 연소한 법관들이 과중한 업무부담 속에서 내린 판결에 대해 소송당사자들은 쉽게 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게 돼 결국 재판의 부실과 그에 따른 항소와 상고의 남발을 가져오게 된다"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실제로 상고심에서 담당하는 대법관 1인당 본안사건 담당건수가 매년 2000건에 이를 정도다.


법관 중도퇴직의 사회적 역기능 '전관예우'

김 교수는 가장 심각한 법관 중도퇴직의 사회적 역기능으로 '전관예우' 의혹을 꼽았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인 전관예우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없지만, 판검사 출신으로 갓 개업한 일부 변호사에게 사건수임이 몰리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며 "왜 이런 전관예우가 간접적으로 은밀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의혹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지는 바로 경력 판검사들의 중도퇴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법관의 중도퇴직 현상을 가져오게 된 원인으로 법관의 서열 및 승진 관행에서 이유를 찾았다. 그는 먼저 "사법연수원 기수가 한 기수라도 앞서면 법관서열에 있어 후배들보다 앞서고, 또한 동일 기수의 법관들 중에서는 사법시험 성적 40%와 사법연수원 성적 60%의 합산 점수에 따른 성적이 높은 법관이 동료법관들보다 서열이 앞서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승진에서 발탁되지 못한 법관은 후배법관들에게 '길을 터준다'는 명목으로 또는 후배법관의 밑에서 일하게 돼 조직운영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법복을 벗고' 변호사의 길로 나서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매년 60명가량의 법관들이 사직하고 있다.

김 교수는 "법관경력 7~8년차에  대거 퇴직현상이 있는데, 자신의 서열을 감안할 때 임관 초기부터 고법 부장판사로의 승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우 현재의 과다한 법관의 업무량과 법관처우에 대한 불만 그리고 전관예우적 혜택의 가능성마저 기대할 수 있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 법원에 남는 것보다 변호사의 길로 나서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해 퇴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이는 승진하지 못하면 법복을 벗는 것이 관행이었을 뿐만 아니라, 로펌으로 전직하거나 변호사 개업을 함으로써 법원에서 봉직하면서 희생했던 것을 단기간에 보상받으려는 심리도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법원행정처 주요 보직 법관들이 차지해 온 관행 사라져야"

이와 함께 김 교수는 "법원행정처는 사법정책 및 법관인사 등의 막강한 권한을 장악하고 우수한 엘리트 법관들을 법원행정처 보직에 임명해 재판업무가 아닌 행정업무를 훈련시키고 또한 일반법관에 대한 감독기구이자 통제기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며 법원행정처도 문제 삼았다.

이어 "전체 법관 가운데 22%만이 고위직 법관으로 승진할 수 있는데 비해 법원행정처 보직 경험이 있는 법관들 가운데 51% 이상이 고법 부장판사 이상의 고위직에 승진했다"며 "법원행정처 보직 경험이 있다면 스스로 중도사직하지 않는 한 무난히 고위법관으로 진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법원행정처가 법관승진의 로열코스임을 확인해 준다"고 지적했다.

 김도현 동국대 법대교수
김도현 동국대 법대교수 신종철
김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같은 기수의 동료법관이 법원행정처에 보직을 받아 재판업무에 해방돼 행정과 정책을 담당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경력 10년 남짓의 보통 법관들은 더욱 더 자신의 장래에 희망을 가지지 못하게 되고, 결국 법관사직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법관의 승진 및 서열구조가 문제가 되는 요인으로 법관의 독립이나 재판의 독립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나이 어린 법관을 배석판사로 임명해 선배 법관의 지휘 하에 기성체제에 길들이고, 가파른 위계적 서열구조 속에서 승진과 보직 인사를 무기삼아 대다수 법관을 중도퇴직에 이르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치권이라는 외압으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은 더 이상은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지만, 그 대신에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법관의 독립, 정확히는 재판의 독립의 문제가 여전히 남았으며 이는 법원의 내부 구조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2008년에 문제됐던 촛불재판 임의배당과 당시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이메일 파문은 이런 조직구조가 지속되는 한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적으로 윗자리를 쳐다보고 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가 아니라면 법원장이 하위법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재판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며 "또한 법관 스스로가 더 높은 고위직으로 승진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다면 이러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동기조차 없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법관은 재판이 본분이고 사법정책이나 인사 등 행정업무는 굳이 법관이 아니더라도 국회나 법률가 출신 공무원들이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을 것이므로 법원행정처의 주요 보직을 법관들이 차지해 온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법관들이 사법정책적 의제를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판사회의 등을 통하면 될 것이고, 인사의 실질적 권한은 각급 고등법원의 법관인사위원회가 담당하면 되므로 법원행정처는 말 그대로 순수하게 행정적인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법원행정처장도 일반법관이 아니라 굳이 대법관이 맡아야 옳은지 의문이며, 그렇지 않아도 모자라는 재판담당 대법관 수를 한 석이라도 더 늘리지는 못할지언정 행정업무에 빼앗긴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합리한 낭비"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끝으로 "어쨌든 관건은 법관들이 승진이나 전보 등에 신경쓰지 않고 정년까지 맡은 바 재판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법제도와 법원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심을 단독화하고, 항소심을 사후심화하는 것이 해법"

토론자로 나선 조능희 MBC 프로듀서(전 PD수첩 CP)는 "법관에게 승진이 중요하고 판결 내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소송당사자는 절망하게 되고, 승진에 권력이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되면 이 사회는 더 이상 정의가 숨 쉬는 사회가 아니라 정말 이민 가야만 하는 사회"라며 "신영철 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승진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일부 사실일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는데도 아직 그가 대법관으로 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 이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사법개혁은 공염불"이라고 지적했다.

최근까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지낸 정진경 변호사는 "1심을 단독화하고 항소심을 사후심화하는 것만이 현재 지칠 대로 치쳐있는 법관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젊은 법관에 대한 불안감, 전관예우 문제로 인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법관의 임용방법의 변경과 사법에 대한 국민참여의 범위를 확대해 많은 국민이 법원을 그들만의 법원이 아닌 우리의 법원으로 인식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사법에 대한 신뢰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정렬 법원노조 정책국장은 "고법 부장판사 제도에 대한 해결방안은 사법부의 모든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작업"이라며 "처우개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유능한 법조인력을 채용하고 평생 동안 재판할 수 있는 문화(평생법관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1심 법관과 항소심 법원을 따로 설치하고, 1심을 단독화, 항소심 대등법관 합의부 구성 등의 방안과 고법부장을 대등경력자 3인으로 구성하고 지법부장이 순차로 고법부장으로 2~3년 근무한 후 다시 지방법원으로 전보되는 순환보직 방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법원개혁 #김도현 #정진경 #경력법관 #고법부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