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스님은 14일 일요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의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최경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의 대형사찰인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한 데 대해, 봉은사 주지인 명진스님이 처음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조계종 총무원의 결정을 둘러싸고 정권 차원의 압력설이 제기됐지만, 명진스님은 그동안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명진스님이 공개적으로 총무원의 결정을 거부하고 나섬에 따라, 논란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명진스님은 14일 봉은사에서 열린 일요법회에서 이 같이 밝히고, "다음 주까지 (총무원에서) 무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이 없을 시에는 전국 사찰과 신도를 대상으로 한 '봉은사 직영 폐지를 위한 1000만인 불자 서명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명진스님은 또 "만약 섣불리 옛날과 같은 못된 방법, 폭력적인 방법으로 봉은사에 들어오려고 한다면 목숨을 걸겠다"며 "(무리한 결정을 하게 된) 말 못할 사정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것이 혹시 권력이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농단이라면 용서치 않고 징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날 법회에 참석한 1100여명의 신도들은 명진스님의 법문(발언) 도중 여러 차례 박수를 치며 큰 호응을 보였고, 일부 신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현 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봉은사, 특별분담금사찰→직영사찰로... 왜?명진스님은 지난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이날 법회를 시작했다. 특히 명진스님은 법정스님이 번역한 서산대사의 <선가구감>의 한 대목을 옮겨왔다. 정도를 걷지 않는 출가 수행자들을 힐책한 대목이다.
"중도 아니오, 속인도 아닌 체 하는 자를 '박쥐중'이라고 하고, 혀를 가지고도 설법하지 못하는 자를 '벙어리 염소중'이라 하며, 중의 겉모양에 속인의 마음을 쓰는 자를 '머리 깎은 거사'라 하고, 지은 죄가 하도 무거워 옴짝할 수 없는 자를 '지옥 찌꺼기'라 하며 부처를 팔아 살아가는 자를 '가사 입은 도둑'이라 한다."명진스님은 500여 년 전 서산대사가 했던 '뼈아픈 가르침'을 인용한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요즘 제가 혹시 '박쥐중'이 아닌가, '머리 깎은 거사'는 아닌가, '가사 입은 도둑'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11일 조계종 총무원이 종단 안팎의 비판론에도 불구하고 봉은사를 특별분담금사찰에서 직영사찰로 전환한 결정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종단에 올리는 재정분담금이 일반 사찰에 비해 더 많은 특별분담금사찰은 4년의 주지 임기가 보장된다. 반면 직영사찰은 조계종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를 맡아 인사와 재정, 포교 등을 직접 관장하고, 기존 주지는 '재산관리인'이 되면서 총무원장이 임면권을 가진다. 종법상 명진스님은 오는 11월까지 임기가 보장돼있다. 하지만 직영사찰이 되는 순간, 명진스님은 임기를 보장 받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총무원에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한 명분은 "수도권 포교 강화"다. 그러나 봉은사측은 "아무런 의견수렴 절차 없이 포교 등을 잘해오고 있는 사찰을 총무원장이 주지가 되는 직영사찰로 전환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발했다.
명진스님은 봉은사 주지로 취임한 지난 2006년부터 1000일 기도를 시작으로, 사찰 예산·재정 투명화 등 개혁을 주도하면서 신도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실제 2006년 당시 86억 원이던 봉은사의 연 예산이 올해는 130여억 원으로 증가했고, 등록신도도 급증해 20여만 명에 이른다.
"'신도들이 너무 안 됐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